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폐쇄성 벗고 '열린신문' 지향을
분위기쇄신 위해 인적개편 절실하다"

<동아일보>노조, 기관지 [동고동락]서 '쓴소리'

등록 2003.03.03 21:11수정 2003.03.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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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동아공정위가 '대선보도의 공정성 훼손'을 지적한 데 이어 동아일보 노조도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노보에 실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행된 <동고동락> 1면 노설.
지난 1월 동아공정위가 '대선보도의 공정성 훼손'을 지적한 데 이어 동아일보 노조도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노보에 실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행된 <동고동락> 1면 노설.
"거대야당의 잘못도 때로는 통렬히 비판하고, …햇볕정책의 과만큼 공도 소개하자."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매서운 비판의 목소리는 찾을 수 있지만 반대로 사업주의 불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동아일보는 사회면 톱기사에 '촛불시위 순수성 논란'이라는 제목을 달아…문제는 앙마의 비양심성에 십분 동의하는 동아일보 내의 네티즌들마저 이같은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내부에서 '공정보도'를 위한 인적쇄신을 요구하면서 그간 <동아> 지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지난 1월 3일 <동아> 공정보도위원회가 '공보위광장'을 통해 대선보도에서 <동아>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동아> 노동조합(위원장 윤영찬)도 최근 노조 기관지를 통해 그간 <동아> 보도의 문제점을 통렬히 지적하면서 인적 쇄신과 보도의 균형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달 28일 <동아> 노조가 발행한 <동고동락> 282호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설(勞說)과 조합원들의 글 여섯 편이 실려 있다.

'특대호'로 발행된 이번 <동고동락> 282호의 '노설' 제목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 타블로이드판 8면으로 제작된 <동고동락> 1면 머릿기사로 실린 노설을 통해 <동아> 노조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적 개편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지금이 인사개편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동아> 노조, "열린 신문 위해 인사개편 절실, 지금이 적기"

<동아> 노조는 이 글에서 "지난해 대선 과정 이후 지속돼온 본보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논란을 접하면서 노조는 신뢰받는 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한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 노보를 통해 인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선에서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며 "최근 우리 신문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경직성과 폐쇄성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개방적 자세와 합리적 사고의 열린 신문으로 변신하기 위한 인적 개편이 절실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광화문 동아일보 새사옥에 내걸린 '신뢰받는 신문 동아일보' 플래카드.
광화문 동아일보 새사옥에 내걸린 '신뢰받는 신문 동아일보' 플래카드.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어서 <동아> 노조는 인적 개편이 절실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우선 "현재의 인적 체제와 그로 인한 신문제작 관행으로는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적 개편의 불가피성에 대한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동아> 노조는 "지난 대선에서 우리 신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정성 논란의 당사자가 됐고, '동아일보-선거 공정보도'의 전통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한다"며 "회사의 지향점인 '합리적 보수', '열린 보수'를 지지하지만, 최근까지의 신문 제작방향에 대해 '합리적 보수의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40대 이하 젊은 층들의 목소리를 수용하기 위해서도 '젊은 사고'가 절실"하다는 점, "회사내 전무하다시피한 상하간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인적 쇄신,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아> 노조는 "40대와 50대 이상은 7:3의 비율"이며 "이들 젊은 세대가 신문시장의 주 독자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젊은 사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도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신문제작에 토론도, 자기 비판도, 성찰도 없다면 미래를 향한 전진을 담보해 낼 수 없다"며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동고동락> 282호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 노조 조합원들의 글에도 공정성이나 균형성을 요구하는 <동아> 내부의 분위기가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 <동아> 노조는 이번 특대호 제작을 위해 조합원들의 기고문을 공개적으로 받아 가감 없이 노보에 실었다.

노조 조합원들이 이번 노보에서 다룬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원고지 10∼20매 안팎의 기고문들은 ▲언론환경 변화에 따른 <동아일보>의 전략적 편집방침 ▲편향성 극복 ▲대선보도에 대한 평가 제안 ▲대북 보도 방향 ▲인터넷과의 관계 정립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의 판단력 팔자, 기획기사로 승부", 신 전략 눈길

<동아> 노조는 노설을 통해 '합리적 보수'를 지지하지만, <동아>가 이미 '합리적 보수의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동아> 노조는 노설을 통해 '합리적 보수'를 지지하지만, <동아>가 이미 '합리적 보수의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제 '선택과 집중'으로 승부하자"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의 전략적 편집 방침을 제안한 한 노조원은 열세에 놓인 <동아>가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변화의 선공(先攻)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기사의 꼭지수를 줄이고 기획으로 결판내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노조원의 주장은 한 마디로 기사의 '경중(輕重)'을 판단, "날카로운 기획물들의 승부수"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자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편집 방향 변화를 "동아일보의 판단력 팔아먹기"로 표현했다.

