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왕국서 전해지는 이슬람 향기(1)

<세계문화유산답사> 스페인 똘레도

등록 2003.01.08 00:30수정 2003.01.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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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아또차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아란훼스를 경유하여 이베리아반도의 황토빛 고원을 달렸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황량한 풍경에 취해 넋을 놓기를 90분여 정도. 짐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 70km 지점 따호강 연안에 위치한 에스파냐 똘레도주의 주도 똘레도에 도착했다. 중세 시대의 풍취가 물씬 풍기는 이 도시는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a 이슬람 향기가 전해지는 똘레도의 풍경

이슬람 향기가 전해지는 똘레도의 풍경 ⓒ 홍경선

BC 2세기 로마의 식민도시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똘레도는 이후 8∼11세기엔 고트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하지만 드높았던 이슬람세력의 기세도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꺾이고 말았고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되던 그해에 완전히 추방됨으로써 1560년 펠리페 2세의 마드리드 천도전까지 에스파냐 왕국의 수도로 자리잡는다.


고풍스런 중세의 멋을 그대로 살린 똘레도 역을 지나 본격적인 역사 나들이를 시작하였다. 유유히 흐르는 따호강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시대의 성벽이 똘레도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다. 711년부터 약 400여년에 걸쳐 회교도의 지배를 받아온 이 도시는 곳곳에 이슬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세로 향한 길목인 알깐따라 다리에 도착하자 저 멀리 시가지의 인상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 위로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는 알까사르에선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위용이 느껴진다.

a 드센 위용을 뿜어내고 있는 알까사르

드센 위용을 뿜어내고 있는 알까사르 ⓒ 홍경선

정사각형의 모양에 각 모서리마다 높은 첨탑을 드리우고서 하늘을 향해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알까사르는 회교도들로부터 똘레도를 재탈환한 알폰소 6세가 요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 똘레도 대 사원과 함께 이곳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고개를 돌려 다리 너머를 바라보니 따호 강의 거센 물줄기 위로 고풍스런 다리들이 놓여있었다. 그 주변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황량한 언덕이 중세 이슬람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를 마주보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라 있는 초록의 나무들과 바위들 뒤로 황량한 언덕이 흐릿하게 펼쳐져 있었다. 알까사르를 공략하기 위해선 맞은편의 저 언덕에 포대를 설치함이 나을 듯 싶었다. 두 지역을 잇는 돌다리만이 이슬람과 카톨릭간의 치열한 쟁탈전의 흔적을 담고서 홀로 외로이 놓여 있다.

다리의 끝엔 똘레도로 들어가는 성문이 버티고 있다. 왕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황토색의 성문을 지나 이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중세의 도시에 발을 들여놓았다. 성벽 안은 황토빛 건물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무너진 흔적이 남아 있는 별 볼일 없는 유적에서조차 과거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 위에 걸터앉거나 밝고 올라서는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당시의 시간 속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그 안에선 적어도 시가지 중심의 맥도널드가 보이기 전까지 현대적인 건물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고풍스런 계단을 오르며 옛 정취에 빠져 있을 즈음 산따끄루스 미술관이 나타났다.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박물관의 하나로 고고학, 순수예술, 장식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멋들어진 낡은 건물의 외관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두 개의 아담한 안뜰을 둘러가며 다양한 동상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a 똘레도대성당의 첨탑

똘레도대성당의 첨탑 ⓒ 홍경선

1층엔 가구들과 타피스트리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장식을 하고 있는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2층으로 오르려니 오래된 손떼가 묻어난다. 2층엔 도자기나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냥하는 모습이나 왕의 근엄한 모습을 그려 넣은 도자기들은 왠지 모르게 어설퍼 보였다. 보는 눈이 없던 내겐 그저 어린아이들이 그려 넣은 듯한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이슬람양식의 문양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외에도 가톨릭과 관련된 다양한 성상(聖像)과 성기(聖器)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회화작품들은 엘그레꼬나 리베라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미술관을 나와 남쪽의 높은 비탈길로 올라가니 네 개의 뾰족한 탑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알까사르가 나왔다. 알깐따라 다리에서 본 것처럼 당당한 풍채에선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전쟁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라 한다. 1810년 나폴레옹 군대가 쳐들어와 건물에 불을 질렀는가 하면, 1936년 시민전쟁 때는 프랑코파의 주둔지로 사용되어 집중적인 포화를 받는 등 계속되는 전쟁으로 파괴와 재건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부엔 프랑코군의 가족이 농성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가 하면 칼과 총, 제복 등이 전시되어 있는 군사박물관이 있다.

언덕 위의 알까사르 아래로 똘레도 대 성당의 높은 첨탑이 빛나고 있다. 엄숙하게 내려다보는 알까사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프랑스 고딕양식의 세련된 아름다움이 가미된 대성당이었다.

성당 또한 빛바랜 황토 빛 시가지를 가득 메우며 이곳 알까사르를 요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고비아와 마찬가지로 알까사르와 대성당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과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공주와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되는 곳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그 속엔 위대한 에스파냐 왕국의 영광이 녹아 흐르고 있다 .

a 고풍스런 똘레도 구시가지

고풍스런 똘레도 구시가지 ⓒ 홍경선

유난히 좁고 복잡한 거리들은 산책하기엔 그만이었다. 주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옛모습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말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의 장구한 역사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만큼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과거의 시간 속을 헤매이게 한다.

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것 같은 좁은 골목조차도 중세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골목과 길들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곳엔 이슬람의 문화와 유태인의 흔적 그리고 스페인 기독교도들의 역사가 잠자고 있었다. 그 고요한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옛 흔적들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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