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누워 살기에 사람이 그립다

복지시설 생활하는 전신마비 장애 이대우 시인

등록 2003.01.10 08:58수정 2003.01.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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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잔을 스스로 떠다 먹을 자유가 없는 저는 회초리 끝에 주전자를 고무줄로 칭칭 감아 밖으로 드리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어렵게 받아 마신 물이 꿀물보다 더 달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대우(47) 시인,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온종일 산맥처럼 누워 있어야 하는 뇌성마비 전신지체 장애인이다.

전남 목포시 대양동, 행정구역상 도시지만 논과 밭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한적한 농촌들녘. 이씨는 야트막한 야산과 논둑길 사이에 들어선 소망장애인복지원에서 7년째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세상에 태어나서 걸어본 기억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팔다리뿐만 아니라 말을 하지 못하는 육신의 고통이 그에게는 천형처럼 드리워져 있다.

뇌성마비 언어장애까지

a 말조차 하지 못하는 이씨는 세상사람과 잇는 유일한 통로가 항상 그의 옆에 놓여진 펜과 종이가 전부다.

말조차 하지 못하는 이씨는 세상사람과 잇는 유일한 통로가 항상 그의 옆에 놓여진 펜과 종이가 전부다. ⓒ 정거배

태어난 지 3개월 뒤부터 찾아온 장애 때문에 학교 그림자도 밟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글자를 익혔다. 또 자신보다 먼발치에서 앞서 가고 있는 세상과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타자연습까지 배워, 비로소 지난 97년 5월 첫 시집 <나의 웃음 이야기>를 펴냈다.

이에 앞서 지난 89년 가을 어느 종교단체 선교회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입상한 이후, 한국장애인 문인협회의 추천을 받는 등 그의 이름 뒤에는 '시인'이라는 명예가 붙었다.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영혼의 큰 그릇>에 이어 4월에는 세 번째 시집 <내게 집 한 채 권하네요>를 출간했다.

혼자된 산짐승이
슬픈 울음소리 내며
길동무를 찾는다


하얀 바다가
혼자 있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어둠 속의 산이 산짐승을 부르는데
나는 누굴 부를까,

- <외로움>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한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육필 일기를 써왔다.

세상으로부터 갇혀 있고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는 단절된 세상을 향한 소망과 그리움을 날마다 일기형식으로 토해냈다.

펜과 종이는 세상과 잇는 통로

방 한 쪽에 누워 있는 그의 머리 곁에는 항상 펜과 종이가 놓여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종이와 펜이 그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그는 지난 57년 보릿고개로 알려진 굶주림의 시절에 경북 경주군(구 월성군) 현곡면이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출생 3개월 되던 즈음 밤낮으로 울어댔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한 열로 고통스러워했던 그는 결국 사지가 뒤틀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이씨의 두 형은 다른 집 머슴살이 가고, 생계를 위해 새벽마다 별을 보고 집을 나간 어머니는 달이 떠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나이 열 살 되던 해 자신을 내내 등에 업고 키웠던 누나가 시집가면서 눈물 흘리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불구인 그에게 시련이 닥쳐온 것은 형의 혼사문제가 나오면서부터였다.

형의 배우자가 될 사람은 집안에 병신이 있다며 주저하게 됐고, 결국 그런 이유 때문에 형은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간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방 한구석에 누워 있는 자신에게 대소변을 억제하는 약이라며 먹을 것을 재촉했다. 솔깃하며 받아먹었지만 다행히 죽지 않고 깨어난 시간은 그날 밤이었다.

어머니가 내밀었던 수면제의 의미는 불구의 아들을 모질고 험한 세상에 내놓았을 때, 감당해야 하는 멸시와 천대가 더 큰 아픔이 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신앙 통해 희망 얻어

지난 7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이씨의 존재는 형제들로부터도 소외됐다. 온 종일 누워 있는 그의 방 안의 유일한 벗은 라디오였다. 교회에 나가고 싶다며 조카의 도움으로 어렵게 써보낸 편지를 통해 어느 교회 전도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주일날 휠체어와 학생들까지 보내준다는 답장을 받은 그는 토요일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도움으로 머리도 감았다. 하룻밤이 지나야 교회가는 날인데도 혼자서 두 시간 가까이 몸을 뒤척이면서 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다린 주일날, 하지만 교회에서 보낸다는 학생들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일날 학생들은 왔는데 식구들이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는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사실에 낙담했다.

라디오를 통해 신앙심을 키워온 22살이 되던 해, 그는 조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비로소 세상과 접할 수 있는 교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직장 때문에 형님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가자 그는 3년 동안 혼자 살기도 했다. 그 후 지난 88년부터 주위의 도움으로 서울 서초동 장애인 시설에서 모처럼 마음 편하게 생활한 것도 잠시였고, 그에게는 다시 어려움이 찾아왔다.

생활하던 장애인 시설은 외부 지원이 끊겨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낭송 시집 출간 기대

교회 전도사의 도움으로 그가 전남 무안군 청계면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91년. 청계 장애인 요양원에서 6년 동안 지내다가 당시 새로 개원한 목포 소망장애인복지원에 보금자리를 잡게 됐다.

지난 2002년은 그에게 세상에 온기를 느낄 만큼 기쁜 일이 많았다. 그는 곁에 놓인 종이 위에 서툰 손놀림으로 "작년에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집을 두 차례나 펴내 발표회까지 가졌던 일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시집 발표하는 날, 멀리까지 찾아온 조카들을 만난 것도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특히 이 달에는 서울 조카가 내려와 함께 해남으로 여행하기로 했다며 기다리고 있다. 창문 밖 외출은 그에게는 너무나 큰 기쁨인 듯했다.

그는 시 낭송 음반과 시집을 내는 게 새해 소망이다. 시를 쓰는 일이 행복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방 한 켠에 온 종일 산맥처럼 누워지내지만 그의 표정을 너무나 밝아 보였다.

그는 오늘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창문 밖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뒤틀린 손끝으로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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