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문사 문제로 포천을 다녀와서

강의택 하사 사망사고 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등록 2002.04.09 18:30수정 2002.04.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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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7일 육군 제5군단 직할 145정보대대 1중대에서 복무 중 사망한 강의택 하사의 사망 사고에 대한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공개발표' 통보에 따라 어제 (8일, 월) 오후에 경기도 포천을 다녀왔다.


그 동안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유족 측은 군에 대해 '수사결과 공개발표'를 요구하면서 발표 장소로 서울 명동의 '인권회관'과 용산의 '용사의 집'을 제시해 왔다. 그리하여 본 기자도 수사결과 공개발표 요청이 포함된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지난 3월 13일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군 측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유가족과 인권위 측의 수사결과 공개발표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그것을 '내용증명' 우편 통보로 대신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해당 부대와 인접해 있는 경기도 포천의 '승진회관'을 제시해 온 것이다.

기자가 유족으로부터 연락과 함께 동행 요청 메일을 받은 때는 하루 전인 7일 오후였다. 급작스럽게 준비를 해야 했고, 하루종일은 물론이고 어쩌면 이틀 정도의 시간이 소모될 지도 모를 일이어서 급한 작업을 미리 해 놓느라 거의 밤샘을 해야 했다.

유족 측에서 대절한 버스가 오후 1시경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을 한다는 일정 통보에 따라 오전 10시에 기사가 사는 충남 태안터미널을 뜨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3시간 만인 오후 1시경 서울 명동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서해안고속도로 덕분이었다.

대절 버스에 동승을 한 인원은 고(故) 강의택 하사의 유족들과 '군의문사유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 회원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관계자들을 합해 모두 25명이었다. 여인들이 대부분인 군가협 회원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에 있는 '승진회관'의 마당에 도착한 때는 3시 40분경이었다. 다수의 영관급 장교들을 포함하여 많은 군인들이 나와 있었다. 군인들 중에는 정장 차림의 사복 군인도 여러 명이었고, 군 검찰관도 배석을 하고 있었다.


군 측에서 유가족들에게만 발표회장 입장을 허용하고 언론사 기자들과 군가협, 인권위 관계자들은 통제를 하리라는 말에 따라 기자도 유족으로 행세하기로 하고 별도의 이름을 유족들에게 알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군 측은 아무에게도 입장 통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체의 사진 촬영과 녹음을 금한다는 게시문을 유리문에 부착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통제 의지가 확고했다. 그리하여 회관 출입문에서부터 군인들과 유족들 사이에서는 실랑이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유족들의 울부짖음으로 처음부터 몹시 격앙된 분위기였다.


군 측은 부대 규정과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계속 촬영과 녹음을 불허한다고 했고, 유족들은 너무도 추상적인 그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군 측은 촬영된 사진이나 녹음이 잘못 이용될 수도 있다는 이유를 첨가했지만 그것도 모호하고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카메라와 녹음기를 휴대는 하되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가까스로 발표회장 내 착석이 이루어졌다.

발표회장의 전면에는 '故 강의택 사건 발표회'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발표회 순서'도 게시되어 있었다. 그 순서표에 따라 발표회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 故 강의택 하사 영령에 대한 묵념
2. 인사말 : 5군단 정훈 공보 참모
3. 부대 입장 설명 : 5군단 145정보대대장
4. 수사 결과 발표 : 5군단 헌병대 수사과장
5. 질의/응답 : 수사과장 외 수사 관계자 및 참고인
6. 폐회 : 정훈 공보 참모

그러나 처음부터 진행이 순조롭지를 못했다. 카메라의 작동에 따른 군 측의 제지, 유족들의 고함과 울부짖음 때문에 소란스러운 상황이 자주 빚어지곤 했다. 그리고 중간에 도착한 SBS 방송기자들의 입장을 둘러싸고 회관의 로비 쪽에서 또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고, 카메라를 들고 들어온 방송사 카메라맨은 잠깐 동안 발표회장 전면만을 찍고 나가야 했다.

발표회장의 총 지휘 책임을 맡은 5군단 인사참모 조정환 대령은 참을성 많은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보였으나, 사건 발생 당시의 정보대대장과 5군단 헌병대장은 각각 중령과 대령으로 진급하여 이임을 한 상황이어서 유족들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는 심정이었고, 그에 따라 최근에 새로 부임한 정보대대장과 헌병대장은 사건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곤욕을 치르는 형국이었다.

