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파업 노정대립 또다시 안개속

진압과정 알몸수색 등 인권유린 책임자 처벌 새 불씨

등록 2002.09.14 23:34수정 2002.09.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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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병원파업 강제진압 김대중정권 규탄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전면적인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
14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병원파업 강제진압 김대중정권 규탄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전면적인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석희열

지난 11일 새벽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보건의료노조 병원파업 공권력 투입에 항의해 민주노총은 14일 오후 3시20분 서울 종묘공원에서 5천여 명의 노동자와 대학생 등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고 전면적인 대 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 향후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노정대립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집회에서 민주노총 유덕상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회사에서 "지난 11일 병원파업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탄압은 1300만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며,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는 자본과 정권의 심장을 향한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강력히 규탄하고 △경찰병력 즉각 철수 △강남성모·경희의료원 노사대화 즉각 재개 △경찰투입 책임자 문책 △두 병원 특별감독 실시 등의 수습책을 내놓을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한 여성조합원이 "병원파업 강제진압 김대중정권 규탄한다"는 구호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다
한 여성조합원이 "병원파업 강제진압 김대중정권 규탄한다"는 구호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다석희열
유덕상 직무대행은 또 "방용석 노동부 장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만약 정부가 두 병원사태를 수습하지 않는다면 17일 또 다시 대규모 도심집회를 열 것"이라고 경고하고 "동시에 주5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 경제특구 설치, 공무원 노동3권 보장 등 전체 노동현안과 연계하여 하반기 대정부 총파업투쟁으로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의 수습책 마련을 거듭 촉구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은 "경찰이 가톨릭 성지인 병원 내 성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성당 안에 피신해 예수상과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도록 가톨릭 교단이 사전에 서류로 동의해준 사실에 대해 가톨릭 교단의 태도 표명을 요구한다"면서 "더욱이 가톨릭 교단이 11일 오후 3시에 명동성당 주임신부와 노조 집행부의 파업 해결을 위한 대화자리를 약속해놓고 공권력 투입에 동의하는 등 부도덕한 이중태도를 보인데 대해서도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지난 11일 경찰의 농성노조원들에 대한 강제진압과 폭력적 연행 및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폭언과 부상, 성추행 의혹 및 알몸수색 등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요구 투쟁을 국회 국정감사투쟁과 연계해서 전개할 것으로 보여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이날 연대사를 통해 김대중정권을 강력히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이날 연대사를 통해 김대중정권을 강력히 비난했다석희열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연대사를 통해 "김대중정권은 노동자 농민 서민을 배반한 배신정권이요, 원천적인 불법정권"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뒤 "노동자 농민 다 죽이는 김대중정권과 경찰을 국민이 엄중히 심판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이 정권을 청산하자"며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현찬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도 연대사를 통해 "이렇게 많은 우리 노동형제들이 노동현장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알게 됐다"고 말문을 연 뒤 "김대중정부는 우리의 여중생 둘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는 무능한 정권"이라고 비난하고 "이러한 정권에게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맡길 수 있겠느냐"며 "우리 함께 똘똘 뭉쳐서 이 땅의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을 함께 지켜내자"고 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정해선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투쟁사에서 "정부는 자기들 입으로 잘 해결해보자고 해놓고 11일 새벽 기습적으로 공권력을 투입하여 우리 조합원들을 개 끌듯 끌고 갔다"고 강력히 비난하고 "전국의 노동자 농민 동지 여러분들이 실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더 큰 투쟁의 길에서 승리의 벅찬 가슴으로 다시 만나자"고 사자후를 토해냈다.

근래 최대의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악질 사용자 처벌, 민주노조 사수, 노동법개악 저지와 경찰병력 투입·노동운동 탄압 김대중정권 규탄대회'라는 긴 명칭의 이날 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종묘공원을 출발하여 명동성당까지 2시간에 걸친 거리행진을 벌였다.


오후 4시 10분경 민주노총의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대규모의 거리행진이 시작되자 시위규모는 삽시간에 7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모처럼 만난 거대한 거리행진이 신기한 듯 길 가던 수백 명의 시민들이 인도를 가득 메운 채 지켜보기도 했다.

이날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하던중 경찰의 저지에 항의해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날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하던중 경찰의 저지에 항의해 연좌농성을 벌였다석희열
대규모의 군중에 놀란 경찰이 종로3가 네거리에 이르자 시위대의 행렬을 막는 바람에 수천명의 시위대들이 4차선 도로를 완전히 점거한 채 일제히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30분 동안 연좌농성을 벌이며 신경전을 벌였다.

