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후 첫 급여 7000원, 이후 10만원
노동자 '온건' '구제불능' 등 성향 관리"

[발전노조 파업 복귀 100여일] 노조원 '인권 실종'의 보고서

등록 2002.07.11 18:54수정 2002.07.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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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발전산업노조 타결 관련 집회를 열고 있는 조합원들.
지난 4월 3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발전산업노조 타결 관련 집회를 열고 있는 조합원들.오마이뉴스 이종호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과자나 우유하나 먹이더라도 해고된 동지들의 아이들과 나눠먹으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애한테 '아빠 회사가 파업해서 어려우니까 조금만 참아, 예전처럼 해줄테니까'라고 얘기하면 알아듣는지 잘 참네요. 좋아하는 책도 맘대로 사주지 못하고, 놀러 데리고 나가지도 못해 미안하죠."

발전산업노조 산별조직국장인 이동기(39)씨는 두 자녀를 둔 가족의 아버지다. 그는 현재 회사측의 징계를 앞두고 있으며, 아직은 해고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지난 90년 회사에 입사해 12년째 근무했다.

파업 이후 첫 급여가 나온 4월에는 5만원이 나왔는데, 그래도 남들보다 많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후 5월 25일 급여로는 60여만원 정도. 다른 사람들의 경우 4월에 7000원, 5월에 10~50여만원 사이에서 입금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터무니없는 돈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적금도 해약하고, 마이너스 대출도 받는 등 5600여명의 노조원들이 피눈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한달동안 노동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발전노조 파업이 끝난 지 100여일. 하지만 아직도 노동현장으로 복귀한 발전파업 노동자들이 겪어야하는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서 열린 '발전노조 인권실태 조사 보고 및 파업참가자 인권문제 토론회'에서는 38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한 발전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 실종'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앞으로 조합활동시 어떠한 인사조치도 감수한다는 서약서 강요하기'
'불법파업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배상에 대한 노조원 재산, 임금 가압류'
'파업 참가자를 온건·중간·강성·구제불능 등 4단계로 분류 관리'


11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서 '발전노조 인권실태 조사보고 및 파업참가자 인권문제 토론회'를 열렸다.
11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서 '발전노조 인권실태 조사보고 및 파업참가자 인권문제 토론회'를 열렸다.오마이뉴스 유창재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발전노조 인권실태 인권단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발전 노동자들의 인권탄압 실태이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5월말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실천시민연대, 새사회연대 등 12개 인권단체들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6월말까지 5개 발전회사 현지방문 등을 통해 발전노동자 인권실태를 조사해왔다.


이들은 이날 A4용지 70여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책자형태로 묶어냈고, 이 보고서를 통해 "파업종료후 현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은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서약서' 작성 및 생존권을 위협하는 재산가압류 조치 등 다양한 형태의 보복성 인권침해를 당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협박까지 받으며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문서로 검증하고자 하는 '서약서' 작성을 강요하는 행위 자체로 인해 개인에게 굴욕감과 자괴감을 갖게했다"면서 "이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노동권의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발전산업노조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토론회에서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파업 이후 5개 발전회사에서 공통적으로 현업에 복귀한 조합원들 모두에게 서약서가 강요되었다"며 "조합원들이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을 때는 이후 있을 징계심의 때 정상참작에 있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명문화함으로써 서약서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한국남부발전주식회사 서약서 2종
한국남부발전주식회사 서약서 2종
또 오 사무국장은 "서약서는 산업자원부의 일률적인 지휘를 받아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조합원들은 서약서 작성을 통해 내면의 가치와 양심까지 고스란히 드러내야 하고 이후 행동까지 약속해야 하는 등 '상당한 정도의 굴욕감을 느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공동조사단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 산업자원부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주무 과장은 발전노조의 파업배경을 "한전에서 분할되면서 고용이 불안하거나 급여가 깎이지는 않았지만, 한전직원이라는 자존심을 계속 갖지 못해 파업을 일으켰다"거나 "강성인 민주노총의 조직강화를 위한 부추김 때문에 파업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공동조사단은 "발전노조의 파업이 단순한 생존권적 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발전노조 스스로 '발전소 매각 반대, 민영화 반대'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서약서를 통해 조합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했다는 데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파업참가자의 행동기록표를 작성하도록 해 구제 절차 과정에서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온건/중간/강성/구제불능' 4단계로 등급분류제를 실시해 노동자들의 개개인에 대한 감시와 사찰로 심리적 불안감을 안겨줬다고 한다. 파업복귀자 전원에게는 '문답서'를 작성했는데 구제의 목적보다는 조합의 활동을 파악하고 일상적인 제약과 가치판단을 강요함으로써 개별적 양심을 유린한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노동조합 방문자의 노조사무실 출입차단과 노조원 동태감시 및 조합원간의 회합 방해, 홈페이지 차단 등 통신상 활동 방해 등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4월 26일 청평양수발전처의 조합원들이 일과시간 이후 간담회를 열자, 회사 측에서 '통신비상' 조치를 취해 조합원들 자택에 전화를 걸어 간담회 참석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에 회사 측은 "우연의 일치다"라며 '통신비상조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일상적인 것으로 조합활동을 방해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한편 노항래 공공연맹 연대사업국장은 "회사측은 발전노조의 파업을 업무방해로 확대해서 발전노조원 3400여명에 대해 211억을 가압류·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외 다른 사업장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가압류·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는 방법으로 신종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권영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도 "가압류 및 손해배상소송은 실제 손해에 대한 민사상의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무관리 차원에서 조합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일반 조합원 전원을 상대로 가압류를 제기해 총체적인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권 변호사는 "이는 가족의 생계수단과 보금자리마저 앗아가는 반인권적인 탄압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심지어 신원보증인에게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해 이런 심리적 압박을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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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노조 37일 ' 산개투쟁 ' 의 원동력?

이날 토론회에 발전노조원들과 함께 참석한 신종승 발전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은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생계에 대한 압박을 못이기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개인의 자존심 마저 탄압받는 서약서를 쓰게 된다"면서 "이제는 노조원들의 소외된 가슴에는 분노만이 남아 있고, 발전산업 50년의 역사 속에 종속적인 임금의 노예로 취급받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발전산업노조 산별조직국장인 이동기씨도 "조합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노조활동을 그만두고 회사 지시에 순응할 경우 복직도 최우선으로 시켜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정상적인 조합활동을 못하면서 조합원동지에게 모든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회사는 파업의 원인에 대한 일말의 양심적인 가책도 느끼지 않고 선조치로 노조를 차단하는 행동을 취해 고통을 주고 있다"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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