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겨울, 비닐 움막에서 켠 촛불

[현장] 용두동철거민 노숙투쟁 145일째, 촛불시위

등록 2002.12.11 02:05수정 2002.12.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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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절로 흘러유…
.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됐나…. 어쩌다가 내가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잠을 자나…."


공사장에서 구한 각목을 이어 붙여 그 위에 비닐을 덮은 움막 같은 곳으로 무릎을 꿇어 기어 들어가면 42명의 용두동 철거민들이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 내부가 나온다. 그 곳은 분명 잠을 자기 위한 곳이지만 전쟁터로 보였다. 그 곳에서 이반순(66)할머니를 만났다.

a 비밀움막 안에서 만난 이반순 할머니

비밀움막 안에서 만난 이반순 할머니 ⓒ Free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 싶지유. 내가 이렇게 길바닥에서 자게 될 줄 어찌 알았겠어유."
"우리 자식들은 걱정이 태산 같지유. 엄마 건강도 안 좋은데 그냥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지유, 그런디 그럴 수는 없는 거지유, 아니 내가 내 집 놔두고 왜 자식들한테 얹혀 살어유. 내 집을 내가 찾아야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끝까지 싸워야지유."


움막(?) 안쪽은 무릎꿇고 기어다니기에도 낮아 보인다. 찬 아스팔트에 스티로폼을 깔고 이불 위에는 은박돗자리를 덮었다. 찬이슬이 비닐에 맺혀 떨어져 이불이 젖어 은박돗자리가 필요하다. 천장에는 온갖 살림살이가 다 있다. 치약, 칫솔, 수건, 비누, 수저…. 각목 위에 얹혀 있는 이것들이 그 분들의 살림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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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하나 못 건졌어요. 그 사람들이 분명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강제철거 안 한다고 해서 그냥 있었어요. 그런디 갑자기 집을 부수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못 건졌어요. 살림살이라고는 냄비하고 수저 몇 개가 전부지요."

김용림(67)할머니는 노숙투쟁중에 허리를 다치셔서 서 있는 것도 불편하시다며 장작불이 지펴진 불가에 손을 녹이시고 계셨다.


"아이구 사진 찍고 그러지 말아요. 자식들이 보면 창피하잖아요. 무슨 자랑이라고."
"기자들 많이 왔다 갔어도 아무 것도 달라진 것도 없고, 요즘은 형사들이 언론도 이제 관심이 끝났다고 하면서 대충 끝내라고 자꾸 그려서…전 별로 이런 거 안 좋아해요."


김할머니는 철거전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셋 이렇게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고 하신다. 철거 이후 큰아들은 방을 얻어서 나가 있고, 나머지 두 아들은 어디서 자는 지도 잘 모르고 가끔 한번씩 들러서 노숙하는 부모를 만나고 간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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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촛불을 들고 간절히 빌어봅니다. "우리 집을 돌려주세요"

촛불을 들고 간절히 빌어봅니다. "우리 집을 돌려주세요" ⓒ Free

영하 10도의 날씨에 찬바람이 불어 귓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던 10일 저녁, 용두동 철거민 주민들은 촛불을 켰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내 집을 돌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촛불을 들고 수만의 사람들이 반미를 외치고 있다고 하지만 이 곳에서는 우리 나라 권력에 의해 힘들어하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촛불이 타고 있다.

"포크레인만 보면 무서워요. 엄마도 동생도 포크레인이 무섭대요. 이게 민주주의인가 싶어요. 교과서와 현실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만난 김윤희(18)양은 날씨가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돈 더 받으려고 우리가 이런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돈과 권력이 있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 깡패들이 술마시고 와서 집을 부술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아 이런 거구나. 국민은 돈 없고 힘없으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양은 아빠하고 따로 월세방을 얻어서 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1주일에 한번씩 노숙투쟁을 하는 엄마를 보러 온다고 했다.

"엄마가 많이 마르셨어요. 마음이 아프고 많이 걱정돼요."

철거민 금모씨는 사진 찍지 말라며 인터뷰를 거부하신다.
"중구청에서 전화하나봐요. 지난번에 사진 나간 뒤로 곤란을 겪었다니까요."

"아니 중구청에서 그렇게까지 나온단 말이에요?" 하고 화가 나서 물었더니 주변의 다른 분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신다.

a 모닥불이 유일한 난방대책이다.

모닥불이 유일한 난방대책이다. ⓒ Free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녜요. 이 비닐움막도 철거한다고 계도장 갖다 붙이고, 이 장작도 원래는 지하철 공사장가서 가져 왔는데 중구청에 어떻게 했는지 용두동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젠 안 줘요. 그리고 여기다가 이거 많이 쌓아놓으면 폐기물이라고 가져가요. 그래서 다른 곳에 쌓아놨다가 조금씩 가져다 써요."
"대선은 관심도 없어요. 누가 되든 다 도둑놈이지. 지들 배부른 줄만 알지 서민들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기나 하나요?"


불을 피운 모닥불 옆에는 페인트 깡통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다. 끓는 물을 PET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넣어 그 것을 끌어안고 잠을 잔다고 한다. 이거라도 없으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시며 연신 뜨거운 물을 통에 담으시는 아주머니 한 분은 "날씨 추우니 기자님도 어서 집에 들어가세요"하며 오히려 필자를 걱정하신다.

a "잘 사는 중구청"이라고 크게 쓰인 중구청 앞에서 촛불을 켰습니다.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집만 돌려 다오'

"잘 사는 중구청"이라고 크게 쓰인 중구청 앞에서 촛불을 켰습니다.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집만 돌려 다오' ⓒ Free

용두동 철거민 공동대책위는 이날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용두동 철거민 인권선언문"을 발표하고 용두동 철거민들도 인권이 있음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또한 "용두동 철거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즉각 수용하라"고 말하고 조야연 대표 등 구속자를 석방하고, 현물보상원칙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이어 폭력적 강제철거로 인한 주민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배상하는 등 용두동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a 42명의 철거민이 잘을 자는 비닐 움막집, 중구청에서는 노숙은 불법이며 미관상 좋지 않다며 이 것마저 철거하라고 한다.

42명의 철거민이 잘을 자는 비닐 움막집, 중구청에서는 노숙은 불법이며 미관상 좋지 않다며 이 것마저 철거하라고 한다. ⓒ Free

a 촛불을 하나씩 집 모양의 모형에 꽂았다.  우리의 소원이 빨리 이루어 지길 바라며..

촛불을 하나씩 집 모양의 모형에 꽂았다. 우리의 소원이 빨리 이루어 지길 바라며.. ⓒ Free

a 행사를 마치고 손 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손 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Free

a 물을 끓여 통에 담고 있다. 새벽까지 몸을 덥혀주는 물통으로 영하의 날씨를 이겨야 한다.

물을 끓여 통에 담고 있다. 새벽까지 몸을 덥혀주는 물통으로 영하의 날씨를 이겨야 한다. ⓒ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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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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