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지도를 보면 NLL(지도 좌우로 난 꺾은선 형태의 점선) 바로 아래 지금은 어로 활동을 할수 없는 곳에 조기어장(지도 하단의 NLL 바로 아래 비스듬히 누운 타원형 실선)이 형성되어 있다.오마이뉴스 공희정
연평도에서 조기가 사라진 뒤 나타난 것이 바로 꽃게였다. 현재 연평도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것도 꽃게다. 꽃게잡이를 통해 연평도는 '제2의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대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2의 황금시대'는 조기와 함께 했던 '제1의 황금시대'처럼 언제 또다시 물거품이 될지 알 수 없다.
앞서 보도한 기사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적정규모를 넘어선 어망의 설치 등으로 합법적인 조업구역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어족까지 감소했다. 그래서 어민들은 조업구역 밖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다수의 어선이 조업구역은 물론이고 적색선까지 넘어가 어망틀을 설치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선주협회의 공식문서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일부 어민은 적색선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NLL까지 넘은 경우도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어민들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월선조업을 하는 데는 자연적 조건도 영향을 준다. 향토지 <연평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어획이 '어로저지선' 북쪽에서 이루어졌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적색선과 NLL 사이의 완충지대는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6월이 되면 꽃게는 북쪽으로 대거 이동한다.
꽃게 떼를 따라 어부가 쫓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잘만 하면 한꺼번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벌 수 있는데, 1인당 3-7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어민들이 참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물 위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더욱이 그 경계선도 남한과 북한이 각자 다르게 설정해 놓고 있다. 한쪽에선 자기 해역에 들어가는 것이 다른 쪽에선 '침범'이 된다.
물론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동족에게 선제공격을 한 북한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설사 유엔 해양법상 자신들의 영해에 들어온 경우가 됐다손 치더라도 그들도 결국 당신들의 형제가 아닌가.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에게도 문제는 있다. 하나같이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듯하다. 조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안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제일 크다.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 대대수 언론은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도하기보다 '국가주의'의 틀에서 안주하려 한다. 분단국가의 특수성 운운하기도 하고, 골치 아프게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의 오해를 받기도 싫은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동안 모든 피해는 연평도 어민들이 감수해야 한다. 그 와중에 젊은 병사들은 언제 또다시 화염에 휩싸일지 모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렇게 신나게(?)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전혀 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방식을 되풀이 하는 한 결국 하나가 돼야 할 한민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연평도 어민들은 하루빨리 황금어장에 들어가 평화롭게 꽃게를 건져올리고 싶다.
| | | "선장들 주장 사실 아니다" | | | - 군 당국 관계자 <반론 인터뷰> | | | | <오마이뉴스>는 어제(7월 5일) 인터뷰한 두 선장의 주장과 관련, 군 당국자의 반론 인터뷰를 싣는다. 내용 가운데는 합참본부 등에서 발표한 것과 엇갈리는 진술도 있지만 그대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우선 연평도 95**부대와 해군2함대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가 어제 인터뷰 한 두 선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연평도 96**부대 관계자는 "지휘통제실에 알아본 결과 28일 출항금지를 내린 바 없으며 정상적으로 오전 6시에 출항했으나 북한군의 기동이 포착돼 오전 8시 21분 복귀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 "26일, 27일에도 오전 6시 정상적으로 출항해 일몰전까지 정상조업을 했다"면서 "북한군의 기동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8일 오전 '연평지선어장 내에서만 조업을 하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고 오전 6시 출어를 허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당시 5명의 연평도 선장은 '당연한 것을 왜 서명하냐'며 항의하며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해군 2함대 김웅 공보관은 "적색선은 군의 기밀사항이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그 위치를 알려줄 수 없는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적색선을 넘은 배는 없으며, 만약 적색선을 넘는 어선이 있다면 해군은 비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평도 어협이 옹진군청을 통해 어민들의 서명을 받아 3차례 월선조업을 신청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월선한 어구를 회수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불법조업을 근본적으로 근절시키지 않는한 허가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허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군2함대는 작년까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월선한 어망을 걷어올 수 있게 조업구역 이탈을 허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공보관은 "하지만 연평지선어장을 넘어 (월선)조업하는 배는 종종 있었다"면서 "월선을 했다고 해서 자인서를 끊는 것은 아니며 철수를 거부하고 행패를 부리는 어선에 대해서만 자인서를 끊고 있다"고 말했다. / / 특별취재팀 | | | | |
[제10신: 7월 5일 오후 3시 10분]
"교전 직전 연 3일 어선 50여 척 북진
적색선은 수시로... NLL도 넘은 적 있다"
- 교전 당시 조업 두 선장 인터뷰
어제(7월 4일) 저녁 9시 15분 연평초등학교 앞의 한 식당.
