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바위가 어머니가 오르셨다는 치마바위최성수
어차피 비가 내려 할 일도 없던 터라 나는 녀석을 태운 채 차를 몰고 문재를 넘습니다. 실은 녀석의 투정을 보면서 나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입니다.
차가 계촌을 지나 십여 분 달리자 오른쪽에 있던 강이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고 이내 금당계곡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금당계곡?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금당계곡이 아니라 개수(介水)입니다. 열두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려 열두 개수라고 부른다는 곳, 바로 어머니의 고향입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개수로 향한 길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처럼, 젖어 있습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빗줄기 속으로 차를 몹니다. 뒷자리의 늦둥이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말이 없습니다.
빗줄기 속으로 옥수수밭과 음식점들이 스쳐가고,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강물만 보입니다. 강물은 온통 흙빛입니다. 이름대로 열두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린 물이 한군데 합수하여 우당탕탕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두 골짜기의 한 곳이 바로 어머니의 고향입니다. 열 아홉에 시집오기 전까지, 어머니의 어린 기억들이 남아 있는 곳,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개수가 바로 여기입니다.
"그날은 왜 그리도 눈이 많이 내렸는지. 가마꾼들이 미끄러져 발을 헛딛기 일쑤였고, 가마 멀미 때문에 온 몸이 다 가라앉을 지경이었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함께 찾아왔던 이곳에서 어머니는 회한에 젖은 눈빛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저기가 벼랑모루야. 저 바위벼랑을 껴안다시피 지나야 대화 장에 갈 수 있었단다."
"저 바위는 치마바위네. 내가 어릴 때 미역 감으며 올라갔던 바윈데."
"저 산을 넘어 내가 여기 처가에 왔었지. 참 깊고 깊은 산중이었는데…. "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이는 것마다 추억에 젖어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그리곤 두 분의 감탄은 어머니가 사셨던 옛 집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집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니? 뒷마당 나무도 그대로네."
"저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