5시35분 시위행렬이 명동성당 앞에 이르자 수백 명의 경찰이 겹겹이 시위대를 막아섰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져 시위대 중 한 명이 이마 윗 부분이 찢어지고 여성 조합원 중 일부는 격렬한 몸싸움에 놀라 기절을 하기도 했다.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져 일부 여성조합원이 놀라 기절을 하기도 했다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져 일부 여성조합원이 놀라 기절을 하기도 했다석희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차가운 비 속에서 수천의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1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다 주최측이 조합원들의 안전과 보호를 이유로(이날 시위에는 여성조합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6시 30분경 스스로 집회를 정리한 후 해산했다.

한편 명동성당 앞에서 해산한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정리집회를 위해 명동성당 들머리로 진입하려 하자 또다시 경찰이 길을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6시 50분 1천여 명의 병원파업 노조원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마무리 정리집회를 갖고 7시 30분에 자진 해산했다.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석희열
보건의료노조 정리집회에서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연대사를 통해 "우리 옛말에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면서 "우리는 질긴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보건의료노조 병원파업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강한 연대를 다짐해 병원노조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에 앞서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차수련)는 11일 밤 명동성당에서 긴급 소집된 중집회의에서 경찰병력 투입 규탄과 장기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투쟁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보건의료노조에 대한 전면탄압에 맞서 전 조직적 결사항전을 힘차게 전개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공권력 투입 규탄, 경찰병력 철수, 노조탄압 중단, 민주노조 사수, 직권중재 철폐,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전면투쟁'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이후 국감기간까지 강력한 대 정부 투쟁 △연행 조합원 석방투쟁과 함께 석방 이후 재집결을 통한 병원진격투쟁 △민주노총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투쟁 확대 △4만 조합원의 현장투쟁 강화 △국정감사시 장기파업병원 책임자인 천주교 서울교구 정진석 주교와 경희대 고황재단 조영식 학원장 증인채택요구 △병원 장기파업사태의 정치쟁점화투쟁 등을 전개하기로 해 노정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투쟁발언을 하고 있는 최희선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부장 직무대행
투쟁발언을 하고 있는 최희선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부장 직무대행석희열
12일 오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린 '경찰투입 규탄과 연행동지 석방 환영 및 구속동지 석방 촉구대회'에서 최희선 가톨릭중앙의료원 지부장 직무대행은 "인터넷 등을 통한 대국민 선전전과 함께 명동성당 대교구 앞 장기간 천막농성을 위한 출퇴근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연행된 후 풀려난 동지들이 속속 명동성당으로 재집결하고 있다"며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연행자 석방과 관련 김미향 의정부성모병원 지부장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폭력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던 총 486명 중 조합원 392명을 포함하여 475명이 이미 석방되었다"면서 "그러나 가톨릭중앙의료원 8명, 경희의료원 3명 등 11명은 현재 구속된 상태이며 장경욱 변호사 등 민주노총 소속 변호사 6명이 순회 면담을 통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13일 오후에 열린 보건의료노조 집회에서는 "폭력경찰 물리치고 변태경찰 물러가라"는 16박자 구호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13일 오후에 열린 보건의료노조 집회에서는 "폭력경찰 물리치고 변태경찰 물러가라"는 16박자 구호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석희열
그는 또 연행자들의 경찰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폭력과 폭언 등의 피해사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연행 노조원들에게 '앉아, 일어서' 등의 군대식 폭언으로 위협을 가하며 복귀각서를 강요했다"고 소개하고 "특히 여성 노조원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는 인격모독적인 폭언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할 것임을 내비쳤다.

이와는 달리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지난 13일 담화문을 통해 "9월25일까지 업무현장으로 복귀하라"면서 "이후 복귀하지 않거나 복귀의사 표명 확인서를 9월19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더 이상 CMC(가톨릭의료원)의 직원임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겠다"고 밝히고 있어 당분간 노사간의 평화적인 해결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거리행진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사진촬영하는 것을 발견 흥분한 시위대들이 경찰을 에워싸 경찰로부터 필름을 건네받고 있다
거리행진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사진촬영하는 것을 발견 흥분한 시위대들이 경찰을 에워싸 경찰로부터 필름을 건네받고 있다석희열
한편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한총련, 전학협,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대학운동권에서도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가 계획하고 있는 잇따른 대규모 규탄집회와 연대파업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번 병원파업사태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노학연대와 정부의 전면전으로 치 닫으며 내년 봄 투쟁의 전주곡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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