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농촌 젊은 부부의 죽음

등록 2002.09.24 15:14수정 2002.09.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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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병든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이 한 문둥병자를 보고 예수께 던진 질문입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거나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하면서 염치를 세우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하여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난이나 사고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절망감을 불러오기도 하고 이를 지켜보는 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태풍 '루사' 피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전쟁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교통사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너와나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불행을 보고 자신이 당한 일처럼 가슴을 쓸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당신의 가정이 파괴됐다면 어찌하겠습니다. 또한 사고가 아닌 질병으로 3개월만에 양친 부모를 잃었다고 한다면 선뜻 믿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a 발인에 앞서 헌배하는 어린 상주들

발인에 앞서 헌배하는 어린 상주들 ⓒ 김문호

대학에 다니는 해리(21)는 휴학을 하고 3개월 동안 어머니 병 수발을 했습니다. 둘째인 해민(19)이는 실업고등학교 3학년으로 현재 충남 아산시로 취업을 나갔습니다. 막내 남동생 민이(17)는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당뇨합병증으로 졸지에 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갑자기 찾아든 백혈병 투병생활로 지난 6월 인천의 고모님 댁으로 짐을 옮겨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졸지에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들 부모의 생명을 앗아간 근본적인 병은 농가부채라는 질병으로 한국농민 대다수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습니다. 빚에 쪼들린 농업의 피폐한 생활이 젊은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것입니다.

해리가 사는 동네는 시골의 조그마한 농촌마을입니다. 50호가 넘던 마을이 현재는 42호인데 이중에서 50세 이하 가구가 해리네를 포함해서 4가정이었습니다. 올해 해리 아빠는 49살이고 엄마는 42살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농촌마을이 다 그렇듯이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기거하며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네가 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나이가 들면 대부분이 일속에 파묻혀 산 훈장으로 농업병인 신체균형이 깨어지면서 팔 다리가 쑤시고 아픈 만성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재네 엄마는 걸음도 잘 걷지 못하고 찬준네 엄마는 엉덩이뼈에 이상이 생겨 농사일은커녕 열 발자국 옮기기도 힘이 든답니다."


밥을 짖는 것도 힘이 부칩니다. 노인층에 포함되지 않는 65세 이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장년가정은 모두 8가구에 불과합니다. 현재 번듯한 집이 6채 비어 있고 이런 저런 이유와 수입농산물까지 가세하여 농사를 포기한 밭에는 여기 저기 잡초만 무성합니다.

"인구의 노령화로 농촌현실은 암담하다."

a 안타까운 마음으로 출상을 지켜며 애도하는 촌로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출상을 지켜며 애도하는 촌로들 ⓒ 김문호

60살이 가까운 장주 형님은 걱정이 대단합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20호로 줄어든다고 말입니다. 도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농촌은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 되어 회색지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농업정책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잘못된 정책이 농가부채만 키워 놓은 것이지요. 농가부채 탕감을 해야한다는 요구는 정부정책 실패가 농가부채 원인을 제공하여 정당방어 행위라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의 죽음을 방기한 사회. 죽음에 이르러도 나몰라라하는 분위기에서 근본적으로 국민의 건강은 국가에서 책임지는 제도개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직도 질병을 단순한 개인의 건강관리 소홀로 매도하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인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라고 떠들어대는 정부발표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합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남의 나라이야기일 뿐이니까요.

해리 엄마는 가끔씩 '어지럽다'면서 땅에 주저앉곤 했습니다. 힘든 농사일의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진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올 5월에 백혈병이 본색을 드러내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자 입원치료를 했으나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온 동네가 울었습니다. '명절 전에 죽으면 동네에 폐를 끼친다'며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의지하고 연명하다가 추석날인 21일 오전11시경 산소마스크를 벗기자 목숨이 끊어져 다음날 바로 출상을 했습니다. 상여를 멜 젊은이들이 없어 다른 동네에서 일당 5만원을 주고 사오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추석연휴 마지막 날로 객지에서 내려온 자녀들이 상여를 운상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모두 나와서 젊은 부부의 한스런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며 지켜봤습니다. 아직 철없는 상주들은 부모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태평합니다. 너무나 큰 슬픔에 눈물이 말라버렸나 봅니다. 모두들 안쓰러운 마음에 혀를 '끌끌'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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