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축축한 독 속에서도 나보다 더 먼저 봄을 맞고 있었다.전희식
내가 놀란 것은 버리려고 독에서 꺼낸 강낭콩들이 제비새끼 주둥이처럼 샛노랗게 움이 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썩은 콩 깍정이는 콩이 움트기 좋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봄인 것이다. 봄이 온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이 기세등등하던 동장군이 쫓겨 가고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리어카에 오줌통이랑 거름을 가득 싣고 밭에 갔다가 바글바글한 봄나물을 발견하고 다시 정말 봄이구나 싶어졌다. 나는 올 해도 밭을 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흙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른 고춧대를 하나씩 뽑아내다가 파릇파릇한 나물들을 엄청 많이 발견했다. 먼저 광대나물과 냉이가 눈에 들어온다. 이맘때면 양지바른 곳에 무더기로 돋아 있는 나물이다. 아예 밭둑을 타고 앉아 나물을 뜯었다. 아니 뽑았다.
광대나물은 작고 동글동글한 잎이 도톰해 귀여운 어린애 볼 같다. 가을에 나기 시작하여 겨울 내내 죽은 듯이 지내다 이제 왕성하게 자라기 시작한다. 냉이와 광대나물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봄의 전령이다.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 먹든지 된장 풀어 끓이면 뿌득뿌득 생기 돋는 소리가 날 정도다.
광대나물은 줄기가 왕성한 데 비해 뿌리는 가늘고 짧다. 그래서 맨손으로도 잘 뽑힌다. 반대로 냉이는 뿌리가 굵고 깊다. 냉이를 그냥 뽑으려다가는 뜯겨버린다. 겉잎은 누렇게 말라있고 속잎 줄기는 몇 개 안된다. 나는 금세 나물을 수북하게 뽑았다.
모든 들풀이 다 그렇지만 광대나물도 싹이 틀 때하고 한창 자랄 때, 그리고 꽃이 필 때는 영 딴판이다. 지금은 여리게 생긴 나물이지만 5-6월이 되면 30-40cm 나 되는 광대꽃이 되는 것이다. 광대처럼 불쑥 솟은 모양 때문에 이름도 그렇게 정해진 나물이다. 쑥갓도 꽃이 피고 나면 언제 저걸 내가 쌈 싸 먹었던가 싶을 정도로 쑥갓 나무가 되어 있다.
봄나물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