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더불어사는 세상' 본다

등록 2002.11.07 23:28수정 2002.11.08 10:55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0월 장애인인 딸아이의 입학을 거절했던 유치원과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내가 국가 인권위원회에 찾아가서 진정하게 된 사연에 대해 부연한다. 현재 조사중인데 곧 인권위원회의 의견과 권고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장애아동의 교육권에 대해 인권위원회에 진정되기는 처음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반향이 생각보다 컸다. 또한 동병상련의 처지인 여러 부모님들로부터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딸 하은이(7살)는 발달장애 3급 장애를 가지고 있다.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어느 정도 가족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어눌하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온순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다. 지금은 동네 유치원에 입학하여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작년말 아내는 아이를 맡길 만한 유치원을 찾다가 천주교 인보성체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입학을 시키기 위해 상담을 했었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가 종교인들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돌봐줄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갔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1년간 유예했던 초등학교 취학을 앞두고 일반 유치원에서 통합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다. 하은이는 전에도 여러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옮겨다녀야 했기에 아내는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여왔다.

"수녀님,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는데, 이곳에 입학시켜 통합교육을 시키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입학지원을 하려고 했다. 유치원 원장인 수녀는 "종교적인 양심으로는 받고 싶지만, 우리 유치원에서는 장애아동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마디로 거절하였고, 같이 갔던 남동생을 보고는 "이 아이는 보내세요"라고 말하였다.

유치원 원장의 말을 듣고 아내는 무척 상심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아내의 좌절감과 거절당한 딸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었으며 그때 비로소 내 딸의 눈에 비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 딸은 정말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아이인가? 일반 유치원에 입학해 아이들과 어울려 교육받을 권리조차 없는가?" "더욱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란 말인가? 상심과 좌절을 안고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통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하은이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 보육시설에서도 여러 번 옮겨다녀야 했다. 한 어린이집에서는 6개월,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2개월을 다니고 말았는데, 보육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른 유치원에도 입학했다가 교실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3일만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결국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옮기고 나서야 오래 보육할 수 있었다.


또한 치료교육을 위해서도 국공립 복지관 내 조기교실 두어 곳을 알아본 적이 있었지만,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기에 사설 조기교실과 치료교사로부터 치료교육을 받게 해야만 했다. 아이의 치료교육과 보육비가 만만치 않아 경제적인 부담도 뒤따랐다. 이런 경험들은 대한민국에서 장애 어린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우여곡절 끝에 하은이는 좀더 개방적인 원장의 배려로 동네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착석이나 신변처리가 불안해 어려웠었지만, 선생님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적응하여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은 몇몇 아이들이 하은이를 무척 좋아하여 서로 도와주고 싶어하고, 하은이도 언제나 '유치원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겠다는 소박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항상 방해가 된다는 것은 어른들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세계를 배우고 만들어간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유치원은 '하나의 세계'일 것이다. 내 딸은 그 아이들의 세계에서, 또한 앞으로 살게 될 이 세상에서 방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왜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분리시키고 차별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만든 유치원 교실 안 세계를 보고 차별 없는 세상이 무엇인지 배우기를 기대한다. 또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내 딸을 수용하지 못했던 유치원 원장의 양심도 구원받기를 갈망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아동 치료교육이 '어린이인권' 차원에서 인식되고, 부모들도 당당하게 아이들의 기본권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당국은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교육받을 권리를 진지하게 수용하여 장애아동 조기진단 체계, 치료교육의 공공 무상화, 학부모의 특수교육 운영 참여 등 공공성의 관점에서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고 싶은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장애아동 부모들과 연대하여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이들이 가진 장애를 바꾸는 것보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 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 에도 실린 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이 기자의 최신기사 [시] 강물은 흘러야 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