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사모 창립 기념 세미나] 인권침해 증언·자료 정리 등 시급

등록 2003.05.27 18:08수정 2003.06.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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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록도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자행됐던 인권유린에 대한 피해자들의 증언은 물론 한센병이나 관련 정책에 관한 체계적인 자료 수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4일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소사모)' 창립 2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에서 이 같은 지적과 함께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사회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이날 세미나는 한센병을 연구해 온 유준 박사, 윤여준 한나라당 의원 등 소사모(공동대표 김시곤·김상렬) 회원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오마이뉴스 강성관
‘동아시아 한센병사 연구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정근식(소사모 정책위원) 전남대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센병 정책을 비교하고 사회문화적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한센병 연구사는 소략하다"고 지적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소록도에서 자행되었던 강제노동 등에 대한 증언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센병 정책에 대해 "일본의 한센병 정책은 1907년 이후 본격화되면서 1930년대에는 강제적 종생 격리를 통해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강압적 구료(救療) 모델을 창출했다"면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대만, 만주 등지에 모두 적용되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거 연구는 환자중심적 시각이나 인권적 관점이 결여되었다"며 "한센병은 일면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병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제로 질병(한센병)은 어떤 전염병보다 전염성이 낮지만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회피하는 질병에 속했다"면서 "이에 대한 배제와 차별, 공포는 근대의 격리주의, 특히 절대격리주의에 의해 형성되거나 강화되었다"고 지적했다.

한센병 연구 성과에 대해 정 교수는 "일본의 경우 1990년대에 이르러 환자들의 인권 중심으로 연구 경향이 형성, '식민지하 조선에 있어서의 한센병 자료집성(2001년 다키오)'은 소록도의 원장살해사건 등이 잘 드러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소록도에 관한 체계적 연구나 한국의 한센병사 전체에 관한 종합적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향후 한센병 연구에 대해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환자들의 사회복귀의 양상은 어떠한가 등 역사사회학적 연구과제를 제시했다.

정근식 교수
정근식 교수오마이뉴스 강성관
토론자로 나선 류한호(광주대) 교수는 "한센병과 정책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내용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자행된 국가적 폭력의 문제에 대해 배상의 구체적인 방법 등 전략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박은미(한남대) 교수는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고 생존하는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복지정책적 실천적인 측면이 아직 발전시켜야 할 과제다"면서 "주변 사람, 전문가뿐 아니라 한센병력자들이 자기 몫을 담당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또 이세용(전국한센병력자협의회 회장)씨는 "지난 2001년 소사모 창립 세미나에서 1945년 있었던 '84인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추모비 건립을 주장했다"면서 "이것이 (한센병자와 병력자들의)인권을 말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센가족에 대한 단종수술은 1945년 이후에는 없었던 일처럼 알고 있지만 제가 소록도에 있었던 1987년까지도 있었다"면서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단종수술에 대한 사과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와 후생에 대한 정부대책 시급"

특히 이씨는 "교황바오로2세도 방문해서 위로하는데 왜 우리 대통령은 오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대통령이 소록도를 방문하면 한센병환자에 대한 차별를 해소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하고 역설했다.

이씨는 지난 1975년 국립소록도병원에 격리되어 1987년 퇴원, 결혼을 해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씨가 공개적인 토론장에 나선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 지난 2001년 소사모 창립 세미나에서다.

이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왜 나 혼자만 이렇게 있는지, 씁쓸하다"며 "슬픈 역사에 대해서 한센가족들은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편견과 차별은 해방 이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적극 나서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이씨는 공개적인 토론회에 적극 나서려고 하지만 "이런 자리가 거의 없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한센병력자 이세용씨
한센병력자 이세용씨오마이뉴스 강성관
"한센병의 슬픈 역사를 치유하려고 나온 것이다. 한센병 역사는 굴절의 역사고 굴욕의 역사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일본보다(한센병자 격리수용 등 관련 법이) 먼저 폐기됐다는데, 중국이나 버마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인간 존엄에 대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이다. 일본보다 나으니까, 무방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이건 아니다. 절대적 가치의 훼손을 바로잡아야 한다."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텐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이씨의 대답이다.

이씨는 '한센병자'와 '한센병력자'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복지와 후생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한센병력자)독거노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녀들을 (단종수술 등으로) 못 낳아 독거 비율이 높다"면서 "이런 분들에 대한 복지와 후생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사모, 배상법안 제정과 한센병 정책 관련 자료수집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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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주민들, 고향땅 찾아가던 날

한편 소사모는 지난 2001년 고흥군이 소록도를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데 반발하며 "인권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학계·의료계·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중심이 돼 창립됐다.

소사모는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한센병환자들의 강제노동, 강제적 단종수술 등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 배상 요구, 인권과 사회복지 차원의 한센병 정책을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소사모는 이를 위해 지난해 '국립소록도병원입원자 등의 피해에 대한 진상파악과 손해배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기초하기도 했으며 봉사캠프와 미용 봉사 등을 전개해 왔다. 현재 300여명의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소사모 박동명 정책위원은 "아쉬움도 있지만 소사모의 활동으로 한센병을 인권 문제로 보는 시각이 형성된 점은 성과"라며 "법률안 제정이 당장 어려운 만큼 피해자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녹취하는 등 자료 수집활동에 주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덕모(호남대 교수) 집행위원장은 "사회에서 편견의 벽이 아직 있다"면서 "정치 문제가 아닌 인권적 운동 차원에서 할 일이 많다"고 말하고 "한센병력자 정착촌의 복지 문제 등에 대한 사업도 진행해 갈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배상 등에 관한 법률안' 초안을 마련한 소사모는 윤여준 한나라당 의원과 최종 법률안에 대해 검토를 거친 후,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해 법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소사모가 기초한 법률안은 일제 시대 일본과 해방 이후 과거 정권에 의해 자행된 강제격리와 인권유린에 대한 국가의 배상과 명예회복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과거 소록도병원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상대로 강제 단종수술이 시행된 바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 2001년 강제격리에 대한 배상소송에서 법원은 "적어도 1960년대 이후의 강제격리는 불법"이라며 국가의 범죄행위를 인정해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공개사과를 하고 국가 배상이 이뤄진 바 있다.

