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도 아닌데 책임질 사람 없다?
'제2 효순이' 없으려면 책임 물어야"

[인터뷰] 미군전차 압사사건 희생자 효순양의 부친 신현수

등록 2002.07.01 12:45수정 2002.07.11 16:44
0
원고료로 응원
▲미군 장갑차에 깔려 희생당한 고 신효순 양의 부모가 딸의 죽음에 넋을 잃은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임경환


효순이의 빈자리/강수연·김용남 기자

"오늘도 여기를 4번이나 지나칩니다. (손으로 도로 옆 풀섶을 가리키며) 저기가 사고 장소입니다."

지난 29일 오후 의정부의 미2사단 레드클라우드 부대 앞에서 진행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제2차 범국민대회'를 마친 뒤 용달차를 끌고 기자를 마중 나온 고 신효순 학생의 아버지 신현수(49)씨는 힘없이 사고 장소를 가리켰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10여일전 친구 생일을 축하해준다면서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선 딸의 뒷모습이 어린거리는듯했다.


관련
기사
- 미군부대 안쪽으로 ' 항의 계란 ' 세례 시위대, 의정부역까지 시가행진



급작스런 딸의 죽음에 수심 가득한 신씨

▲ 신 양의 아버지 신현수 씨ⓒ오마이뉴스 임경환
믿어지지 않는 급작스러운 딸의 죽음. 검게 그을린 전형적인 농부 모습의 신씨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 13일 효순이는 미선이와 함께 생일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집으로 가던 중 뒤에 오던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압사당했다. 효순이의 생일은 사고 다음날 14일. 총 학생수가 100명이 채 안 되는 초등학교에서 6년 동안 같이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동기들은 거의 '가족'과 다름없었고, 때문에 매년 생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친구들끼리 모여 생일파티를 하곤 했었다. 그날 효순이와 미선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고현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효순이가 살았던 집이 있었다. 효순이 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한 허름한 한옥집이었다. 살림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집안은 적막감이 감돌았고 효순이 어머니 전명자(41)씨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사고 발생 16일째. 효순이 어머니는 아직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슬픔을 넘어 미군 측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 28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 누구도 힐책해야할 만한 죄가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는 미2사단 공보실장 겸 대변인 브라이언 메이커 소령의 발언에 화가 나 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누구의 과실도 아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미2사단을 대표해서 공모실장이 나온건데, 사람이 말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건 어떻게 보면 유가족뿐 아니라 한국민을 다 조롱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효순이 부모가 딸의 사고소식을 접한 것은 지방선거를 마치고 다른 일을 보려던 순간에 걸려온 이장의 전화를 통해서이다.

신씨는 "동네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는데 누군지 확인 좀 해 보라"는 이장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효순이가 사고 당사자였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 떨어져 있던 신발 한짝, 아직 목숨은 붙어있겠지…

▲ 신 양의 어머니 전명자 씨가 딸의 죽음을 비통해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임경환
"사고 현장에 갔더니 애들은 이미 응급차에 실은 상태고, 현장을 살펴보니까 신발 한 짝이 있더라고요. 우리 애 신발은 아니어서 혹시 이거 누구 신발이냐 그러니까 미선이 아빠가 '우리딸내미 신발'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어떤 옷을 입고 있었냐'고 경찰관한테 물어보니까 '청바지에 까만티를 입은 애가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우리 딸내미라는 것을 처음 알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죽었다고 생각은 못했고, 핏자국만 보고 추병원에 있다길래 쫒아 갔더랬죠. '아직 목숨은 붙어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응급실에 갔더니 영안실에 내려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죽었다는 것을 처음 안 겁니다."

효순이는 1남 3녀 중 둘째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자식이면 다 똑같이 소중하겠지만 효순이의 유난히 착하고 부지런한 딸이었다. 그래서 효순이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였다.

"효순이는 학교를 갔다 와서도 일을 참 잘해 줬어요. 엄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다 보면 잘 못 챙겨 주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간되면 알아서 밥도 다 해놓고 그랬어요. 하루는 엄마가 밥을 하려고 보니까 효순이가 밥을 해 놨는데 질더라구요. (농담으로) '에이 우리 딸내미 바보야 밥도 제대로 못해, 언니는 잘하는데'라고 말하니까 '나도 좀 있으면 잘해'라고 대답하던게 아직도 생생한데…."

