소록도 주민들, 고향땅 찾아가던 날

목포· 무안권 고향 방문에 동행하면서

등록 2001.11.20 06:00수정 2001.11.2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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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소록도 주민들은 버스를 타고 그리던 고향땅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 고향방문에 참여한 소록도 주민은 22명. 이번 고향길 방문은 목포·무안권이 고향인 다섯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다른 분들도 동료주민 고향방문에 힘을 심어 드릴 겸 사람 사는 바깥 구경이라도 시켜드림 겸 해서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소록도 주민들은 모두 고향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오십 년 전 처음 소록도에 오게 된 갖가지 사연들을 털어놓기도 하시고, 내 고향은 어디인데 다음에 거기 갈 때 꼭 나를 끼워달라고 하시면서 행사 주최측에 연락처를 적어주시기도 하셨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말이 사십 년, 오십 년이지 인생 전부가 아닌가! 막상 찾아가도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곳이지만, 수십 년 동안 꿈꾸어온 고향길을 찾아가는 마음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식을 소록도로 보내고 너무나 원통하고 또 보고 싶어서 남모르게 뒷산 계곡에서 속울음으로 목놓아 통곡하시다 한을 품은 채 일찍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생각. 세월이 흐른 뒤에 고향을 찾을 수 있었으나 고향마을 인척들에게 행여 누가 될까 선뜻 찾을 수 없었던 내 고향집.

죽기 전 고향 하늘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편히 눈을 감을 것 같았던 절박한 그리움을 조심스럽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하나하나 떠올리고 계시지는 않으셨을까!

어느새 무안군청에 도착했다. 군청방문은 일정에 없었는데 군청에서 하루 전에 소록도 주민들이 무안에 고향방문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연락을 해와 군청에 들르게 된 것이다.


이재현 군수님과 보건소 직원들이 나와 환영과 후의를 베풀어주셨다. 군수님께서는 기꺼이 버스에 올라와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보건소 한 여직원은 "이제 완전히 다 치료가 되었고 전혀 꺼릴 것 없으니 움츠리지 마시고 당당하게 사셔야 할텐데... 우리는 정말 더 많은 사랑으로 대해주고 싶다"면서 "차에서 내리기를 꺼려하시는 주민들이 안타깝다"는 얘기를 귀속말로 했다.

점심은 군청 근처 한 식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보건소 직원들이 먼저 와서 음식을 나르기도 하면서 주민들이 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온갖 정성으로 수고를 해주었고, 식사하는 동안 잠시 차를 주차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려고 들른 남도다방 주인께서는 우리의 이 행사 내용을 듣고 커피를 대접해주시고 음료수까지 차에 실어주셨다.


첫번째 방문지는 무안읍 K리. 이곳이 고향인 박모 씨가 집행위원장의 부축을 받으며 찾은 곳은 K초등학교. "수십 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 구령대, 정말 맞다 맞다"하시면서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우리 모두도 너무 기뻐 마을 이름이 새겨진 돌탑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주인공 박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찍었다. 평생 얼굴을 남에게 보이기 꺼렸던 그 아픔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두번째로 M면을 향했다. 이곳이 고향인 김모 할아버지가 찾으신 곳은 당숙집. 당숙집은 찾았으나 다른 분이 살고 계셨고 다른 마을로 이사갔다고 해서 그곳에 가서 물어보니 당숙은 오래 전에 작고하시고 얼마 전에 당숙모도 돌아가셨다는 마을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당숙이 사시던 집이라도 들려보자고 했지만 "그만 가지요. 이제 됐어요"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모두가 숙연한 분위기였다.

좁은 시골길을 지나고 또 지나고 세번째 방문한 곳은 S면이었다. 이 곳은 연세가 많으신 이모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가족과 연락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가족들이 소록도에 집안 어르신 뵈러 갔다가 되돌아오고 있다는 연락이 와서 목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고향동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고속도로가 나고 많이 변해 버린 마을을 묻고 또 물어 찾아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질부, 나야 나. 여기 동네 와 있는데 좀 나와 줄랑가?"
잠시 후 질부의 모습이 보이자 "질부 질부 어서와 어서와" 불편한 거동이지만 큰 소리로 외치시며 걸어가시는 모습이 살 날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향이 더 사무치게 그리워질 수밖에 없음을 새삼 느꼈다.

마지막으로 목포에 있는 남농 기념관 앞 뜰에서 이모 할아버지의 가족상봉이 있었다.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 1월 초, 설 1주일 전 미용봉사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든 일정을 마쳤다.

소록도로 돌아가는 길에 장흥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모두들 점심 때처럼 두 공기씩 식사를 맛있게 드셨다는 얘기를 유재홍 운영위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http://cafe.daum.net/ilovesosamo)에서 주최한 소록도 주민 고향방문이 지난 6월 경상도 지역에 이어 두번째로 이번 11월 13일 목포·무안권 고향방문 행사가 있었는데 그날 동행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께 전하고자 기사로 올립니다.

추신
(이 기사는 소사모 총무이사직을 맡고 있는 제가  소사모 게시판에 올린 사업보고서 내용의 일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http://cafe.daum.net/ilovesosamo)에서 주최한 소록도 주민 고향방문이 지난 6월 경상도 지역에 이어 두번째로 이번 11월 13일 목포·무안권 고향방문 행사가 있었는데 그날 동행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께 전하고자 기사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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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소사모 총무이사직을 맡고 있는 제가  소사모 게시판에 올린 사업보고서 내용의 일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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