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 바닥을 싹싹 핥아먹을 때까지
나는 결코 소 옆을 떠나지 않았다"

소가 사는 외양간에 대한 소묘와 내친구 김한우

등록 2003.01.09 16:06수정 2003.01.10 15: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친구 중기는 소를 좋아한다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학교 갔다와서든 방학 때든 내가 힘들여 베어 온 '깔(꼴)'로 맨날 소죽을 쒀 주다보니 그냥 정이 들더라~."


a 소

ⓒ 김규환

나도 소를 제일 좋아한다. 마치 눈 큰 여배우(송윤아 씨 등)를 보면 우리 소를 보는 것 같다. "음매~" "머어~" "무~" 소리를 내며 우는 소! 착하고 순하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같은 소! 눈이 곧 튀어나올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고 늘 나와 친구였던 소!

나는 우리 소가 여물을 다 먹을 때까지 내 밥 먹으러 가지 않았다. "규환아~ 밥 묵어라"해도 건성으로 "예, 곧 갈께라우~" 대답하고는 한참 동안을 쇠죽 쑤던 부삭에 앉아 바닥을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ADTOP7@
멀뚱멀뚱 쳐다보는 나를 보고 소도 가끔 내 쪽을 쳐다본다. '그래 많이 묵어라. 얼릉 커서 나랑 같이 들로 놀러 가야제? 알았제? 밭도 많이 갈아서 돈도 좀 벌어 올 거지?' 이러면 소는 쇠죽을 먹으면서도 콧방귀를 뀌어 응대를 한다. 시간 있을 때마다 쇠 빗을 들고 소똥을 제거하고 나서 소털이 맨들맨들하게 윤기나는 것을 넘어 정전기가 날 지경까지 빗어주었다.

소 팔아서 대학 보낸 집이 더러 있었다. 그만큼 소가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소 한 마리 팔면 논 한 마지기 사는데 솔찬이 기여한 바 크다. 우리 집 재산 목록 1호가 소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 관심이 더 갔는지도 모르겠다.

소 깔 베는 것은 내 차지였다. 거칠고 뻣뻣한 풀은 일단 내가 싫었다. 몽글고 입 안에 들어가도 혀가 베이지 않을 맛난 풀만 베어왔다. 씹을수록 찰기가 나는 풀을 나는 선호했다. 바래기가 맛있고 쑥이 맛나다. '고마니꽃' 피는 가을에는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이 놈 입맛에 어울린다.


어른들은 나에게 별 다른 의도 없이, "우리 아들은 참 좋은 풀만 많이 벼 오는구나!" "어데서 이렇게 좋은 걸 벼왔냐?"하시며 칭찬을 하셨다. 그때마다 "아부지도 참, 제가 눈을 뻘로 뜨고 다니간디요?"라고 생색을 한두 번 낸 게 아니다. 그 많은 풀을 베 가지고 망태에 넣어오고, 바지게에 지고 드넓은 들을 누비고 '또랑' 가상을 헤맸다.

꼴을 벨 수 없는 겨울에는 밭이든 언덕이든 논이든 조금이라도 양지바르고 퇴비자리였던 곳이면 미리 봐뒀다. '독새기', '볼태기', '개망초', '각시풀' 싹 까지 낫으로 캐서 삼태기에 담아와 냇가 찬물에 씻어오는 것도 내 몫이었다. 지푸라기만 쒀주는 쇠죽을 깨잘깨잘 맛없이 먹는 소들의 식성을 돋궈주느라 날마다 들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ADTOP8@
이따금 잘 먹지 않는 경우 '느삼'을 뿌리와 줄기 채 캐서 짓찧어 즙을 내어 소주 대병에 넣어 먹이면 금방 밥 맛을 찾아 잘 먹는다. 주로 여름에 쓰는 방법이다.

요소가 필요한지 외양간에 가서 오줌을 눠주면 입으로, 코로 흠흠 불었다가 죄다 잘도 받아먹는다. 예전에 어른들은 소죽 쑬 때 밤새 요강에 받아둔 '소매'(오줌)를 가마솥에다 같이 부어 끓이셨다. 어른들이 하셨으니 옳다고 할 수밖에! 며칠 전에 시골가서 오줌을 누어 줬더니 여전하다.

이 사랑스런 내 친구 소가 사는 외양간에 한 번 들어가보자.