이 말을 하는 신씨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효순이의 빈자리는 언니, 누나, 동생 등 한 방에서 같이 지냈던 '피붙이'들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기 싫어서 신씨는 자식들을 작은 집에 맡겨놨다.

"셋째 딸내미는 병원에 있고요. 큰딸하고 아들은 작은댁에 내려가 있습니다. 애들도 심란하죠. 근데 이제 될 수 있는 한 애들까지 너무 충격에 휩싸이는 게 싫어서 작은 집으로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막내아들이 자꾸 학교에서 "작은 누나 죽었어, 죽었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야단을 치기도 했습니다."

효순이가 죽은 뒤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일궈냈지만, 효순이의 부모에게 한국 축구의 '승전보'는 달갑지 않았다. 오히려 '원수'였다. 월드컵 보도 때문에 효순이의 사망사건이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8강이다, 4강이다 좋다 그러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그것이 웬수다 그랬어요. 왜 4강, 8강 그것만 보도하고, 사고가 나서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거는 왜 보도에 묻혀야 하는건지. 월드컵 기간 중에 미국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고 해서 전부 묵살시키고 있진 않은건지."

월드컵 보도에 묻힌 두 여중생의 죽음, 4강 승전보가 '원수'다

▲ 이번 사고로 희생된 고 신효순 양(왼쪽)과 심미선 양의 영정 사진.ⓒ오마이뉴스 임경환
효순이 아버지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미군 측이 유가족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다. 현장조사 때 참석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몰래 현장조사를 진행하려고 했고, 브리핑 시간도 아무런 연락없이 변경하는 등 유가족과의 약속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효순이 아버지는 이번 사건이 운전자의 과실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제2의 효순이'를 막기 위해서다.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탱크 한 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도로 위에서 두 대의 탱크가 교행을 하도록 지시하였냐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운전자 과실도 있겠지만 지휘체계에서 어떻게 잘못 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도로폭이 3m 20cm밖에 안 나오고 탱크가 3m 70cm 정도 나옵니다. 원래 도로폭이 탱크보다 2m 정도 더 넓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교행이 가능했냐는 겁니다. 교행했기 때문에 이것은 예고된 사고입니다. 효선이가 아니라 다른 보행하는 사람이 있었어도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효순이 아버지는 압사사건의 전차를 운전한 마크 병장이 이번 사건으로 처벌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고, 이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제2의 효순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미군측에 요구한 것은 마크 병장의 처벌이 아닙니다. 유가족이나 언론을 통해 지휘자들이 어떻게 지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달라는 겁니다. 미군 측의 책임있는 사람이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한쪽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던 효순이 어머니는 "지금 아무 할 말이 없다"며 침묵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을 받고서야 효순이 어머니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지금 말 못해요. 딸만 생각하면 눈물만 나오고 진짜 말 못해요. 그게 제일 부지런하고 착했는데. 진짜 엄마 말이라면 잘 듣고 그랬는데. 저녁때쯤 되면 들어오는 것 같고 밤이면 더 생각나고…. 밥먹을 때도 진짜 옆에 있는 것 같고.

엄마 힘들게 밭에서 일하고 오면 진짜 걔가 다 했어요. 밥상 같은 거 잘 챙기고 지 동생 들 다 챙겨주고 진짜 엄마노릇을 지가 다 한거죠. 빈자리가 더 커요. 언니는 고등학교 다니니까 늦게 오고, 지는 학교에서 일찍 오고 그러니까 걔가 엄마올 때 되면 밥상 차려놓고 '엄마 밥드세요' 그러는데 진짜 걔만 생각나요."

신씨, 아픈 기억 떠올리기 싫어 효순이 방 정리

▲ 주인잃은 고 신효순 양의 쓸쓸한 공부방 ⓒ오마이뉴스 임경환
효순이의 방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효순이의 유품을 들여다보면서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효순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아직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god)를 보며 열광할 나이에 효순이는 너무 일찍 떠났다. 미군 궤도차량은 효순이가 전교생 앞에서 '미술대회 은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박탈해 버렸다. 효순이는 한달전에 지역예선 미술대회에 참석해 은상을 받았지만 아직 전교생 앞에서 상장을 받지 못했고, 또 본선 대회에 나가서 실력발휘할 기회마저 빼앗겼다.

효순이 어머니는 사고 전날 마을 앞 놀이터에서 찍은 효순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남겨놓은 그림 한 장을 바라보며 효순이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효순이의 빈자리를 메워주기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