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노정 단일화 협상 회담 당시의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오마이뉴스 이종호
후보단일화에 찬성논리를 제공하고 이를 성사시키는 데 기여한 사람 중의 하나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번 선거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는 독자적인 힘으로 변화를 이뤄내야 하는데 정몽준의 인기에 기대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식민지 근성을 떨쳐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몽준이라는 사람을 정말로 잘못 보았다는 것입니다. 정치개혁에 대해 제법 생각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후보단일화를 주장했는데 그는 아직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째는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30년만에 한 번 오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거입니다. 서구에서는 이를 정당재편성(party realignment)이 이루어지는 중대선거라고 부릅니다. 정당민주화가 이루어진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당연합이 정상화되고 안정될 때에만 정당의 교체가 선거의 핵심이 됩니다.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기 위해 다른 정당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서구 국가는 모든 정당이 민주화되어 있고 정당간 정책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정당이 실패를 하면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문제가 교정되는 자연적인 치유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ADTOP5@
그러나 서구에서도 기존 정당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실성을 상실하면 정당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때 유권자들은 기존정당으로부터 이탈하여 부동층이 증가하고 정당이 선거에서 실종됩니다. 유권자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정당의 지지기반에 지각변동이 오면서 정당구도가 재편되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바로 그러한 재편이 일어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입니다. 아무리 조중동이 선거의 핵심은 정권교체라고 외쳐도 노무현의 새로운 정치가 유권자에게 더 설득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지역주의에 기댄 권위주의적 정당을 혁파함으로써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입니다. 정몽준이 중도하차 한다고 해서 이러한 역사적 소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회는 당분간 다시 오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소신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ADTOP6@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하면 민주당으로서는 정책공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야합이니 재벌합작당이니 하는 비난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 시민의 역량을 테스트해볼 역사적 순간이 왔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믿어야 합니다. 시민은 배반과 변절의 정치의 뒤끝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실현되면 이번 선거는 1987년에 좌절된 민주화를 완성하는 무혈 시민혁명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끝으로 민노당 지지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뜻과 이상을 모두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역사적 소명에 동참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민노당의 가장 큰 목표는 다음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하는 것 아닙니까. 개혁적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절대로 도입되지 않습니다. 현 소선거구제는 한나라당에게 35% 표만으로도 제1당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역사는 천천히 진보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대안을 선택하는 현실적인 정치에 의해 역사가 진보합니다. 기득권층은 조직에 돈에 언론권력까지 가지고 있는데 진보층만 이념에 얽매여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다시 이런 기회가 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기숙 기자는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공유하기
"아, 정몽준...내가 범한 3가지 잘못" 조기숙 교수의 유권자께 보내는 긴급호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