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장애인을 둘러싼 참과 거짓을 생각해본다

등록 2002.11.02 10:09수정 2002.11.02 16:22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주말 평택시 팽성에 있는 '에바다 장애인복지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돌산공동체(서울 삼양동 돌산교회, 돌산공부방 운영) 가족들과 하루 들살이를 위해 가게 되었는데,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로서 복지관 관장님을 조금 알고 있던 터였다.

'장애아동 부모의 연대와 희망'이라는 모임을 꾸리면서 여러 장애아동 부모들과 관련 단체를 알게 되어 교류하고 있는데, 에바다복지관 관장님도 그렇게 알게 된 분이다. 그분은 교직원노조 간부로 활동하다가 '에바다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인연 때문에 복지관 관장으로 일하게 되었고, 역시 학습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내 딸 하은이는 올해 여덟살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언어능력이 떨어지고 어눌하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사람을 잘 따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다. 초등학교 취학을 미룬 채 동네 유치원에 다니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모든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그렇듯이 아이를 돌보느라 조금 힘겹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희망을 가진다.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어디에 놀러가도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보통 마음 편하게 쉬기가 어렵다. 하지만 에바다에서는 아이들이 볼풀, 스핀볼, 트렘폴린 등 놀이기구들에 푹 빠져 신나게 놀아 줘서 모처럼 아이들 등살에서 벗어나 잘 쉴 수 있었다. 물론 하은이는 추워진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야외 놀이터로 뛰쳐나가 데려오느라 몇차례 애를 먹기는 했지만.

에바다에서의 하룻밤은 가을 들살이를 나온 우리 가족에게는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와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진 복지관 관장님과 나눈 대화를 되새겨 본다. 관장님은 장애인 복지사업에 짧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복지사업은 대부분 장애인을 이용한 장사에 불과하다. 에바다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지만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안에 방치되어 있는 재가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 복지관 장애아동 어머니들도 아이를 데리고 갈데가 없어서 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애아동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 비장애 아동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는가?"


에바다를 다녀와서 장애인시설비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던 '에바다농아원 사건'을 떠올리며, 장애인을 둘러싼 거짓과 진실을 헤아려 본다.

'에바다'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말로 예수가 치료받기를 원하는 어눌한 농아장애인을 보고 세상을 한탄하며 한 말이다. 그 말은 '열려라' 라는 뜻인데, '장애 민중들이 그 삶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장애 해방의 참 세상이 열리기를 열망하는 뜻이 담긴 '에바다'는 불행하게도 오늘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복지의 모순과 거짓의 상징이 되었다. 사이비 복지사업가들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내맡긴 채 장애인들의 인권을 방치해온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한 장애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편견과 거짓은 얼마나 뿌리 깊은가!

아내는 에바다복지관에서 잘 쉬고 돌아와서 고마운 마음에 관장님께 편지를 썼다.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훌륭한 복지관으로 거듭나서 많은 장애인들의 삶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꽉 막힌 눈과 마음을 열어주는 전략기지 '에바다'가 되길 바랍니다. 관장님과 또 그곳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장애어린이 어머니들께 평안과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이 기자의 최신기사 [시] 강물은 흘러야 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