취재팀은 이 식당의 한 방에서 이번 서해교전 발발 당시 근방에서 조업을 했던 선장 두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제10신으로 올린다.
| | | "'연평총각'은 실제 연평도 선원" | | | <디지털 말> 현지에서 확인 취재 | | | | 지난 1일 '서해교전의 진실'이란 글을 신해철 인터넷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게재해 진실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연평 총각'이라는 ID의 주인공이 실제로 연평도의 선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신문인 <디지털 말>은 오늘(7월5일) "연평 총각이라는 ID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대학생 김 아무개씨로 현재 연평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지털 말>은 연평도에서 현지 취재하면서 한 피시방에 들렀다가 컴퓨터에 저장돼있는 '연평총각'이라는 ID의 흔적을 발견한 뒤 주변 취재를 통해 최근 인터넷상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는 '연평총각'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그간 일부 언론들은 "인터넷상에 떠돌아 다니는 '연평총각'이라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네티즌의 글을 기초로 우리 어부들이 서해교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디지털 말>이 '연평총각'의 신원을 밝힘에 따라 이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평총각'은 지난 1일 신해철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이번 서해교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2쪽짜리 글을 올린 바 있고, 곧바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그는 이 글에서 "우리 어민들이 단합해 NLL을 먼저 침범했고, 해군은 우리를 호위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 특별취재팀 | | | | |
이 두 사람은 6.29 서해교전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 있어 상당한 단서를 제공해 줬다. 이들의 증언은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것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온전히 세상에 전달되지 못했다. 몇몇 언론사가 이들의 증언을 '모자이크 처리'를 통해 화면에 내보내거나 '익명'으로 지면에 등장시키긴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핵심적인 발언은 제외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그 동안 각종 언론을 통해 6.29 서해교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뿐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과의 대화는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들은 가끔 주위에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문을 자주 열어보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취재진과 만나기 전 이들은 이곳까지 찾아온 군 수사관들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40대인 A호 선장 ㄱ씨, B호 선장 ㄴ씨.
한 사람은 외지인이고, 또 한 사람은 현지인이다.
<오마이뉴스>는 신분보장을 위해 두 사람에 대해 여기까지만 소개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의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드러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기사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 나눈 모든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처리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분명히 알아둘 것이 있다. 두 사람이 증언한 '사실'이 그대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두 선장이 누구보다 신빙성이 있는 목격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6월 29일 직접 조업에 참여했고, 현장 가까이에서 전후 사정을 지켜봤다.
독자마다 가지고 있을 가치 판단과 상관없이 서해교전의 진상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위한 여러 증언 중의 하나로 여겨주기 바란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 | 연평도 어민들 시민연대 발족 추진 | | | - 재향군인회장 신남석 씨 등 60며 명 참가 | | | |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한 연평도의 일부 어민들이 어민회에서 불법조업 무마 등을 위해 관련 기관 등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5일 연평도 일부 어민들은 '연평도 어민회가 어민들로부터 받은 회비 일부를 불법조업에 따른 로비자금으로 쓰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민회는 연평도와 소연평도 소속 어선 56척으로부터 지난 2000년부터 매년 회비(60만원)와 쓰레기 처리비용(40만원) 등의 명목으로 어선 한 척당 100만원씩 2년간 모두 1억1천200만원을 거둬들였다.