국가배상 관련 법 대표발의 할 윤여준 의원
한센병(력)자 인권과 복지를 고민하는 사람①

▲ 윤여준 의원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윤여준(국회 보건복지위) 한나라당 의원은 소사모 고문을 맡고 있다. 윤 의원은 과거 소록도병원에서 자행되었던 인권유린에 대한 국가배상 등을 위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윤 의원은 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시에 나주 호혜원을 취재하면서 한센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지만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 소사모에 참여한 계기는.
"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시에 나주 호혜원을 취재하면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김덕모 교수의 여러 문제제기와 이야기를 듣고 참여했다. 주로 정치적인 인권문제에 관심들이 있었는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권문제로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이와 관련된 문제를 나름대로 제기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에서 문제제기하기도 했다. 또 소록도 병원에 기저귀가 필요한데 복지부 예산이 없어서 봉사단체의 지원을 받아 사용하고 2번이나 3번까지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복지부 예산책정을 한 바 있다."

- 법률안 제정은 어떻게 되고 있나.
"아직 초안에 대한 깊이있는 검토는 하지 못했다. 법안에 대해 대표발의할 생각이다. 가능한한 빨리 법 제정을 할 생각이다.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다른 장애문제는 그래도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애를 쓰고 관심들이 높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장 소외되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민의 의식 전환이다. 부정적으로 되어 있으니 스스로 감추고 그런다. 자기를 드러내기가 힘들 것이다. 이는 편견과 배제 때문이다."

- 한센복지협회 등에서 켐페인을 하고 있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의 인식 전환 홍보활동이 필요 할 것 같다.
"사실 전혀 활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약자들의 자발적 노력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복지부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순위가 있을 것인데 의약분업 등 국민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돼있는 문제가 많다. 국회에서 문제제기하고 정부에 촉구할 것이다."

- 법 제정에 앞서 사회적 합의과정이 필요할텐데….
"피해를 인정해서 보상 할 것인지, 아니면 배상으로 할 것인지 논란이 일 것이다. 정부와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않은 상태에서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 논란을 벌이면서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될 것이다. 입법과정이 사회적 인식 전환과 합의과정이 형성될 것으로 생각한다."

-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복지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안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개선할 문제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책을 마련하는데 노력할 것이다. "
/ 강성관


'정착촌' 복지 활동나선 천성준 관장
한센병력자 인권과 복지를 고민하는 사람②

▲ 천성준 관장
ⓒ오마이뉴스 강성관
윤여준 의원이 소사모와 함께 과거 한센병 환자들에게 자행했던 인권유린에 대한 국가배상에 중심적인 활동을 하고있다면, 천성준 관장은 소위 '정착촌'에 살고 있는 한센병력자들의 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천 관장은 지난 5년 동안의 활동을 성과로 올 3월 29일 왕궁재가노인센터를 개소해 전국최대 규모인 익산시 왕궁면 한센병력자 정착촌(915명 거주)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천 관장은 대학생 시절 왕궁 정착촌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과 원불교 교무로서 왕궁지역으로 부임하면서 한센병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 소위 '정착촌'이란 무엇인가.
"정착촌은 은유적 표현이다. 한국의 한센병 정책에서 파생된 용어다. 1963년 이후 정부는 격리법을 해제하고 3공화국에서 한센환우 정착사업을 전개했다. 많게는 120여개가 되었다가 2003년 현재 전국에 88곳의 정착촌이 형성돼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1만7712명 정도가 한센병력자로 등록되어 있고 소록도 내에는 74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정착촌이나 재가하시 분들은 1만7천여명 정도다."

- 왕궁재가노인센터는 어떤 활동을 하고있는가.
"익산 왕궁면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센환우들의 정착촌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복지, 생활상태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대부분이 고령인데다 독거노인들이 많다. 매월 한방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우들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리치료에도 신경쓰고 있다."

- 정착촌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상황은 어떤가.
"정착마을에는 환자 간호은 물론 한센 병력자들이 주거 환경 훼손 등 주변환경이 심각해 주위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또 이들의 권익옹호와 처우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 한국의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복지정책은 어떤가.
"한국사회에서 한센병이라는 것은 모든 정책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있다. 정치권에서나 사회인권운동 속에서 조차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아직 복지라는 것보다는 치료와 의료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왕궁에서 재가복지서비스를 하는 것은 최초의 시도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 한센병력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물론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인식이다. 그리고 관계부처 등의 사회적 보상 차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나 관계자들은 과거 치료나 격리, 의료적인 인식과 행정이 아니라 의료와 사회복지의 종합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센정책연구소를 설립한 것으로 안다.
"지난해 종합적인 한센병 정책에 대해 정부 등에 한센발전 기획단 구성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발적인 만간차원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소사모 등과 연대해 연구소를 만들었다. 한센 관련 인권, 법률, 복지, 역사, 문화 등 체계적인 정책연구 활동을 할 계획이다. 현재는 몇몇 인적자원으로만 구성이 되고 지금 하나하나 시작하는 단계다. 정기적인 모임에서 정책적인 대안을 준비중이다. 지금은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축적하고 있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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