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물골안의 반디음악회를 마치고

등록 2002.10.22 23:06수정 2002.10.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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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추운 날씨와 먼지바람 속에서도 차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

추운 날씨와 먼지바람 속에서도 차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 ⓒ 이형덕

반디는 벌써 몸을 숨겼지만, 마음속에 반딧불 하나씩 켜드는 사람들이 경기도의 시골마을에 조그만 음악회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남양주YMCA가 주관한 이번의 반디음악회는 특히 반디가 서식하는 마을의 주민들이 저마다 지닌 솜씨와 정성으로 꾸려낸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남양주의 대표적인 반디서식지로 알려진 수동은 서울에서 직선거리 25km로 가깝지만 그동안 축령산, 천마산, 주금산, 서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호리병처럼 갇혀 있던 지형으로 인해 수달과 반디가 살아 남은 곳입니다. 이 아름다운 기적을 이어나가기 위해 마련된 이번의 작은 음악회는 면사무소나 시청의 도움 없이 주민들과 몇몇 단체들의 힘으로 일궈낸 작은 감동의 마당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시골의 음악회지만 이웃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소중한 한마당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욕쟁이 아제가 쇠를 잡고, 물건너 벙어리가 날라리를 불고 잔소리쟁이 웃댁어른이 북을 치던 우리 옛마을의 흐드러진 놀이마당을 되살리는 작은 노력이고자 합니다. 문화적으로 열악한 시골이라고 한탄만 하고, 우리의 아이들이 서울구경하러 기웃거리지만 말고 이제 한걸음씩 우리가 사는 마을이 지닌 소중한 문화를 일구어내어야 하겠습니다."

a 아빠와 함께 진흙을 빚는 아이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빠와 함께 진흙을 빚는 아이의 모습이 아름답다 ⓒ 이형덕

행사 안내글에 실려 있는 내용처럼, 이것은 유명연예인을 불러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대규모로 치러지던 지역축제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면장도 안 오고, 시의원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행사장마다 빠짐없이 찾아들던 정치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쌀쌀한 저녁바람에 흙먼지 날리는 바람 속에도 차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부모님과 아이들의 모습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감동이었습니다.

10월 19일 토요일 1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수동의 작은 시골학교를 빌려 이루어진 이번 반디음악회는 '수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을 중심으로 물골안 마을주민들과 아이들의 정성으로 채워진 전시회도 곁들여졌습니다. 매일 얼굴을 보던 이웃들의 숨겨진 재능에 탄복하기도 하고, 이웃집 아이가 부는 플룻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동안, 함께 한 마을 주민들은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마을 안에 있던 지곡 도예원의 배려로 펼쳐진 '두껍아 두껍아 도예체험' 장에는 부모와 함께 찰흙을 빚는 아이들의 모습이 진지하기만 하고, '짚풀로 곤충만들기; '곤충 친구되어 보기'와 같은 부대행사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도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풀로 메뚜기도 만들어 보고, 색종이를 잘라 머리에 더듬이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또한 이번의 마을 행사를 위해 지둔리에 사는 러브비틀님은 국내외의 2000점에 달하는 나비표본과 반디사진들을 전시하여 그곳을 찾은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생태학습을 제공하였습니다.


a 오래된 목조교실을 가득 메운 수천 점의 나비표본

오래된 목조교실을 가득 메운 수천 점의 나비표본 ⓒ 이형덕

지역에 사는 화가나 도예가, 가수 뿐만이 아니라 이웃들이 생업 가운데 틈틈이 익힌 솜씨들로 채워진 이번 반디음악회와 전시회는 실로 생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옛부터 길쌈놀이나, 농악 등으로 함께 해오던 마을문화를 더듬어 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번의 행사로 참석한 분이 시골기차 홈페이지에 남긴 글에는 예전에 자신이 다니던 모교의 목조교실에 차려진 이 아기자기한 전시회를 둘러보며 느낀 깊은 감회를 이렇게 남기고 있었습니다.


"전시실로 들어가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우선 무엇보다도 전시실로 이용하는 것이 우리학교 교무실과 제가 2학년때 우리반이 있던 교실를 터서 만든 것이다. 아내가 제가 아는 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날 그곳에서 수고를 하고 계시는 찬이슬님이셨다. 너무나 반가웠고, 괜한 쑥스러움이 일시에 사라진다. 찬이슬님의 공예품과 미술작품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림 중에 내가 아는 듯한 집의 모습이 보인다. 취곡이라는 분의 그림 속에 아름다운 집이 눈에 들어오니 내가 그곳을 방문해던 기억이 있어 찬이슬님에게 여쭈어 보고 바로 그 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처음 간 그 곳에서 내가 아는 찬이슬님과 내가 아는 집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생업 가운데 틈틈이 익힌 풍물로 길을 열어준 마을 풍물패 '수동 터울림'의 흥겨운 가락으로 길을 연 반디음악회는 쌀쌀하다 못해 춥기조차 한 10월의 늦은 저녁시간에도 자리를 지키고, 무대 위에서 춤추는 아이들의 율동을 따라 부르는 마을 친구들. 동요가수의 노래를 박수로 함께 부르는 어머니들은 작지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서로에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a 옷감 자투리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조각보

옷감 자투리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조각보 ⓒ 이형덕

더욱 감동적인 것은 짬짬이 자투리 옷 조각들을 모아 손바느질로 이어만든 불당골 샘물모친의 조각보와, 여든의 취곡님께서 그동안 그린 유화작품을 일주일동안 스스로 짜맞춘 액자에 걸어 내놓은 미술전은 우리에게 예술이 어떠한 것이고, 시골의 문화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의 행사에는 시골생활에 대한 인터넷 전국모임인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분들도 함께 하여 멀리 대화, 춘천, 신림, 인천 등지의 이웃들도 달려와 일손을 거들기도 하고, 찬조작품도 함께 전시장에 걸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마음을 조이며 전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는 지곡님을 비롯하여 '수사모' 회원들의 정성이 엮어낸 이번의 반디음악회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여 명의 손님이 찾아 주었습니다. 남양주 농업기술센터에서 보내준 난초 모종을 선물로 나눠 받은 어린 관객들은 추운 바람에 행여 어린 싹이 추울까 품안에 곱게 감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날의 반디음악회가 작지만 소중한 감동이었습니다.

"올해의 반디를 떠나보내며, 우리는 내년의 여름밤을 날아다닐 반디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켜든 이 작은 촛불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을 지키는 등대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a 이 작은 촛불이 반디와 작은 생명들을 지키는 등대불이 되게 하소서

이 작은 촛불이 반디와 작은 생명들을 지키는 등대불이 되게 하소서 ⓒ 이형덕

촛불을 켜들고 사라진 반디들을 마음속에 한 마리씩 켜든 의식으로 마무리를 한 행사는 다음날, 아침 500여 명이 다녀간 행사장치고는 놀랄 정도로 휴지 한 장, 쓰레기 하나 흐트러진 것이 없이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그것은 날로 파괴되어 가는 환경의 위협 속에서도 아직 이 시골마을을 날아다니는 반디불처럼, 우리에게 남아 있는 희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 여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작은 시골마을에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반디음악회와 관련된 글이나 사진은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http://sigool.com에 가시면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반디음악회와 관련된 글이나 사진은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http://sigool.com에 가시면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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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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