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감동입니다

대통령 당선자와 네티즌께 드리는 소망 편지

등록 2002.12.30 06:41수정 2003.01.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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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을 접속하다가 <시민단체와 네티즌이 당선자께 보내는 소망 편지>라는 글귀를 읽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본 것은 '소망 편지'라는 네 글자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망'이라는 두 글자가 유난히도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소망을 품을 만한 시대가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죽어도 놓을 수 없는 절실한 소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일까요?

오늘 저는 이 '소망 편지'를 통해서 어떤 장황한 논리나 요구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죽어도 놓은 수 없는' 그 소망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다시 하나씩 바르게 채워 가는 일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 당선자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가고 있는 위대한 네티즌들과 함께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학교 현장을 수선하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에서 드리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저는 어느 사진가와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시와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수 있는지를 물었고, 잠시 후 그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내가 먼저 감동을 해야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진이 나오려면 우선 좋은 사진기가 있어야겠고, 그 못지 않게 훌륭한 사진기술이 필요할 터인데 느닷없이 감동이라니요? 그래서 저는 정색을 하고는 어떻게 감동만 한다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감동에 값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사진이 나오기까지 이런 저런 노력들을 기울이겠지요. 돈을 들여 값비싼 사진기도 사고 사진기술도 배우고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찍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감동이 없이 그런 것만으로 좋은 작품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인이 먼저 감동해야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사진가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과 함께 문득 이런 생각이 저를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성서에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적혀 있는데 바로 그 생명 앞에 교사가 먼저 감동하지 않으면 좋은 교육은 불가능한 것이겠구나. 제자들을 그들이 지닌 생명만으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이 조금 부족해도 결국은 채워지고 말겠구나."

한 부모에게 자식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는 그런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생명 다발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부모가 한 생명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기쁜 일입니다. 그 생명과 처음으로 눈을 마주하는 순간에 그가 장차 커서 좋은 대학에 입학해주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만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는 순간까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 자녀들은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부모자식간이라고 해도 고급상품이 되지 못하면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상품의 가치조차 학교 성적이라는 단 한 가지의 획일적인 잣대로 정해집니다. 문제는 오늘날의 학교가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들을 만나면 눈을 보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저의 자존으로 제자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 제자도 그의 자존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가능하면 저는 후자 쪽을 택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자신의 자존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디더라도 한 아이의 주체를 세워주는 일 말입니다. 저는 죽었으면 죽었지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너, 대학 갈 거잖아.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자율학습 하도록 해."
혹은,
"나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교장 선생님의 명령이야."

다행히도 제가 모시고 있는 교장선생님은 그런 명령을 내릴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모든 교사의 제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생명의 존귀함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저의 영혼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전남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어느 학부모의 글을 읽고 제가 분노한 것은 무지한 교육관료들에 의해서 천하보다도 귀한 한 아이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자율학습은 학생이 학습할 장소 선택권 마저 박탈해 가는 비교육적인 처사입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방과 후 학습하기 편리한 사설독서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설 독서실 이용료로 월 7만원을 납부하고도 35명이 가득한 교실에 덜덜 떨면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교육적인 자율학습을 하루빨리 중단시켜주는 것이 상부기관의 임무라 사료됩니다.

얼마 전에는 자율학습 지도비 징수에 관하여 전남교육청에 두 번씩이나 질의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주요 내용과 전남교육청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2002년 9월 2일자 공문에 의하면 2003년 1월 이후부터 자율학습 지도비 징수 불가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2003년 1월분 자율학습비를 2002년 12월에 징수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고 계시는 교장선생님이 계시는가 하면, 교육감님께서 공문이 잘못되었음으로 학교 재량에 따라 징수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시는 교장선생님도 계신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답변드립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중등 81100-1165(2002.04.29.)에 따라 2003년 1월부터 자율학습 지도비 징수 및 지급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학교에 알려 드렸고, 이후에도 3회에 걸쳐 동일한 내용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2002년 12월에 지도비를 징수하여 2003년 1월에 지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명확하고 분명한 답변이 전남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려지고 자율학습 지도비 징수 불가 방침을 준수하기를 바라는 교사들에 의해 학교장에게 공지되었음에도 지금 시내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방학중 자율학습비 징수를 위한 고지서를 발급한 상태이거나 준비중에 있고, 혹은 학부모들을 통해서 불법 모금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도교육청에서 하달한 지시 공문을 일선 학교에서 모른 척 무시하고 지나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지적과 함께 도교육청의 확인까지 받아 공지한 사실에 대하여 후에 빌미가 될 수도 있는 고지서 발행을 서슴없이 행한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나라가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나라인지 깊은 회의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친과의 갈등으로 홧김에 원양어선을 타버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반 년 가까이 바다에 떠 있다가 육지를 밟았습니다. 새벽까지 여자들과 더불어 술을 마신 뒤에 숙소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시장 바구니를 든 한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이었고, 주위 사방을 둘러보아도 차량이라곤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발을 동동 구를 뿐 길을 건널 생각은 하지 않고 신호등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순간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서워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랜 동안의 방탕생활도 차츰 정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그냥 길을 건너는 것을 보면서 하나의 법칙과 질서들이 살아 있는 감동으로 전달되지 않고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죽은 지식으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입시위주 교육의 해악이겠지요. 저는 친구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의 깊은 인상 때문인지 아무리 날이 추워도 신호등은 꼭 지키는 편입니다.

보충수업이 문제가 되는 것도 입시교육의 폐해를 더욱 더 온존시키고 가속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엄청난 교육재정을 들여서 어렵사리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학생 중심의 수업모형이나 도덕심과 창의력 배양을 위한 소중한 연구 업적과 결실들이 문제풀이식 보충수업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강제 보충자율학습으로 인해 학생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어 어른이 되어도 자기 주장을 할 줄 모르는 체제순응적 인간이 되거나, 아니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육은 감동입니다. 감동 없이 전해지는 죽은 지식으로는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교육을 개인의 신분상승의 기회만으로 여기는 학생이라면 모르되,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기계나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자존감을 상처받으며 자란 아이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정몽준 후보진영에게 "교육은 철학이다. 그러니 함부로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칙과 소신을 밝히신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고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교육을 경제논리로만 풀었던 지난 세월들이 이제 거두어지겠구나. 이제 아이들은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새롭게 임명되는 교육부총리도 대통령 당선자와 같은 교육철학과 아름다운 인식을 가지신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네티즌들도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통해 학교에서 참된 지식을 감동으로 전달하는 교사가 많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죽어도 놓을 수 없는' 제 소망은 바로 그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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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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