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형사회 연기형인간

내가 원하는 나, 남이 원하는 나?

등록 2003.01.15 20:14수정 2003.01.1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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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극장형사회 연기형인간' 이란 주제로 한 연사분이 강의하시는 것을 보았다. 흥미가 가면서도 의미심장한 제목을 예고로 보면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본 방송은 몇분밖에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내 머릿 속에는 그 제목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었다.


잠깐 동안 밖에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지만 대강의 주제는 이러했다.

지금 우리는 '극장형사회', 즉 나 자신에게 충실하며 내면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본연의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연기자가 대본에 따라 그렇게 짜여진 틀과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아래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나는 한동안 이 몇글자의 제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 연사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극장'속에서 나 아닌 다른 어떤 사람으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 아래서 그 제한된 틀에 우리의 행동을 그리고 생각을 끼워 맞추며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표준적인' 인간을 생각해보자. 20대 초반에 혹은 대학졸업후 20대 중반까지 우리는 학생으로서 학생의 본분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면서 학교를 졸업한다. 남들과 어울리려면 그 나이에 걸맞게 적당히 성실하며 놀줄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취미활동은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늦기전에 취업하고 돈을 벌어, 결혼을 하고 아이도 한둘쯤은 낳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평범한 행복이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의 인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외면적 모습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이다.


쉬운 예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상당히 소극적이다. 대화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인 것 같아.' 이다. 불확실한 사실이나 가정을 이야기할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거짓을 입증해야 하는 사실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 느낌을 말하는 데에도 사람들은 '..인 것 같다' 는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다. 물론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을 철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며 남에게 반박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우리는 실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기도 전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은 어떠하며 또 어때야만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기에 그런 몇가지 형태의 사랑이 원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감정의 형태, 반응까지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획일적인 방법으로 학습되고 있다. 이렇듯 오래도록 학습된 우리에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다른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얼마나 민감한가? 유행에 맞지 않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취미, 남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우리는 불편하고 조금은 창피하게 인식한다. 이렇게 성장한 우리는 남들과 어울릴 수 있는 표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모습과 시선을 의식하고 또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과정과 순환속에서 어느덧 사람들은 모두 일률적인 행동과 목소리로 연기하는 연기형 인간으로, 연기자들이 모인 커다란 집단은 하나의 거대한 극장으로 완성된다.

그 극장안에서는 대본을 내던지고 문 밖을 나서는 일탈자는 인정되지 않으며, 완성된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유행이 바뀌면 극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조금 수정된 대본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연기하는 연기자들로 극장은 성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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