어민들은 그러나 '쓰레기 처리비의 경우 폐그물 처리를 위해 매년 한 차례씩 인부 2명을 고용, 인건비로 쓴 것에 불과하다'며 2년간 쓰레기 처리비 명목으로 거둔 4천480만원에 대한 사용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평도 재향군인회 회장 신남석(申南石.52)씨 등 어민 60여명은 어민회의 비리와 부패 감시를 위해 도서지역서는 최초로 시민단체의 발족을 추진중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인천지역 시민단체와 연대, 연평도 시민연대 지부 설립 등의 방안을 검토중이다.
신씨는 '어민회가 관련 기관과의 회식 등 어민들로부터 매년 받은 돈의 일부를 불법조업 등을 무마하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며 '어민회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조만간 인천의 시민단체와 연대 및 지부설립 등을 협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 | | | |
- 그간 일부 언론에 이번 사태의 원인이 연평도 어민들에게 일부 있다는 진술을 했는데, 그 이유는 뭔가?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한 것처럼, 연평도 어민들은 꽃게 어획을 늘리기 위해 불법으로 조업구역 밖에 뿌려 놓은 어망을 조업 마감 기간인 6월 30일 이전까지 회수해야 했다. 이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액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할수 없었던 해군2함대가 다행히 이 요구를 승낙해줬다.
6월 27일 오전 출항 허락이 떨어져 출발했지만 일부 어선들이 적색선(어로저지선)까지 넘어 조업을 했다. 하지만 츨항한 지 1시간 30분만에 '빨간 바가지'(북한 경비정)가 뜨는 바람에 회항해야 했다.
6월 28일에는 해군이 출항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조급해진 30여 척의 어선들이 일제히 무단으로 출항을 했다. 그리고 선장들은 비상통신 주파수를 맞춰 오전 8시에 일제히 조업구역을 벗어나는 월선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빨간 바가지'가 떴다. 그래서 어선들은 오전 12시 회항해야 했다.
전날의 무단출항에 놀랬는지 해군은 6월 29일 적색선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출항을 허락했다. 출항하는 어민들에게 사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6월 29일에도 12척의 어선이 이를 어기고 적색선을 넘었다.
그런데 오전 8시경 갑자기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북한 경비정이 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선들은 이를 무시하고 조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교전이 벌어졌고, 죄없는 젊은 병사들이 죽게 된 것이다.
만약 어선들이 해군의 지시를 어기지 않고 조업을 했더라면 북한군도 자극받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50척이 넘는 배들이 일제히 적색선을 넘어 3일째 북진을 하는데 놀라지 않겠나."
- 최근에는 항법장치가 잘 발달돼 있어 좌표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왜 적색선을 무시하고 조업을 강행하나?
"자꾸 언론에서 적색선이니 NLL을 따지는데, 그것은 해군이나 알지 선장과 어민들은 솔직히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 자세한 적색선의 한계와 NLL의 좌표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육지가 아니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이다. 서울에 앉아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민들은 해군에서 무전으로 경고를 해줘야 그때서야 적색선을 넘었는지 알게 된다. 일부 연평도 어선들 중에는 NLL을 넘은 적도 있다."
-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나. 당신들이 직접 NLL을 넘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NLL이 좌표에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회항을 하고 나면, 월선을 밥먹듯이 하는 선장들은 자신이 적색선으로부터 6마일을 더 나갔느니, 5.5마일을 더 나갔느니 하며 자랑한다. 보통 적색선으로부터 3-4마일 앞이 NLL이다. 그래서 NLL을 넘었다고 말한 것이다."
- 예년에는 월선의 빈도가 어땠나?
"올해에만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월선은 이곳에선 하나의 관행이다. 일부 어선들은 벌금을 낼 각오를 하고 월선을 했다. 특히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꽃게 수확이 현저히 줄었다. 당연히 눈치를 보던 어선들도 하나둘 월선을 해서 어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조업구역을 넘어 적색선 근처에 설치된 어망만도 그 숫자가 8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
- 어떻게 그 수치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바다에는 어망틀을 설치하면 부표를 띄워서 위치를 표시한다. 그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 다른 해와 달리 조업구역 밖과 적색선 근방에 어망을 많이 설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월선을 하게 되면 벌금을 물거나 사법처리를 받게 되는데, 올해에는 처음부터 일부 선주들에게는 '자인서'만 받고 이를 방조했던 것이다. 이번에만 연평도 어민들은 약 70여 통의 '자인서'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거의 사법처리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월선을 하게 됐고, 어망을 철거하기 위해 단합해서 강력하게 군에 협조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번에 서해교전이 벌어지던 날과 그 이전 이틀 동안에도 연평도에 있는 모든 어선이 출어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당시 두 사람은 어디에 있었나?
