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야, 니 지금 오데 살고 있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9> 개땡깔

등록 2002.09.24 15:09수정 2002.09.25 17: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탐스럽게 열린 까마중

탐스럽게 열린 까마중 ⓒ 이종찬

"아나-"
"그기 뭐꼬?"
"퍼뜩 손바닥을 벌리고 눈 꼬옥 감으라카이-"
"......"


그랬다. 내가 두 손을 모아 동그랗게 오므리자 그 가시나는 내 손우물 속에 무언가 시커먼 것을 투두두둑 떨어뜨렸다. 금세 내 손우물 속에는 동그랗고 까만 열매들이 가득 채워졌다.

"이기 뭐꼬?"
"땡깔 아이가. 너무 맛있어서 니 줄라꼬 쪼매 가져왔다 아이가."
"가시나-"
"피이-"

그 가시나가 내게 준 것은 땡깔, 그러니까 개땡깔이었다. 표준어로 까마중이라고 부르는 그 동그랗고 까만 열매였다. 그 가시나는 그렇게 내 손우물 위에 제 손우물을 잠시 포갠 채 석류처럼 발갛게 볼을 붉히며, 바늘귀로 폭 찔러놓은 듯한 깊숙한 볼우물을 지었다.

"넘들 주지 마고 니 혼자서만 살짝 묵거라-"

그 가시나는 그 말을 등뒤에 남긴 채 그 긴 머리를 가을바람에 억새처럼 날리며 폴짝폴짝 뛰어 가버렸다. 내 손우물 속에는 그 가시나의 따스한 체온과 함께 까맣게 잘 익은 그 깨땡깔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땡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꽈리를 땡깔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천에 너무나 흔히 널린 그 까마중을 개땡깔이라고 불렀다. 왜 꽈리를 땡깔, 까마중을 개땡깔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잘 모른다.

하여튼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가더라도 집 뒷뜰이 아니면 장독대 옆에 발갛게 잘 익은 땡깔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 흔해 빠진 게 그 개땡깔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 개땡깔이 암예방에 탁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개땡깔이 어떠한 약효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까맣게 잘 익었을 때 따먹는 열매, 먹으면 약간 새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맛있는 열매로만 여겼다.

개땡깔을 입 속에 넣어 몇 번 굴리다가 살짝 깨물면 톡, 하는 감촉과 함께 느껴지는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약간 새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그 맛. 그래. 개땡깔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신선한 개땡깔맛을 잘 모를 것이다. 언제 시간이 나시면 개땡깔을 따서 한번 드셔 보시길.

a 별 모양으로 하얗게 피어난 까마중 꽃

별 모양으로 하얗게 피어난 까마중 꽃 ⓒ 이종찬

그리고 그 개땡깔을 먹고 나면 혓바닥은 물론 입술까지 까만, 아니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입속과 입술 주변이 온통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랬다. 땡깔은 당시 메뚜기, 탱자, 석류, 대추, 밤 등과 더불어 우리들의 훌륭한 가을 간식거리였다.

우리 마을에서 석류, 대추, 밤은 개땡깔만큼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 석류나무가 있는 집은 꼭 한 집뿐이었다. 또한 대추나무와 밤나무가 있는 집도 몇 집 되지 않았다. 특히 석류는 가을이 다 지나가도록 좀처럼 먹어보지를 못했다. 대추와 밤도 차례를 지낼 때를 빼고는 쉬이 먹을 수가 없는 제법 귀한 열매였다.

하지만 개땡깔과 메뚜기, 탱자는 가을 내내 누구나 쉬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개땡깔은 너무나 흔했다. 발에 채이는 게 개땡깔이었다. 그리고 하얀 별 모양의 꽃이 달린 개땡깔의 잎사귀를 뒤집으면 그 아래 까만 개땡깔이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날 그 가시나가 내게 준 그 개땡깔은 자기네 밭둑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리고 까맣게 빛나는 그 개땡깔의 빛은 그 가시나의 눈동자를 빼다 박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당시에는 그 가시나가 아무도 몰래 내게 왜 그렇게 빛깔이 곱고 탱글탱글한 송이 굵은 그 개땡깔을 내게만 주고 간 것인지는 잘 몰랐다.

나는 그저 그 가시나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하는 것쯤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한때 그 가시나가 이웃 마을 가시나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싸우는 것을 내가 말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웃마을 가시나보다 그 가시나 편을 더 많이 들어주었다.

a 꽈리

꽈리 ⓒ 이종찬

내가 그 가시나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그 가시나가 이웃 마을 가시나한테 깔려 있는 것이 불쌍해보여서였다. 또한 우리 마을에서 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가는 그 가시나가 이웃 마을 가시나한테 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겠는가.

근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그 가시나의 속내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나를 혼자서 몹시 좋아했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가시나는 나만 보면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까만 개땡깔을 늘 그런 방식대로 내 손우물 속에 한웅큼씩 쥐어주곤 했으니까.

땡갈. 그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동그랗고 까맣게 잘 익은 그 개땡깔이 눈앞에 선하다. 그리고 내 손우물 위에 제 손우물을 포갠 뒤 한웅큼 떨어뜨려주던 그 개땡깔, 그 가시나의 손우물에서 전해오던 그 따스한 감촉, 그리고 피- 하며 잘 익은 사과처럼 뾰쫌한 입술을 내밀며 깡총깡총 달아나던 그 가시나가 한없이 그립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가시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이 날 듯 날 듯하면서도 생각나지 않는 그 이름. 그런데도 해마다 가을이 깊어가면 쌍꺼풀 예쁘게 진 그 가시나의 그 까만 눈동자와 그 빠알간 입술, 깊숙하게 패여지던 그 볼우물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왜 그럴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