소를 위해서 특별히 대단한 장치를 할 필요가 없다. 외양간은 먼저 기둥과 보를 연결하여 집 구조를 만든다. 벽체는 자연석과 짚을 넣어 이긴 황토를 층층이 쌓으면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흙을 섞어 쌓지 않고 튼튼한 돌로 쌓으면서 잔돌을 괴어 쌓는 것이 소가 벼룩 등 기생하는 벌레 때문에 긇어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기둥과 보는 못을 박지 않고 장부를 짜맞춰 짓는 게 튼튼하고 오래간다. 공간이 큰 곳은 빗장을 쳐주면 무난하다. 빈틈을 막을 때는 솔가지를 베어다가 한 움큼씩 묶어 엇비슷하게 차례대로 쌓아 나가면 솔잎 파랄 때는 몇 잎 따 먹으라 놔두면 된다.

a 쇠죽 쑤던 솥단지

쇠죽 쑤던 솥단지 ⓒ 김규환

구유는 아궁이가 있는 솥단지 좌측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구유를 설치할 때는 커다란 꺽쇠를 이용하여 소가 발정이 나거나 성질 사나운 놈에게서도 끄떡 없게 해야 보수할 일이 줄어들게 단단히 고정한다. 참나무처럼 벌어짐이 많고 단단한 나무보다는 소나무나 미루나무 등 끌 발을 잘 받는 것으로 해야 무난하다.

대강 외양간과 구유 설치까지 끝이 났으면 이제 바닥에 소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짚을 깔아놓자. 안성장, 평택장, 함양장, 고흥장, 순창장에 가서 엉덩이 반반한하고 어깨 떡 벌어진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여물 줘가면서 목에 밧줄을 느슨하게 걸어 데려오면 된다.

집에 와서는 미리 준비해둔 코뚜레를 이삼일 지나 제 집에 적응이 되었다 싶으면 끼워주면 된다. 노간주나무나 버드나무 등 잘 휘어지고 부러지지 않는 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옹이를 잘 다듬어서 불에 살짝 구워 서서히 구부려 말려 코뚜레를 만든다.

쇠나 참나무로 꼬챙이를 만들어 소코를 뚫는다. 코 뚫으려면 실한 일꾼이라면 한 사람만 잘 붙들어도 되지만 통상 두세 사람은 잡아줘야 한다. 코를 뚫으려 하면 묽은 코와 쭉쭉 늘어지는 침을 질질 흘리며 "메에~" "음머~"하며 요동을 친다. 얼른 코를 뚫었다쳐도 양쪽 코 사이를 뚫는 일이라 피가 조금 나온다. 준비해둔 된장을 발라 지혈시키고 사독을 막아준다. 코를 질질 흘리는 송아지가 불쌍하고 짠하다.

나일론 줄이나 칡 섬유질만 모은 새끼로 고삐를 묶어 외양간에 매두고 하루 세끼 여물로 쇠죽을 쒀 주면 잘도 먹는다. 한 겨울엔 짚으로 월동옷을 만들어 복대를 양쪽에 단단히 묶어 보온해주면 따뜻하게 겨울을 잘 났다. 소 한 마리만 길러도 달에 한 번 짚과 똥이 어우러진 '망웃'(퇴비)을 쇠스랑으로 꺼내 모아두면 퇴비 걱정 안해도 됐다.

이런 소를 긴긴밤 잠을 자지 않고 훔쳐가는 소도둑이 기승을 부렸으니 예나 지금이나 도둑놈은 비싼 것을 탐내나 보다. 새벽 3~4시쯤 나타나 장에 바로 내다 팔 수 있는 살진 것만 골라 밤새 빼돌리고 마는 한 집안의 꿈을 앗아가는 악질 도둑이었다. 밤새 소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어른들은 3~40리 길을 걸어가 "이거, 우리 소요! 어서 내놓으시오"해서 찾아온 경우가 허다했다. 알고 보면 소도둑은 항상 아는 사람이었음에 지서로 넘기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는 영리한 동물이다. 소든 돼지든 제 집을 떠나던가 목숨에 대해 사람이 의논을 하면 절대 밥을 입에 대지 않는다. 식음을 전폐하기가 사람 못지 않다. 끌려가는 소의 눈물을 보았는가? 죽으러가는 소의 울음소리를 들어나 보았는가?

예전의 한우는 몸집도 아담하고 이뻤다. 요즘 소는 교배에 육종을 거듭한 터에 600kg 나가는 소가 있다. 대량 사육 환경에서 이 추운 날 한 데서 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는 소보다 여물먹고 쇠죽 끓여주면 냠냠 맛있게 먹던 옛날 소가 일은 했을망정 더 행복해 보인 건 왜일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