"교전이 벌어지던 시각에 18번 부이 근방에서 어망틀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조업구역 밖에 두 척의 어선이 있었는데, 고속 경비정이 다가와 회항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고속 경비정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이내 NLL 쪽으로 향했고, 남아 있던 두 어선은 재빨리 서쪽으로 더욱 더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날 우리가 봤던 두 척의 경비정 중 하나가 이번에 침몰한 경비정이었다."
[제9신: 7월 5일 오전 11시]
MBC가 서해교전 특종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6월 29일 오후 5시 첫 제보, KBS는 거부했다"
- '최초 제보자' 신남석 씨 인터뷰
▲서해 교전 최초 제보자, 신남석 씨오마이뉴스 공희정
취재팀이 연평도에 들어온지 오늘(7월 5일)로 사흘째다. 당초 오늘 이곳을 떠날 계획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태풍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지금 연평도는 '태풍전야'를 연상시키고 있다. 어제 낮12시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이후 바다에는 어선, 여객선의 출항이 모두 통제되면서 오늘 오후 1시 인천으로 향하려던 여객선 역시 발이 묶였다.
지금 연평도에는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포구에는 어선에 내걸린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어선 출항이 통제되면서 포구에서 어민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시각 연평도는 쥐죽은듯이 고요함 가운데 적막감마저 들고 있다.
이곳 연평도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가옥들은 모두 볼품없지만 지붕위에 내걸린 접시모양의 TV수신용 위성안테나다. 주민들에 따르면, 두달 전쯤 월드컵을 앞두고 모두 새로 시설을 구비했다고 한다. 외딴 섬이지만 TV시청 하나만은 대도시 뺨칠 정도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어제 약속했던 대로 서해교전과 월선조업의 관계를 설명해줄 한 주민과의 인터뷰 기사를 올리는 일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인터뷰는 어제(7월 4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사실 이 기사는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주협회 공문을 입수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
| | | MBC, "몰아세우기 유감" 반박 | | | | 6.29 서해교전 사태 발생 이후 연평도 현장취재를 통해 국내 언론 가운데 이를 가장 심도있게 보도해온 MBC가 국방부, 정치권 및 일부 보수언론으로부터 '본질을 호도한 왜곡보도'라는 식으로 공격을 받자 MBC는 4일 <뉴스데스크>시간에 엄기영 앵커의 멘트를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MBC는 사태 발생 후 북측의 무력 선제공격은 분명 잘못된 것이나 연평도 어민들이 어업저지선을 넘어 월선조업을 한 관행 역시 문제가 있다고 현지 어민들의 증언을 통해 보도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남측책임론'을 거론한 것이냐"며 MBC의 보도태도를 공격하고 나섰다.
다음은 4일 에서 엄기영 앵커가 관련보도 말미에 앵커 멘트를 통해 사회 일각의 비판에 대한 유감표명과 함께 이번 서해교전 사태의 보도에 대한 MBC의 입장을 밝힌 내용이다.
엄기영 앵커: MBC뉴스는 서해교전 이후 연평도 일부 어민들의 저지선 넘어 조업을 처음으로 보도했었습니다. 서해상의 긴장을 해소하고 또 안전조업을 위해서는 꽃게어장에서 무리한 조업을하는 관행도 시정돼야 한다는 판단에였습니다.
아울러 북한군의 선제공격이 명백히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또 그들의 무력도발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과 일부 언론에서는 MBC가 모든 책임을 어민들에게 돌려서 북한의 도발을 물타기하고 있다고 계속 몰아세우기를 해 왔습니다.
MBC는 이에 대해서 상당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앞으로도 사실에 입각한 보도 그리고 남북화해와 공존을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는 데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 정운현 기자 | | | | |
신남석 씨(52).