"결론은 '동아일보의 판단력 팔아먹기'이다.… 아직도 동아일보가 모든 세상정보를 다 담고 있어야 하는가… 보도게재에서 물먹지 않으려고 조금씩이라도 얼굴을 들이밀다 보면 지면은 조각 조각 사금파리로 가득하다. 톱기사가 그날의 주인공으로서 떡 벌어지게 행세하지 못하고 수많은 조연배우 속에서 끼워져 있는 형국이 된다.… 독자는 빈틈없는 정보의 바다로서 기사 꼭지수가 넘치는 동아일보를 원할까. 자신감 넘치게 맞춤편집된 날카로운 기획물의 승부수에 더 감동할까. 바로 동아일보의 판단력에 더 감흥하게끔 동아일보 지면이 환골탈태해야 한다."

아울러 그는 '따옴표 편집'과 "자극적인 단 한마디를 거두절미 포획하여 간판으로 밀고 나가는" 단장취의(斷章取義) 보도방식을 계속해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가 우선적으로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 노조원의 글도 노보에 올라있다. 한 조합원은 <동아>가 "한때 대표적 민족지라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 민족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내부를 향해 던졌다. 아울러 '서민의 신문'이었던 <동아>가 현재는 가진 자들의 편에서 편향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에서는 노동자, 농민,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의 응달에 위치한 사람들 관련 기사나 사진은 아침부터 신문을 읽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이상한 논리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재벌의 족벌경영, 부의 편법세습, 탈세 등에 대해서 예전에는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어왔습니다만 요즘 그런 사설은 보기가 힘듭니다.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매서운 비판의 목소리는 찾을 수 있지만 반대로 사업주의 불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낍니다. 두산중공업이 노동법상 명백한 불법인 블랙리스트를 지니고 있었다는 보도는 사회3면에 2단 크기 기사로 보도됐고 이후 관련 내용을 사설이나 칼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조합원은 "불편부당 시시비비로 다시 돌아가 균형감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거대야당의 잘못도 때로는 통렬히 비판"하고 "햇볕정책의 과만큼 공도 소개"하며 "노조의 탈법 못지않게, 아니 더 준엄하게 사용자의 탈법을 꾸짖자"고 제안했다.

지난 1월 3일 동아공정위가 지적한 대선보도에서의 공정성 훼손 문제에 대해 "편집국장부터 수습기자까지 모두 한 데 모여 허심탄회하게 우리 지면을 평가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노조원도 있다.

그는 지난 대선기간 동안 자신이 만난 사람들 중 "혹자는 동아일보를 열렬히 좋아했고, 혹자는 동아일보를 끔찍이 싫어했다"며 "공교롭게도 전자는 이회창 지지자였으며 후자는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공정성의 잣대를 이제 스스로에게 들이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기사를 쓸 때 취재원을 향해 들이대던 그 수많은 날카로운 잣대, 특히 '너희들은 정말 공정했니'라는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야 한다. 열린 공간의 장에서 치열한 토론을 해야 한다. 우리 신문은 앞으로도 수백 번 더 선거를 치러야 한다. 논쟁이 시작된 이번 선거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비슷한 '응어리'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노조의 한 조합원은 <동아>가 '불편부당 시시비비' 정신으로 돌아가, 대기업노조의 불법 행위와 함께 족벌기업의 탈법 행위도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조의 한 조합원은 <동아>가 '불편부당 시시비비' 정신으로 돌아가, 대기업노조의 불법 행위와 함께 족벌기업의 탈법 행위도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편부당 시시비비로 돌아가야", "인터넷 포용" 제안
지속적 문제제기, 지면개편 반영 등 미지수


최근 <동아>가 '인터넷'이나 '인터넷 매체'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 온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노조원도 있다. 한 조합원은 "최근 동아일보가 인터넷과 적대적인 관계인 것처럼 비쳐지면서 '네티즌'임을 자부하는 동아일보 구성원들이 당혹해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를 사설까지 동원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앙마'의 자작극으로 몰아간 <동아>의 보도태도를 비판하면서 글을 시작했다.

그는 "촛불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아이들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의 대다수가 정말 앙마의 기사 하나 때문에 자신들이 거리로 나섰다고 생각할까"라며 "취지 자체에 심정적으로 깊이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수십 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있었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또 전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전시위'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거짓여론에 움직인 사람들'로 몰아 간 동아일보의 보도에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인터넷은 사회가 고스란히 투영되는 또 하나의 사회"라며 "이 사회 내부에서도 책임있는 목소리가 더욱 존중받고 있으며 비윤리적인 행동은 비난받는 등 나름대로의 정화기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가 더욱 더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30대 이하의 세대에서 전화만큼이나 기본적인 생활의 방편이 된" 인터넷과 네티즌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보에는 이 외에도 북한을 바라보는 두 미국학자의 논문을 소개한 뒤 "동아일보는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부에 던진 노조원의 글도 실려 있다.

최근 '공보위광장'이나 '노보'를 통해 터져나오는 <동아> 내부의 목소리들은 대부분 '공정성'과 '균형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보위나 노조의 주장이 차후 <동아> 지면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동아> 노조는 이번 특대호 사고를 통해 "활발한 의견개진과 의사소통의 활성화를 위해 계속해서 기고문을 받을 것"이라며 "다음 원고는 다양한 의견과 이번 호 동고동락 기고문에 대한 반론 등으로 채울 예정"이라고 밝혀 <동아> 내부에서 비슷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올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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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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