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 '안티학벌' 선언

'학벌없는 사회' 9월 월례토론회에 참석 해

등록 2002.09.09 07:40수정 2002.09.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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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학벌없는 사회' 9월 월례토론회가 연세대에서 열렸다
7일 오후 '학벌없는 사회' 9월 월례토론회가 연세대에서 열렸다석희열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편집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한 '학벌없는 사회'(대표 홍훈) 주최 '노무현 후보 초청 9월 월례토론회'가 7일 오후 3시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2천여명의 청중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렸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김상봉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은 첫머리발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단순한 차이가 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고, 개인의 차이를 학력과 학벌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불평등한 서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는 이처럼 획일화된 서열에 따라 부와 권력을 너무도 불평등하게 분배한다"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학벌 폐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노무현 후보가 행사장을 들어서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노무현 후보가 행사장을 들어서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석희열

그는 또 "이미 살인적인 경쟁의 장이 되어버린 교육현실은 황폐화되어 우리의 입시경쟁은 점점 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면서 "학벌은 우리 사회에서 넘을 수 없는 단절의 벽을 쌓고 또 학벌문중이 다르면 서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우리사회에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효율적인 사회적 관계의 원칙이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학벌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학벌서열 타파를 위한 '안티학벌 선언'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노무현 후보는 학벌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수직사회를 열려있는 수평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노무현 후보는 학벌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수직사회를 열려있는 수평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석희열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노무현 후보는 발제에 앞서 "노무현이 학벌이 짧기 때문에 주최측에서 날 이곳에 부른 것 같지만 노무현은 학벌이 없어도 국회의원도 됐고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도 됐다"면서 "까딱하면 대통령도 될 모양이니 (주최즉에서) 잘못 짚었다"고 특유의 유머러스한 화술을 펼쳐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노 후보는 발제에서 "서울대 졸업장을 한번 따면 영원히 울궈먹는 것이 학벌병폐 중의 하나"라고 말문을 연 뒤 "제가 가지고 있는 고시합격증도 평생 울궈먹는 신분증명서라는 점에서 서울대 졸업장과 같다"며 그런 점에서 자신도 학벌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또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개각에서 60%, 16대 국회에서 38%, 법조계의 80%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들었다"고 소개하며 "더욱 심각한 것은 위로 갈수록 서울대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 즉 우리 사회의 좋은 자리는 서울대 출신이 독점하고 그것이 세습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서울대 독식론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토론회에는 2천여명의 청중이 행사장을 가득 메워 노무현 후보와 홍세화 한겨레 편집위원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2천여명의 청중이 행사장을 가득 메워 노무현 후보와 홍세화 한겨레 편집위원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석희열

노 후보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의 법과 그 바깥의 법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인사 승진 등에서 자신들의 범주에 속하느냐에 따라 심사기준이 달라진다"며 "남들이 갖지 못한 정보를 그들이 독점함으로써 특권의 사회로 정착된다"고 정보의 비대칭성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노 후보는 또 "이런 특정집단의 논리와 메커니즘이 기회의 균등을 해치고 성 바깥의 사람들에게 한없는 불이익을 주고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이른바 서울대 지배이데올로기를 비판한 뒤 "학벌이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게 해야하며 이를 위해 모든 사회의 룰과 모든 일의 절차와 기회에 있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학벌주의 해체의 대안을 제시했다.

민주당 정동채, 이재정, 이미경 의원도 이날 토론회를 지켜봤다(둘째줄 왼쪽부터 정동채, 이재정, 이미경 의원)
민주당 정동채, 이재정, 이미경 의원도 이날 토론회를 지켜봤다(둘째줄 왼쪽부터 정동채, 이재정, 이미경 의원)석희열
노 후보는 현행 대학입시제도와 관련 "1등부터 5천등까지 순서대로 서울대에 가는, 즉 한줄세우기 입시제도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황폐화시키고 학벌병폐의 주범"이라고 진단하고 "학벌중심사회의 폐해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자율성이 없고 창의력이 떨어지는 가부장적 수직사회를 해체하고 개방적이고 기회가 균등히 주어지는 수평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 후보는 또 학벌폐해를 줄이기 위해 공정, 다양화, 분산 및 분권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획일적인 줄세우기가 아닌 다양한 입시제도의 생산과 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제도의 개발이 필요하다"면서 "승자속에서 패자가 완전히 소외되고 격리되지 않는 합리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서울대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이 무엇보다 선차적인 해결과제임을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참석한 홍세화 한겨레 편집기획위원은 "노 후보가 고시학벌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KS(경기고-서울대)라는 학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신세가 됐다"며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서의 망명생활을 소개한 뒤 "프랑스에는 대학이 평준화돼서 학벌이 없었다. 우리 사회도 학벌이 없는 사회로 가야 한다"면서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도 파벌 때문에 노 후보께서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거 다 없애야 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홍세화 위원은 "학벌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을 광란의 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세화 위원은 "학벌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을 광란의 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석희열
그는 또 "프랑스에 비해 한국의 교육은 광란의 장이다. 하루 14시간 학생들이 수업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들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벌주의에 의해 청소년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 병폐의 핵심"이라며 "광란의 장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벌어진 노 후보와 홍세화 위원의 1:1 토론에서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에서의 교육은 당연히 공공성을 갖고 참여기회를 모두에게 줘야한다"는 홍세화 위원의 견해에 대해 노 후보는 "잘 살고 못 살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미국식보다는 공공성과 공교육을 강조하는 프랑스 등 유럽식의 사고를 존중한다"고 화답했다.

우리의 교육환경과 관련하여 홍세화 위원의 교육에 있어서 권위주의 문제의 극복방안에 대한 물음에 노 후보는 "학교 운영위원회와 대학 교수협의회 등이 제대로 운영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와 원칙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문화와 습관을 바꾸어 하나 하나 성공의 사례와 모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수십명의 열성팬들이 홍세화 위원에게 몰려가 사인을 요청하자 한사람도 빠짐없이 해주고 있는 홍세화 위원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수십명의 열성팬들이 홍세화 위원에게 몰려가 사인을 요청하자 한사람도 빠짐없이 해주고 있는 홍세화 위원석희열
노 후보는 또 "서울대의 학부를 20여명의 교수가 최소 10년간은 개방하자는 주장이 있다. 또 학벌을 타파하려면 장기적으로 대학의 평준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홍세화 위원의 질문에 "너무 어려운 문제다. 단과대별로 민영화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서울대를 죽이는 것보다는 서울대와 대등한 여러 개의 대학과 학과를 만들어야 한다. 학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독식하지 않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면서도 "기회가 주어지면 과격하게 해결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한편 이날 토론회장에는 민주당 이미경, 이재정, 정동채 의원이 나와 간간히 터지는 노 후보의 유머에 폭소를 터뜨리며 2시간 30분 동안 토론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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