그는 서해교전이 벌어지던 당일 가장 먼저 MBC에 제보를 했던 사람이다. 서해교전 당시 현장에 수십척의 어선이 있었으며, 사실 그 지역은 어선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으며, 그러나 그런 불법적 월선조업은 연평도에서 관행처럼 있어왔다는 사실 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기까지는 그의 역할이 컸다.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신 씨는 연평도 재향군인회장도 맡고 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그는 해병대에서 10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장기복무를 했다. 월남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거실 벽에는 대통령에게 받은 국가유공자 증서와 참전용사 증서, 그리고 훈장이 걸려 있다.
신 씨가 연평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월남전에서 돌아온 뒤 배치된 곳이 바로 이 섬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연평도는 이제 그의 진짜 고향이 됐다.
그는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말문을 닫아버리는 다른 대다수 주민과 달리 취재진과 만나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밝혔다.
"설사 맞아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할 말은 하며 살고 싶다. 물론 이북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 경비정을 향해 선제공격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서해교전이 있던 당일에 우리 어선이 어로한계선을 월선한 것과 이를 통제하려던 해군 경비정과 숨바꼭질을 벌였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어선들이 북방한계선 쪽으로 접근함으로써 서해교전의 일부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제일 먼저 MBC에 제보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처음부터 MBC에 제보를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첫 제보는 다른 모 방송사(나중에 그는 그 방송사가 KBS였다고 밝혔다) 본사 보도국에 했다. 그런데 달갑지 않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MBC로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MBC는 제대로 전화를 받았다."
- 첫 제보를 한 시점은 언제인가?
"서해교전이 발생했던 6월 29일 오후 5-6시경이었다."
- 그 제보 때문에 연평도 주민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어민들 때문에 수많은 젊은 생명이 다치거나 죽어가는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직접적 원인은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이었지만, 어민들도 어로한계선을 벗어나 북방한계선에 접근함으로써 교전의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병사들의 유족과 가족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을 알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제보한 것이다."
- 현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어떻게 알게 됐나?
"우선 현장에 조업을 나갔다가 전 과정을 지켜보고 돌아온 어민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당섬 선착장에 실려온 전사자의 시신과 부상자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나는 해병대에서 장기근무를 했고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 사람이다.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직접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제보 사실이 알려진 뒤 어려움은 없었나?
"MBC에 제보한 것이 알려진 뒤 협박전화를 많이 받았다. '바다에 나가지도 않았던 놈이 왜 나서 가지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느냐'는 것이 그들이 나에게 퍼부은 비난이었다."
-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나?
"어로구역이 좁으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어로한계선을 넘어가면 꽃게가 많이 잡힌다. 어민들이야 한 마리라도 더 잡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6월 말이면 조업이 끝나는데 올해의 어획량은 예년보다 4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어망을 설치하느라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민들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월선을 한 것이다."
- 특별히 올해에 어획량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조업상의 기술적 문제도 있었을 테고 수온도 예년에 비해 턱없이 낮아졌다. 조업구역에서 너무 많이 잡다 보니 줄어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꽃게가 아무리 많아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 어민들이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략 얼마나 되나?
"어선 1척당 평균 2-3억원 수준은 될 것이다. 어망 한개 설치하는 데 대략 800만원이 든다. 그런 것을 30~50개 설치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가격이 얼마나 될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선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선원 5~6명은 데려와야 한다. 그들 각자에게 선도금으로 5백만원을 준다. 그 비용은 거의 모두 객주에게 빌린 것이다. 결국 그게 다 빚이 된다."
- 어선들의 월선 빈도수는 얼마나 되나?
"월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곳 연평도에서 그것은 관행에 가깝다. 선주들은 현재의 조업구역이 작다면서 늘려 달라고 수산청 등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을 자주 넘어오나?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자주 넘어온다. 이북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어떤 때는 연평도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월선하는 우리 어선과 북한 경비정 사이에서 해군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해군은 어민 보호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어선이 어로한계선을 넘으면 당연히 막을 수밖에 없다."
- 그 과정에서 해군과 어민이 갈등하거나 충돌하는 일도 발생하나?
"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그것도 '또하나의 전쟁'인 셈이다. 그러나 어민을 보호해야 하는 선박은 몇 척 되지 않는다. 옹진군에서 운영하는 비무장 어업지도선 2척과 해군 경비정 6척이 전부다. 56척이나 되는 어선이 사방으로 흩어지면 사실상 통제가 어려워진다."
