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결혼식 풍경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6.02 09:08수정 2002.06.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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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필리핀에 가게 된 일행은 모두 열두명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올라온 백남종씨의 부모님과 딸 은주, 영암에서 올라온 외숙 내외, 서울에서 사는 누이동생, 회사의 태안화력 현장 소장과 직원 3명, 그리고 나와 내 아들. 백남종씨는 결혼식 리허설 관계로 하루 전에 출국을 해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장을 비롯한 회사 직원들은 전에 필리핀에서 근무했던 경력들을 지니고 있어서 필리핀의 현지 사정들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원래는 우리와 함께 가기로 했던 백남종씨가 혼인 예식을 할 성당 신부님의 리허설 지시에 따라 하루 전에 먼저 출국한 사실로 인해 나는 필리핀 성당의 결혼식 풍경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이 얼마나 성대하길래 리허설까지 필요한 것일까?

오후 7시 3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1시간이 늦은 필리핀 시간으로 12시쯤에 마닐라공항에 도착하니 백남종씨가 마중을 나와 있더군요. 그때 나는 백남종씨와 딸 은주의 상봉 장면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반갑게 만나 서로 얼싸안는 부녀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그 후 함께 행동하며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챙겨 주는 백남종씨에게서 참으로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지요.

일행은 두 대의 렌트카(승합차)에 나뉘어 타고 남쪽으로 2시간쯤 밤길을 달려 바탄가스 시 외곽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참 덥더군요. 필리핀은 지금이 한여름이고 여름방학 중이랍니다. 밤에도 너무 더워서 밤새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다음날 백남종씨는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고, 우리 일행은 9시쯤 호텔을 출발, 결혼식이 예정된 성당으로 갔습니다. 'SAINT MARY EUPRESOR PARISH'라는 이름의 이 성당은 인구 30만명인 바탄가스 시에 있는 여러 개 성당 중에서 작은 편에 속하는 성당이라더군요. 하지만 400명 정도가 함께 앉아서 미사를 지낼 수 있는 규모의 성당이었습니다.

필리핀 성당들은 대개 아침 7시에 교중미사(주미사)를 지낸다더군요. 필리핀 국영 텔레비전 방송은 마닐라 시 한 성당의 아침 7시 교중미사(삼위일체대축일 장엄미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를 하더군요. 그 미사 중계를 보면서도 필리핀이 가톨릭 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7천만명에 달하는 국민의 90%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므로, 거의 모든 결혼식이 성당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대부분의 성당들이 주일마다 몇 건씩의 결혼식을 치른다는군요. 바탄가스 시 SAINT MARY 성당도 그날 여러 건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백남종씨의 결혼식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라고 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뜰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처녀 총각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기혼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여러 명 예복을 입은 모습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예쁘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역시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예복을 입은 남녀 어린이들이 여러 명 맨 앞에 줄을 지어 서 있더군요.

우리 일행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앞부분에 앉았고, 백남종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 신랑측 부모석으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되었는데, 사회자가 여성이더군요. 우리 한국에서의 혼인미사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사회를 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주례 사제 입장에 이어 곧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맨 먼저 예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입장을 하더군요. 두 명씩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차례로 들어온 남녀 어린이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 숙여 절을 한 다음 각기 양편의 자리로 가 앉는데, 동작들이 하나같이 활기차게 보이더군요.

그 어린이들의 맨 뒤에 홀로 들어오는 어린이는 백남종씨의 딸 은주였습니다. 은주는 신부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은주가 들어와서 자리에 앉자 곧 어른 들러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기혼 남녀 들러리들이 두 명씩 손을 잡고 들어와서 제대 앞에서 절을 하고 각기 양편의 자리에 앉는데, 모두 네 쌍이었습니다. 그 네 쌍 기혼 남녀 들러리들 중에서 두 명의 남자는 한국인이었습니다. 한 명은 신랑 백남종씨의 직장 상사인 소장님이고, 또 한 명은 신부의 직장 상사였던 대림산업의 현지 소장님이고….

기혼 남녀 들러리들의 입장에 이어 처녀 총각 들러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는데, 열 쌍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미소를 짓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어와서 제대 앞에서 절을 하고 각기 양편 자리로 가 앉는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진지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하는데, 모든 하객들의 힘찬 박수 속에서 성가가 울려 퍼지더군요. 성가는 성당 뒤편 한쪽에서 세 명의 아가씨가 마이크를 잡고 부르는데, 참으로 듣기 좋더군요.

반백의 주례 사제는 미사의 첫 부분인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등 한국말도 구사해서,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의 오늘 결혼에 미리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나는 혼인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면서도 제대 앞을 지날 때는 꼭꼭 허리 굽혀 절을 하는 등 천주교 신자로서의 정중한 태도를 필리핀 사람들에게 잘 보여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를 썼습니다.

신랑은 양복이 아닌 필리핀의 전통 예복을 입었고, 신부는 드레스 위해 투명한 베일을 쓰고 있는데, 그 베일은 신랑의 몸도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서도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신부의 이름은 러마 알 도미노. '러마'는 속명이기도 하면서 영세명이기도 하다더군요. 대학을 나온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인 그녀는 한국 기업인 대림산업에서 경영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했답니다. 꽤 높은 임금으로 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왔답니다. 결혼 때문에 최근 직장을 그만 두었는데, 그 자리를 여동생이 이어받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동생이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라 월급이 적어서 가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더군요. 그래서 백남종씨가 앞으로 처가를 좀 도와주어야 할 형편인 듯….

백남종씨는 러마씨와 만나 사귀고 사랑을 하게 되면서 일찌감치 자신이 초혼에 실패한 처지임을, 그리고 딸아이가 하나 있음을 얘기했답니다. 자신에게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다는 사실이 러마씨의 마음을 더욱 움직이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백남종씨는 내게 했지요. 이혼 전력이 있는 자신의 그런 흠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결혼까지 해 주는 러마씨를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며, 평생토록 뜨겁게 사랑해 주고 싶다는 말도 그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러마씨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 성스러운 시간에도, 과거에 헤어진 은주의 생모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소식 끊어진 지가 이미 오래지만, 그 사람도 새 출발을 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백남종씨가 필리핀의 한 성당에서 필리핀 여성 러마씨와 결혼식을 올리는 그 행복한 순간에도 과거의 헤어진 여인, 딸 은주의 생모를 위해서도 진심으로 기도했으리라는 것을….

필리핀 성당의 혼인미사는 '별도 미사'가 아니고 '주일 미사'를 겸하는 것 같았습니다. 혼인미사 중에도 헌금을 하고, 많은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더군요. 전반적으로 매우 성대하고 치밀하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들은 성가가 정말 아름답더군요.

미사 후에 진행된 사진 촬영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들러리들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성당에서의 사진 촬영 후 일행은 모두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피로연장으로 이동했지요. 피로연장은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점이었습니다.

음식점 건물 주위로 많은 자리들이 만들어졌는데, 홀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어린이들부터 들러리들이 성당에서처럼 짝을 지어 차례로 입장을 했고, 한국인들을 포함하여 신부의 친척 정도가 들어가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는 여러 가지 고급 음식들이 많이 놓여져 있더군요.

식사가 끝난 후에는 아무나 자유로이 홀 안으로 들어가서 특별하게 꾸며진 자리에 앉은 신랑신부에게 가서 인사를 교환하더군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부에게 축의금 봉투를 주더군요. 축의금 대신 선물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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