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는 치외법권 지대인가

[기자의 눈] 연이은 '습격사건'에 무기력한 공권력

등록 2002.03.20 12:50수정 2002.03.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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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다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다 똥물 세례를 받는 이사들.
ⓒ 박종필


2월 8일, 평택시청 송파출장소 에바다복지회 교원징계위원회 회의장 '습격사건'
2월 28일, 권오일 교사 · 남정수 이사 집단폭행사건
3월 15일, 해아래집 야간 습격사건
3월 18일, 에바다복지회 박래군·박경석 이사 '분뇨세례'


최근 폭력으로 점철된 에바다농아원의 상황일지이다. 하지만 이곳 에바다농아원은 그같은 폭력에도 전혀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대이다.

최근 두 달 동안 농아원생들에 의해 무려 4건의 폭행사건이 발생했는 데도 관할 경찰서는 팔장만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심지어 원생들에게 경찰이 멱살 잡히고 폭행을 당했는데도 "조사하려고 원생들을 불렀는데 오지 않는다"면서 책상머리에서 볼펜만 굴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에바다농아원의 신임 이사회로부터 구재단 비호 의혹마저 사고 있다. 무기력한 공권력의 배후가 구 재단이라는 주장이다.

18일 기자가 직접 목격한 에바다농아원 정문 앞에서의 '분뇨 세례' 사건에서 경찰이 보여준 무기력함이 그 대표적인 예다.

기자는 18일 오전 에바다복지회 박래군 이사와 박경석 이사의 농아원 방문을 동행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농아원생들로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카드를 강탈당했고, 두 이사는 두 차례에 걸쳐 '똥 오줌 세례'를 받았다. 원생들은 심지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두 이사에게 '오줌 세례'를 퍼부었다.

당초 두 명의 이사를 대신해 에바다복지회의 남정수 이사는 그간의 폭력사건이 재연될 것을 우려해 18일 평택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남 이사는 "평택경찰서에서는 '배치할 병력이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3일 전에 해아래집에서 폭력사건이 일어난 바 있고, 그 동안 에바다 농아원생들에 의한 폭력사건이 빈번히 발생한 상황에서 경찰의 이같은 무대응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태도였다.

▲ 16일 새벽 에바다학교 농아원생들에게 폭행당해 중상을 입은 이성존 씨.



결국 에바다농아원 관할인 진위파출소 소속 2명의 경찰관이 두 명의 이사가 농아원 정문을 막아선 원생들과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한 지 2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장에 출동했지만, 농아원생들이 이사들에게 오줌을 뿌리는 행위를 직접 목격하고도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진위파출소 김아무개 소장은 "파출소에 근무하는 인원이 4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특별히 시위·대치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출동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뒤 "원생들의 '오줌 세례' 현장에 있던 두 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은 딴 곳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고, 같이 출동한 김아무개 경장은 (바로 전에 뿌려졌던) 분뇨 투척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어서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은 '경찰에 대한 폭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달 28일에는 권 교사와 남 이사에 대한 폭행을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농아원생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당시 두 인사는 출입방해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판결 결정에 따른 공시문을 부착하기 위해 에바다농아원을 방문했고, 원생들로부터 공시문조차 빼앗긴 채 폭행을 당했다.)

또 지난 16일에는 해아래집 폭력사건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 농아원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새 이사진들은 구 재단 측과 평택 경찰들이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새 이사진들이 평택 경찰과 구 재단 측의 결탁의 의혹을 제시하는 근거는 지난달 8일에 발생했던 폭행사건에 대한 경찰의 무대응이다.

에바다복지회 교원징계위원회와 직원인사위원회는 지난 달 8일 송탄출장소 양아무개(에바다 농아원 직원) 씨의 해고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했다.

박래군 이사는 "이때 구 비리재단 측의 농아원생들이 재단 이사장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회의실 문을 발로 걷어차는 행동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이날 역시 20분 뒤에 도착한 전경들이 원생들을 2층에서 1층으로 내려보낸 것이 경찰이 취한 조치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권오일 교사와 남정수 이사에 대한 농아원생들의 집단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20일이 지났는데도 농아원생들이 출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수사를 진행시키지 않고 있다.

