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를 다시 생각한다

<문화칼럼> 참된 사회파적 작가의 등장을 바라며

등록 2001.12.14 08:20수정 2001.12.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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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예민한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많은 신문사의 응모 마감일이 12월 10일 전후이므로 원고를 보낸 사람들은 당선작이 지면에 발표되는 1월 1일까지 20여 일을 심란하게 지내야 한다.


오늘쯤이면 연락이 와야 하는데... 그러나 기다리는 전화는 없고 온통 쓸데없는 전화뿐이고 취직은 언제 하느냐는 부모님 말씀과 각종 요금청구서에 시달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들뜬 분위기 속을 응모자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된 씁쓸한 기분으로 외롭게 보낸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아직 닷새나 남아 있으니까. 혹시 본심이 지연되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연락이 갈 사람에게는 벌써 가버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난 올해도 안 되는 건가.'

신춘문예와 허수지원자들

나에게도 199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비평문을 냈다 본심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더 먼저 시를 내서 떨어진 적도 있으나 신문사 이름은 잊었다. 아마 두 군데는 냈었으리라. 그래야 확률이 높아지니까.

어제 모 신문사의 소설 부문 응모작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유수한 잡지사의 응모작들과는 달리 허수가 거의 없는 진짜 문학 지망생들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했다.


진지한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하나의 신문에만 응모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세 군데는 내기 마련이다. 조·중·동 가운데 한두 곳에 내고 한국·경향·대한매일·세계 가운데 한두 곳에 낸다. 그렇게 해서 세 곳 정도가 되는데 네 곳은 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므로 대개 두 곳이나 세 곳에 걸치기 마련이다.

반면에 소설 한 번 써볼까 하는, 일종의 허수 지원자들은 조·중·동 가운데 한두 곳에 내면 그뿐이다. 말하자면 응모작 숫자가 엄청난 만큼 허수가 많은 쪽도 커다란 신문사들이라는 것이다.


원고지에 육필로 세로로 써내려간 소설, 컴퓨터로 작성하였으되 볼펜으로 죽죽 그어 여기저기 수정을 가한 소설,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있으되 타인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공부라고는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은 소설들이 '작은' 신문사의 응모작 가운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참된 사회파적 작가를 원한다

이 진지한 응모작들을 대하면서도 나는 기쁜 한 편으로 착잡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한국소설계는 올해도 진지한 사회파적 기질의 작가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절대 소수였고 그나마 문장이나 구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훈련이 부족한 아마추어들이었다. 의미 있는 사회파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문학 수련을 쌓지 않으면 안됨을 왜 자각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참된 사회파적 기질의 작가를, 현실의 무게를 의식하되 그 현실마저 초월적 시선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작가를 원한다.

반면에 이른바 교육받은 창작 기술로 문장이 세련되고 구성미 있는 작품을 낸 응모자들의 작품은 여전히 여성 및 가족 문제, 사이버 공간 문제 등 최근 몇 년을 끌어온 유행적 주제들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기술은 있으나 쓸 것이 없는 상태,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술은 있으되 구태의연하고 작은 세계를 가진 작가들과 기술은 부족하지만 큰 세계를 가진 사람들로 양분된 듯한 오늘의 한국문학이다. 그렇다면 신춘문예 역시 그런 분열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음이다. 기성을 모방하려는 다수와 그것에 저항하려는 소수로 미래의 작가들 또한 그렇게 양분되어 있다.

어렵게, 그러나 반갑게 두어 편 참신한 작품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 감식안이 틀리지 않기를 바랬다.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험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는 없지 않은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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