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볼수록 그윽하더이다

청전(靑田) 이상범의 진경산수(眞景山水)

등록 2002.09.25 09:09수정 2002.09.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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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이상범이라면 소정(小亭) 변관식과 함께 근대 한국화의 길을 개척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이입니다. 그 이의 30주기 기념 전시회에 어제 다녀왔습니다.

나는 채만식의 소설작품 속에서 소치 (小痴) 허유 (許維)의 이름과 함께 그의 이름을 얻어들은 이래 그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일제시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연재 소설을 열람하던 중 삽화가의 이름으로 그를 여러 번 접하기도 했는데 그의 삽화는 부드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뒤에는 강직함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마라토너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어낸 이가 바로 청전, 그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몇 년 전인가 호암 아트홀에 소정의 진경산수가 전시되었을 때도 나는 소정의 금강산화에 감탄하면서 그와 쌍벽을 이룬다는 청전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했었습니다. 마침내 그 기회가 어제 왔습니다.

멀리서 볼수록 그윽하더이다, 청전의 산수는. 멀리 달아나 볼수록 산빛은 그윽해지고 안개는 농염해지고 인가는 수풀에 어울려 젖고 사람은 산야와 강반에 묻혀 보일 듯 말 듯 살아가고 있습디다. 벌써 옛일이 되어버린 40년대, 50년대, 60년대 한국의 산야를 아름답고 고적하게 보여주고 있습디다. 진경산수입디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진경산수라면 이념화된 중국산수에 맞서 조선의 산수를 사경(寫景)을 바탕으로 그려낸 것 아닙니까? 청전의 그림은 그 진경산수를 넘어선 경지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가로폭은 왜 그리 길고 세로폭은 왜 또 그렇게 짧던가요? 낮은 산야가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청전의 그림들은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더군요. 사람은 그렇게 세상의 낮은 부면만을 차지할 수 있을 뿐이더군요.


산야에 묻힌 한두 점의 인가와 산길을 들길을 소를 몰고 지게를 지고 홀로 걷는 사람과 산언덕에 홀로 앉은 옛성의 형상은 사람이라는 존재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근원적인 고독을 말해주고 있더군요.

멀리서 볼수로 그윽해지고 아득해지는 필묵은 청산과 거리를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대인의 운명적인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더군요.


진경산수가 진경산수를 넘어섰는데 그리하고도 청전의 그림들은 조선의 산야만을 담았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액자 속에 앉아 있습디다.

고성(高城)은 고성(孤城)이더이다.

이런 그림 이런 화가가 우리 근대 회화사에 기록을 남겼음이 기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 먹빛과 같은 펜으로 무슨 예술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부끄러웠습니다.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고 다 글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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