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음반, 아름답게 만듭시다

[나의승의 음악이야기③]신쾌동 '거문고 산조'와 황병기 '춘설'

등록 2003.01.17 17:26수정 2003.01.1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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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쾌동 '거문고 산조', 황병기 '춘설' 앨범 표지

신쾌동 '거문고 산조', 황병기 '춘설' 앨범 표지 ⓒ 나의승

숙성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먹을 것 들은 대개, 그 깊은 맛에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 문화 속에 그것은 된장, 동치미, 젓갈 등일 것이다. 요즘은 아름다운 전통의 음식들을 인스턴트 음식처럼, 간소하고 예쁜 포장용기에 담아서 파는 시대다.

전통의 음식들처럼 이 땅이 종주국이 되어 태어나고, 숙성의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국악은 CD라고 하는 인스턴트 포장용 그릇에 담겨서 팔리고 사며 사람들은 그 맛을 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산조를 좋아한다. 거문고, 가야금, 대금 등의 산조는 억지를 부리는 일도 없고, 일부러 낮추지도 않으며, 때로 즉흥적이고, 유유자적 높은 경지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신쾌동 선생의 거문고 산조는 자알 익은 동치미와도 같다. 우리 전통음악 속 보석중의 하나일 것이다. 듣다 보면, ‘좋다’등의 추임새와, 개인주택에서의 녹음이어서 그랬는지 개 짖는 소리도 섞여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돋궈준다.

한국화중 보기 드물게도 인물화를 그리면서, 국악에도 깊은 감상의 맛을 알고 있는 후배 Y는 그 말 자체가 일본어인 ‘회화’의 일본적 느낌을 벗어나서, 순수 전통의 한국인물화를 일생 그려야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인데, “국악을 듣기는 해야겠고 해서 샀지만, 너무 무성의해요” 라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여서 같은 마음임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우리 국악 음반 문화의 현실인 것에 대해서 걱정되고,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 이렇게 귀중한 음악에 설명 한 줄 제대로 적어 놓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음반들을 보면, 녹음할 때 어떤 녹음기와 어떤 마이크를 사용했으며, 모니터를 할 때는 어떤 스피커를 통해서 들었고, 심지어 신호전송용 케이블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주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국악부문에서 그렇게 친절한 음반은 없었던 것 같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사람들이 “국악 음반은 원래들 그래” 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우리가 먼저 아껴야할 숙명의 귀중한 문화를 이렇게 간수해도 되는 것인가, 자본주의 문화경쟁 시대에 인쇄상태나 커버 디자인을 적당히 무성의하게 해도 살사람은 대개 살 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그것도 한국의 종주문화를?


그러나 귀하고 고맙게도, 무성의 하고 조악한 국악음반들 속에 스스로 화살표가 되어주는 음반도 있다.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걸작선’들이 그것이다. 그중 4집 ‘춘설’을 보면, 전문적인 ‘북 디자이너’가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과, 그 안에 들어있는 작은 책 속에는 한국어, 영어, 불어, 일본어로, 그의 음악에 관해서 상세하고도 간결한 설명을 적어 놓았다. 게다가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음반이면, 내용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간혹 우리에게 외국인친구나 외국에 사는 친척이 있어서 한국음악을 선물하고 싶을 때, 내나라 한국에 숙성된 아름다운 음악 중에 ‘산조’라는 것이 있는데, 재즈 트럼펫 ‘마일즈 데이비스’의 과장 없고, ‘카리스마’가 있고, 때로 불을 뿜는 듯 하던 음악을 혹시 그대가 들어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서 그대들이 느끼듯이 여기에도 즉흥성이란 게 있다. 반면에 '대단히 자연스럽고, 식물성이다' 등의 설명을 더하면서, 자랑스럽게 건네줄 수 있는 음반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국악음반,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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