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가는 길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달라져야할 장묘 문화

등록 2003.01.07 12:30수정 2003.01.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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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셨던 집을 나서고

사셨던 집을 나서고 ⓒ 김규환

할머니는 올해 여든 여덟로 친구 인선이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광주에 나가 사셨다. 동생 혜영이도 중학교 다녔으므로 두 손주 밥을 해주시려고 말이다. 큰 아들인 아버님이 작년 여름에 먼저 세상을 뜨자 충격이 컸던 탓인지 아들을 곧 따라가셨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세상을 덮어 조문객 발길이 뜸했지만 할머니는 가시는 길에 손수레에 예쁜 꽃단장을 하고 산길을 조심조심 올라가셨다. 당신께서 늘상 다니던 산 위 밭에 터를 잡았다. 눈 오기 전날 미리 아들, 딸,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자들을 모아두고 동네사람들만 불러 조촐하게 한 상 받으시고는 가실 길 미련없이 떠났다.

a 산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산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 김규환

시골 동네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인지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상여에 떠메어 요란하게 노잣돈 받지 않고 나무 수레에 실려 아무 가진 것 없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다.

a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 김규환

어떤 사람이 그랬다. 네 살 아이는 4km로, 스무 살 청년은 20km로, 서른 살 아이아빠는 30km로, 마흔 살 장년은 40km로, 예순 살 할머니 할아버지는 60km로, 여든 살 노인은 80km로, 여든 아홉 살 망구(望九)는 89km의 속도로 죽음을 향해 돌진해가는 것이란다. 3,40대 속도가 붙기 시작할 때 조심할 필요가 있고 그 뒤는 세상을 즐기면서 다가오는 죽음을 즐거이 맞이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a 명정

명정 ⓒ 김규환

어느 초상집에 가보면 3일장 치르는 내내 곡(哭)을 한다. 곡기(穀氣)를 끊고 목이 터져라 운다. 눈이 퉁퉁 부어 있어 조문객 마음까지도 찢어놓는다. 심하면 여성들의 경우 슬픔에 북받쳐 기절을 하든가 뒤로 나자빠져 오랜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봐왔던 터다. 상여나가는 길에 구경나갔던 사람이 이런 광경을 보고 죽음을 면치 못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a 운구

운구 ⓒ 김규환

밤새 눈이 내린 탓도 있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리 슬퍼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친구 집의 장례 분위기는 차분하다. 가족끼리 모여 앉아 놀이를 즐기는 사람, 일찍 잠을 청하는 사람, 술 한잔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일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가신 분에 대한 존경과 슬픔이 왜 없겠는가마는 속으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 집안의 내력과 조절이 맘에 들었다. 큰아들이 먼저 간 것 빼고 호상(好喪)이 아닐 수 없다. 적당한 수(壽)를 누리시고 떠나신 할머니가 외려 가족들에겐 더 큰사랑을 실천하신지도 모르겠다.

a 꽃가마를 태우고

꽃가마를 태우고 ⓒ 김규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몇 나라에서는 저 멀리 산꼭대기까지 망자(亡者)를 모시고 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살았던 집, 후손이 머무르고 있는 집 뒤켠에 뭍어 잔디를 입혀 공원처럼 만들어 둔다 한다. 언제고 생각나면 인사드리러 가고 맛있는 음식 있으면 차려 같이 먹는단다.


a 흙에 묻히다

흙에 묻히다 ⓒ 김규환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가면 아이들에게 묘동에 올라가 놀라고 한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친해져야 나중에 벌초를 하든 한 번이라도 찾아 뵙지 않겠는가. 귀신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묘를 애들이 찾을 리 만무하다. 우리네 장묘 문화도 바뀔 시점이 되지 않았는가?

당장 화장문화와 납골당에 익숙치 않다면 가족 공동묘지를 만들어 가까운 곳에 한데 모을 필요가 있다. 후손 누구라도 찾을 수 있게 찾아가기 좋은 곳에 자리잡아 조그마한 봉분을 만들어 생전 활동상이나 이력과 사진을 A4 사이즈로 오석에 조각하여 두면 대대로 잊지 않고 기릴 것이다.

굳이 몇 백 만원이나 들여 비석, 망부석 세우고 상석을 할 필요가 없다. 가운데 한 곳에만 상을 차릴 돌을 준비하고 이정표 형식으로 입구에 안내판을 설치하면 얼마나 간단한가. 개개 묘마다 얼굴이 들어간 조각품은 돌의 수명과 같고 개당 가격도 20만원 대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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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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