- 통제하려는 측과 벗어나려는 측이 있으면 '특혜 시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이야 육지나 바다나 똑같지 않겠는가. 파워 있는 사람이나 그와 친한 선주의 어선은 월선을 해도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어선은 불리한 처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 뭐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는가?
"이번에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해군의 통제를 무시하고 제일 깊숙이 월선을 해서 문제가 된 어선은 그 '파워 있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배였다. 그 사람은 현재 연평면의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데,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당장 알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선주들도 그 사람을 지지해서 덕을 보려는 측과 그 사람을 반대하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측으로 나뉜다."
- 월선을 하지 않는 어선도 있나?
"드물긴 하지만 그런 경우도 있다. 사실 여기에 바로 문제의 핵심이 있다. 법을 지키는 사람은 꽃게를 많이 잡지 못해 손해를 보고, 도리어 법을 안 지킨 사람이 잘 사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북 경비정이나 어선이 북방한계선 쪽으로 다가오거나 넘어오면 우리 어선은 철수해야 한다. 합법적으로 조업하던 어선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그런 어민들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 행정 관청에 이런 사실을 알린 적은 없나?
"관청만이 아니라 통제소에서도 이런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주민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나처럼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남이나 씹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으로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실을 숨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 | "월선을 막으려면 진작 막았어야지" | | | - '연평도 고스톱'과 '연평도식 언론비평' | | | | 어제(7월 4일) 저녁 8시 30분 연평초등학교 앞의 한 식당.
이곳이 바로 서해교전 현장을 직접 지켜본 두 명의 선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다. 취재진은 늦은 저녁식사도 해결할 겸 이 식당을 인터뷰 장소로 정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식당에선 마침 네 명의 주민이 빙 둘러 앉아 '국민오락'인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잠시 어깨 너머로 고스톱 판을 구경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고스톱 규칙이 다른 곳과 많이 달랐다. 고스톱 전문용어(?)로 '싸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본 점수에 해당하는 돈을 별도로 지불한다.
그 대신에 '쌌던' 사람이 패를 뒤집어서 다시 '싹쓸이'를 해오면 다른 사람의 패 중에서 피를 맘대로 가져갈 수 있다. 그밖에도 몇가지 특이한 규칙이 있었는데, 기자가 고스톱 문외한인 관계로 독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그런 규칙을 따르다 보니 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왜 그런 규칙을 만들었는지 묻자 한 주민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뱃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애. 꽃게 풍년이 들 때는 한번에 큰 돈을 만지다 보니, 사람들이 겁없이 통이 커진 거지. 다른 지역에서 하는 고스톱 방식으로 치면 도대체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 사람들은 이걸 '연평도 고스톱'이라 불러. 그런데, 기자 양반도 '연평도 고스톱' 한 판 치실라우?"
잠시후 9시 뉴스가 시작됐다. 오늘도 연평도 소식이 한 꼭지 포함돼 있었다. 어선들의 월선 단속 문제가 나오자, 힘껏 패를 내리치던 한 주민이 한마디 했다.
"지랄들 한다. 아, 그걸 이제 와서 새삼스레 왜 가지고 그래. 언제는 그런 일(월선조업)이 없었나. 매일 있었던 일인데. 막으려면 처음부터 막았어야지."
그렇다면 이것은 '연평도식 언론비평'이라고 이름붙여야 할까. / 특별취재팀 | | | | |
[제8신: 7월 4일 오후 7시 15분]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7월 4일 연평도 현지에서 입수한 연평도 선주협회(이하 선주협회)와 옹진수협 연평출장소(이하 옹진수협)의 공식문서를 통해 연평도 어민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나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월선조업'을 일상적으로 벌여온 사실이 확인됐다.
아울러 월선조업을 통해 조업구역 밖에 설치된 어구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연평도 어민들의 엄청난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심각한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긴급대책 마련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주협회의 공식문서 중 일부를 입수해 가장 처음 보도한 것은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7월 3일 '월선어구 세부계획 상정안'을 입수,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의 '월선조업' 사실을 문서로 공식확인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