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김대중의 후천성 반미결핍증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0>

등록 2002.10.26 13:14수정 2002.10.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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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자 <조선일보> 편집인 김대중의 칼럼 '반미정서와 반미주의'는 반미에 대한 태도를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강대국 패권주의, 배타적 이기주의, 약소국에 대한 편파적 태도, 세계 경찰국임을 자처하는 독단주의, 인종차별, 배금만능의식 등 미국의 어두운 면을 비난은 하면서도 미국 자체를 부인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반미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신념"인 반미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미국에서 반미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를 간행한 홀랜더(Paul Hollander)가 반미를 미국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성차별주의나 인종주의같이 편견을 갖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배척하는 반미주의를 구분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 홀랜더의 구분에 비해 <조선일보> 김대중의 미국, 또는 반미에 대한 태도는 하나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그 태도는 이미 정치학자나 역사학자, 또는 언론학자들의 관심영역을 벗어나 의학적인 분석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를 비롯한 이 땅의 힘깨나 쓰는 사람들 사이에 '후천성 반미결핍증'이라는 중병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미운 짓 하는 놈 미워할 줄 알고 사는 보통사람들에겐 후천성 반미결핍증이 몹쓸 병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미국의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반미가 우주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불온한 기도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반미가 확산되어가는 것에 대해 몹시 불안해한다. 20여 년 전 '광주'를 겪은 뒤에 반미의 무풍지대였던 우리 사회에 반미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그들은 세상이 뒤집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요즈음 그들은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나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현재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널리 퍼진 것이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부인하는 반미주의 세력의 집요한 접근"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불안케 만드는 것은 "근자에 와서 한국 또는 한국민의 대미관(對美觀)은 심상치 않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후천성 반미결핍증을 앓고 있는 자들은 이 변화가 "근본적으로 월드컵 등을 통해 자각된 한국의 민족적 저력과 원동력, 자긍심과 열정 앞에 미국의 존재가 장애물로 존재한다는 인식과 연관이 있다"는 점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의 걱정거리는 한국의 반미만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반미감정이 일반화되면서 "미국의 '한국기피'도 심상치 않"게 되었으니 <조선일보> 김대중 등 후천성 반미결핍증 환자들이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파란 기와집에 사는 또 다른 김대중 씨도 <조선일보> 김대중 만큼 병세가 악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상당히 심각한 정도로 '후천성 반미결핍증'이 진행되어 있다. 그의 쾌유를 바라는 시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말을 담은 인터넷 동영상을 열심히 퍼날랐건만 그의 증세에는 차도가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 김대중은 파란 기와집 김대중을 물고 늘어지며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햇볕'을 가리려는 부시와 미국의 '구름'을 싫어하는 나머지, 한국 내의 '반미'에 어쩌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반미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도 않고 주변의 권고로 마지못한 듯 몇 마디 해도 어쩐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파란 기와집의 부대변인은 10월 25일자 <조선일보> 독자투고 난에 김대중 대통령이 "반미는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최근 두 달 반 동안 다섯 번이나 하면서 반미감정과 반미주의의 확산을 경계한 바 있다고 변명했다.

후천성 반미결핍증 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반미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까?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한미관계가, 그 숱한 미군범죄가, 한국을 얕잡아 보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과연 반미운동 없이 개선될 수 있을까?

정부가 반미를 부추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후천성 반미결핍증이 심하다보니 청년학생들이나 노동자, 또는 미군기지 인근 주민들의 반미운동을 불평등한 대미교섭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정부의 태도이다.

후천성 반미결핍증 환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밀가루 푸대에 그려진 성조기와 태극기를 바탕으로 굳게 손잡은 그림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원조물자를 먹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김남일 선수가 미국선수 8명과 맞장을 뜨자고 눈을 부릅뜬 것에 환호하고, 안정환 선수의 오노 세레모니에 열광하는, 후천성 반미결핍증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는 세대이다. 우리 사회가 후천성 반미결핍증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김세진, 이재호 열사 등은 자기 몸을 불살라야 했다.

후천성 반미결핍증 환자들은 미군에 의한 수백 수천 명의 민간인학살이 밝혀져도,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버려도,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전천후 미군사격장 매향리 주민들이 밤낮없이 고통을 겪어도, 미군 장갑차에 꽃다운 여중생들이 깔려 죽었는데 미군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해도, 수많은 국민들이 미군범죄의 희생자가 되어도, 미군기지의 환경오염과 생태파괴가 계속되어도 그들은 고장난 녹음기마냥 소리친다. "반미만은 안돼!"

국방의 의무를 지러간 젊은이들을 전경으로 차출하여 치안유지에 돌리는 위헌을 일삼은 자들이 그것도 모자라 전경들을 미군기지 앞에 배치한다. 이 세상 어느 천지에 경찰이 군대를 지켜주는 꼴은 보지를 못했다. 더구나 미군은 언필칭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와 있다는 존재가 아닌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희망네트워크
1950-60년대의 신문은 그래도 미군범죄를 보도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박정희가 한국을 병영국가로 만들어버린 유신시대가 되면서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는 신문에서 사라져 버렸다. 올곧은 언론인들을 학살한 유신시대에 김대중 같은 인물들이 승승장구했고, 가장 민감하게 사회문제를 전달해야 할 언론은 후천성 반미결핍증 환자들의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우리 신문들에서 <조선일보> 편집인 김대중의 중증 편집증(偏執症)인 후천성 반미결핍증은 언제나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한홍구 교수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한홍구 교수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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