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번역에 접하여

등록 2002.03.21 11:31수정 2002.03.22 14:12
0
원고료로 응원
17년 동안 쓴 작품을 13년 동안 번역한 책! <피네간의 경야>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책이 외국어로 번역되기는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작가는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이고 그 번역자는 그의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김종건(金鐘健) 선생이다.

이 <피네간의 경야>는 영어를 기본어로 삼은 소설이다. 그러나 조이스 특유의 보편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인 시각을 대변하듯 이 작품은 60여 개 언어가 난무하는 언어의 일대 경연장으로, 세계 문학사상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난해한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 번역 소식을 접하기 전에 우연히 엘리어트의 비평을 읽다가 이 작품에 대해 일종의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간단히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저 괴물과 같은 걸작을 쓴 제임스 죠이스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정밀한 설명 없이는 그 대부분이 한갓 아름다운 헛소리에 불과할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아마 죠이스는 자기 책이 얼마나 난해한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피네간즈 웨이크>의 지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어떤 것이든간에, 나는 대부분의 시가 그런 방식으로 씌어지거나 , 혹은 그 감상과 이해를 위해서 그런 종류의 해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최종수 번역 <비평의 한계>중에서)

즉 <피네간의 경야>는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이들조차도 설명 없이는 제대로 읽어내려가기 힘든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세계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고전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한국인들이 그 정신적 고양을 위해 세계문학을 필요로 한다면 이 책이야말로 언젠가 한 번은 번역되지 않으면 안될, 그러면서도 번역되지 않은, 접근 금지된 필독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 소중한 번역본을 한 번 떠들어 볼까!

"강은 달리나니. 이브와 아담 교회를 지나, 해안의 변방邊方으로부터 만灣의 굴곡까지, 회환回還의 광순환촌도光循環村道 곁으로 하여, 호우드(H)성城(C)과 주원周園(E)까지 우리들을 되돌리도다……"

첫장부터 이 책은 읽는이들로 하여금 당혹하게 하는 점이 있다. 도대체 '광순환촌도'란 무슨 말이며 '호우드성과 주원'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 난해함, 한자어, 의고적인 문체는 번역자 자신이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의 것이라고 하니, 이렇게밖에는 옮길 수 없는 번역자의 고민이 없을 수 없겠다. 번역자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역자는 여기 이 별난 <경야>의 번역을 최초로 세상에 띄우면서, 그 속에 담긴 새로운 문학성과 기이한 조어들이 오늘의 한국인의 정서에 어떻게 감동할지 큰 관심사이다. 특히 그 1/3이 한자로 된 이 번안이 한자의 배타성을 띤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의아스럽다."


그러면서 그는 괄호를 열고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었다.

"(오늘날 한글의 단일 문화주의는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한자의 사용은 결코 우리의 순수 문화주의를 해치거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이제 우리의 순수성은 국제적 이질 문화의 용광로 속에서 용출해야 한다.)"


한글전용 문제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더러 깊은 토론을 필요로 하는 일이므로 나는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해 몇 마디 남기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도한 한자어의 새로운 조합이 제임스 조이스가 새로 발명한 "꿈의 언어 language of dream", 그 신조어들을 옮기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한글 전용을 둘러싼 논쟁 이전에 이 번역은 '애란인'의 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의 용적을 확장시킨 훌륭한 작업이다.

652페이지에 달하는 크라운 하드커버 책을 펼쳐보며 나는 이런 평생의 작업을 펼치는 이들이 있으므로 한국문화는 아직 희망과 가능성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가 이 번역에 매달린 십수 년 동안 한국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가. 그러나 그 변화에 초연했을 한 사람에 의해 한국문화의 새로운 진보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더딤, 그러나 그 촘촘함이 나를 새로 깨우친 오늘이다.

덧붙이는 글 | 경야란 經夜, 즉 밤을 지새는 것, 특히 장례식이나 축제 따위에서 밤을 지새는 것을 말한다. 피네간이란 신화에 나오는 벽돌운반공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경야란 經夜, 즉 밤을 지새는 것, 특히 장례식이나 축제 따위에서 밤을 지새는 것을 말한다. 피네간이란 신화에 나오는 벽돌운반공이라고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