5군단 헌병대 수사과장 김광식 소령은 다른 의문사 장병의 유가족들로부터도 많은 불만과 원성을 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강의택 하사의 사망사고를 수사함에 있어 처음부터 '자살'이라는 쪽으로 '예단'을 하고, 그 예단에 철저히 얽매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살이라는 결론을 위해서만 억지로 꿰어 맞추기 식의 조사를 벌였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하리만큼 그가 발표한 수사 결과는 참으로 허점이 많아 보였다. 유족과 인권위 측에 '내용증명'으로 보낸 서면 통보를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질의/응답' 순서를 설정했으면서도 유족과 인권위 측의 예리한 질문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예리한 질문을 훤히 예상했으면서도 끝까지 수사 결론을 고수하기로 작정한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수사 과정상의 부분 부분에 대한 명확하고 세세한 기록 정리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차트 같은 자료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도 안이하게 보이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인권위의 오창래 '군폭력/군의문사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국민을 깔보는 방약무인한 태도라는 호된 질책도 들어야 했다.
군 수사기관에 비해 유족과 인권위가 준비한 반박 자료들은 참으로 세밀하고도 방대했다. 두꺼운 두 개의 차트 뭉치 속에 강의택 사망사고가 얼마든지 자살이 아닐 수 있는, 타살 가능성을 충분히 제고시킬 수 있는 '사항'들이 조목조목 예시되어 있었다.

사건 현장 사진, 사체 사진, 엑스레이 촬영 사진, 부검 사진, 군의관과 부검의 소견, 법의학 전문가 소견 등등이 치밀함과 정확성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음을 기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대목에서 군 수사진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자살'이라는 결론이 그들의 목덜미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 속에서 그들은 오로지 그 결론만을 고수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하여 억지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답변이 노출되기도 했는데, 실탄의 사입구(이마)와 사출구(뒷머리)와 탄착점의 불일치(심한 각도 오차)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인 억지일 터였다. 군 수사기관의 주장대로 강 하사가 선 자세로 총을 반듯하게 들고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밀어서 발사를 했을 경우, 머리에 명확하게 형성된 실탄의 사입구·사출구와는 너무도 편차가 큰 탄착점의 심한 각도 오차에 대해서, 탄환이 사출되는 순간 그 통과 지점의 충격에 의해 탄착 방향이 크게 틀어질 수도 있다는 답변은 너무도 군색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 사건 현장의 산개한 혈흔 사진에 나타난 단 한 곳 혈흔이 전혀 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도 수사진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인권위 오창래 위원장은 사전에 '교육받은' 병사들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발생 시간, 사건 발생 당일의 아침식사 메뉴 등도 사체 부검 결과를 토대로 명확히 예시했다.

그러나 오창래 위원장은 준비한 질의와 반박들을 모두 활용하지 않았다. 군 수사기관의 부실한 수사 결과 발표로 사건이 모두 종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다음의 상황을 위해서 아껴두었다고 말했다.

발표회의 모든 순서가 끝난 후 헌병대장의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5군단 헌병대에 재 수사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로 보인다. 재 수사 가능성도 희박할 뿐만 아니라 재 수사를 한다 해도 결론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수사 의지, 수사 기법, 그 외의 모든 면에서 명확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를 해당 부대 자체 수사력으로서는 극복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오창래 위원장은 국방부 차원의 재 수사를 요구할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국회 국방위에까지 가서 사건 설명을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치밀하고 방대하게 준비한 설명 자료들을 아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행사를 마치고 저녁 6시 30분 경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일행은 한결같이 허탈감 속에서 울분을 짓씹어야 했다.

특히 고 강의택 하사의 어머니는 "포천의 군 병원 사체 냉동실에 아들의 시신을 놓아두고 어찌 돌아갈 수 있는가!"하며 오열했다. "의택이가 죽은 날부터 내 생활도 없어졌다"는 말 속에는 군에서 아들을 잃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통한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심성이 착하고 순량했다는 고 강의택 하사는 끝내 자살로 처리될 것인가? 그리하여 끝내 그 불명예의 낙인을 안게 되므로써 유족들에게 평생토록 이중의 아픔을 안겨 줄 것인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든, 그는 언제쯤 군 병원의 사체 냉동실에서 나와 영원한 안식의 자리를 얻게 될 것인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오늘 태안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기자는 우리 나라의 군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병영 문제―의문사의 실체를 가슴 가득 무겁고도 괴롭게 안고 오는 기분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어제 하루 동안 함께 했던 군가협 회원들의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을 적어볼 생각이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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