평택경찰서 한아무개 형사는 "학생들이 출석을 하지 않아서 진행을 못시키고 있다"며 "정식으로 출석요구서를 3번 보낸 후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법적인 대응을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행범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 폭행자에 대해서도 소환되면 조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아래집의 한 교사는 "경찰관들이 에바다에 한 번도 찾아가 보지도 않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 수사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5일 새 이사진이 평택경찰서를 항의방문해 "출입방해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판결을 받은 바 있는 구 재단 측 인사에 대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평택경찰서장이 "확정판결문을 가져와라. 집행여부를 검토해서 대처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김칠준 변호사는 이와 관련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것은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법원의 법률적 판단인데도 이를 묵인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확정판결문을 집행하는 것은 법원이지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에바다 폭력 사태는 농아인에 대한 경찰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 박래군 이사는 "경찰은 에바다 폭력사태에 대해 농아인을 잘못 건드리면 그 비난을 우리가 다 받아야한다는 식으로 사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이사는 경찰의 이같은 인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이 진정으로 농아인을 위하는 것인지 경찰은 모르는 것 같다. 농아원생들이 구 재단 측의 조정을 받아서 범법행위를 하도록 놔두는 것이 농아원생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구 재단 측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그들이 점차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해아래집 습격 사건'과 그후

지난 16일 해아래집 습격 사건 때 농아원생들에게 폭행당해 병원에 입원한 최경훈, 이성존 씨는 현재 성심병원에 입원해 있다. 경훈 씨는 전치 2주, 성존 씨는 전치 3주의 진단이 나왔다.

기자가 병원을 방문한 지난 18일 경훈 씨는 다친 발에 깁스를 하고 있고, 성준 씨는 원생들에게 맞은 왼쪽 턱이 많이 부어있는 상태였다. 용인대 특수체육학과에 다니고 있는 경훈 씨는 이번 사건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었고, 성준 씨는 사고로 인해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쉬고 있었다.

경훈 씨의 곁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었던 어머니는 "애들이 가만히 맞고만 있어서 이만큼 많이 다친 것"이라며 "다음에는 이런 일 있으면 같이 싸우라"고 말했지만, 어머니의 말에 경훈 씨는 수화로 "참았기 때문에 떳떳할 수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해아래집에 살고 있는 신 아무개 교사는 3월 16일에 농아원생들이 해아래집에 습격한 사건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 교사는 농아원생들이 해아래집에 습격한 이후부터 나갈 때까지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

다음은 신 교사가 목격한 '습격사건' 당일의 긴박했던 순간이다.

"오후 11시 20분에 농아원생 한 명이 회사 일로 급히 의논할 게 있으니 하북 농협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세지를 해아래집에 살고 있는 이군의 핸드폰으로 보냈어요. 평소에 이군과 회사일로 연락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아이들에게 밤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어요.

12시 40분에 발자국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10명의 남자 농아원생들이 갑자기 유리문을 깨고 들어왔습니다. 그때 같이 있던 김 선생님이 바로 112에 신고를 했어요. 병훈이와 성준이를 공격하러 간 원생들은 여학생 방이 남학생 방인 줄 알고 착각하고 들어갔다가 화가 나 방문을 통째로 부수고 농에 있던 집기들을 다 박살내고 선생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방에 들어와서는 먼저 전화기를 부수고 제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어요. 아마 경찰서에 연락을 못 하기 위해 그런 것 같아요. 핸드폰이 없으면 연락수단이 없어지니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싸웠어요. 같이 들어온 다른 학생은 선생님들의 핸드백을 다 뒤져서 핸드폰 밧데리를 다 가져갔어요. 그래서 지금은 핸드폰 밧데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들은 선생님 방을 빠져 나와서 남학생들 방으로 갔습니다. 병훈이는 컴퓨터 리포트를 하고 있었고, 성준이는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농아원생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제일 처음 성준이를 때리더라고요. 농아원생들 7명이 성준이의 목을 누르면서 주먹으로 얼굴을 막 때렸습니다. 나머지 3명은 뒤에 있던 병훈이한테 가서 발로 병훈이 얼굴을 가격하고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서 때렸습니다.

병훈이는 그 당시에 농구를 하다가 발을 삔 상태였는데 원생들은 병훈이의 다친 발을 계속 공격했습니다. 성준이는 PD수첩에 나와서 원생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였다고, 병훈이는 성준이가 다른 애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어서 PD수첩에 제공했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때린 것 같아요. 애들이 들어와서 성준이 병훈이 때리고 도망간 시간이 불과 5-10분 밖에 안 되었어요.

사건이 다 끝나고 경찰이 신고를 받고 달려왔는데 경찰이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모두 유유히 사라졌고 농아원생의 한 명은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고 달아났어요. 병훈이와 성준이는 많이 다쳐서 바로 119응급차에 실려 중앙성심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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