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P가 보헤미안을 받아들인 이유

DVD감상 Best of Sessions at West 54th Vol.1

등록 2003.03.31 12:46수정 2003.03.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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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지배 계급인 위스프(WASP)들이 사는 부유한 교외 지역에 갑작스럽게 우아한 커피숍들이 들어서 있고, 그 곳에서 사람들은 유럽풍 커피를 마시며 얼터너티브 음악을 듣고 있었다. 또한 보헤미안들이 사는 시내 중심가 지역에는 수백만 달러짜리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갑자기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들이 나타나 간디나 잭 케루악이 한 말씀을 광고에 인용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코드는 완전히 뒤바뀐 것 같았다. 유행에 민감한 변호사들은 작고 귀여운 철제안경을 착용했는데, 이제는 폴 뉴먼이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처럼 보이는 것이 더 위신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데이브 브룩스의 <보보스> 중에서 발췌.


다시 말해서, 21세기 엘리트 계층인 <보보스>들은 서로 견원지간이였던, 기존의 현실적이고도 보수적인 부르주아 문화의 미덕과 그에 반하는 과거 보헤미안들의 자유주의적 감성과 진보적 태도를 자웅동체로 변모시켰다.


a 좌상단부터 벤폴드파이드, 시너드 오코너, 아니 드프랑코, 에밀루 해리스, 요요마, 제인 시베리

좌상단부터 벤폴드파이드, 시너드 오코너, 아니 드프랑코, 에밀루 해리스, 요요마, 제인 시베리

도대체 보헤미안들의 어떤 문화적 매력이 그 도도하고도 엄숙한 부르주아들의 구미를 당겼을까? 당장에 'Best sessions at west 54th Vol.1'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DVD로 출시된 Best sessions at west 54th Vol.1는 미국의 공중방송 PBS에서 주말마다 방영하였던 음악공연프로그램인 Best sessions at west 54th 중에서 프리미어 시즌에 등장하였던 당대의 아티스트들을 총망라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벤 폴드 파이브, 아니 프랑코 등의 인디계 실력파는 물론이고, 70년대 전설적인 보헤미안 뮤지션이였던 여성 록커 패티 스미스, 신세대 반항아 시너드 오코너, 포크계의 여장부 에밀루 해리스와 재즈계의 독보적 존재 윈튼 마샬리스, 게다가 재즈와 클래식을 융합시키는 퓨전클래식의 달인 요요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이 DVD의 매력은 우선적으로 5.1로 사운드로 구현되는 탁월한 사운드에 그 힘이 놓여진다. 다소 스크래치가 있는 25년된 봅딜런의 LP판에 카트릿지를 올려놓은 다음 지직거리는 파열음과 함께 재현되는 그의 시적 음성을 감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히 과거로의 의식의 퇴행에 머무르는 것 같지만, 5.1로 증폭되는 과거 비트 족 시인들의 포효는 열린음악회나 가요무대에서 선전하는 한물간 노장들의 회갑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신선함과 식지않은 열정을 만개시킨다.

'Best sessions at west 54th'는 기존의 여타 콘서트 분위기와는 달리, 뉴욕에 소재한 소니뮤직 스튜디오에서 백여명이 채 안되는 관람객에 둘러싸인 중앙에서 공연이 수행된다. 기존 콘서트나 TV라이브 쇼에서 느낄 수 있었던 관객과 아티스트들간의 경계구역은 찾을 수 없다.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는 한 관객의 손에 커피라떼나 에스프레소라도 쥐어진다면, 영락없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조그마한 라이브카페가 되고만다. 그들을 교주로 숭배시하는 사제들의 광란적인 환호성도 없다. 연주와 노래를 수행하는 그들 문화적 자본의 소유자들은 단지 그들의 팬들과 함께 영적인 음악적 교감을 나눌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DVD에서의 압권은 요요마도 시너드 오코너도 아니다. 필자도 DVD로 처음 접한 생소한 이름의 캐나다 출신의 제인 시베리. 그런데 알고 보니 벌써 경력 20년이 넘은 중견 아티스트였다. 물론 주류음악계에는 그다지 고개를 내밀지 않아서이다. 그녀가 여기서 시연하는 곡 Love is everything은 DVD라는 매체의 사운드의 명징함이 주는 효과와 더불어, 일상에 지친 영혼과 육체를 보듬어주는 듯한 아주 평화로운 에네르기를 노정(露呈)한다.


아무리 과거의 전설적 아티스트들이라 하더라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귈레나 같은 섹시한 관능미를 내세운 비디오 지향적인 MTV 사단에는 적수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첨단 문명의 이기인 DVD에 고스란히 담겨져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들만의 문화적 은유와 코드를 설파할 수 있는 기회는 최소한 제공을 받는다.

이는 사회학자 피엘 부르디외도 주장한, 모든 지식 및 문화계 인사들이 나름대로 특정한 형태의 자본을 갖고 시장에 진입한다는, 문화적 자본이 자본시장에서 신성화될 수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얼마전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던, 5.1이 아닌 PCM 스테레오로 인코딩된 김광석의 DVD를 만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문화적 자본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아티스트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언제 그들의 시연을 온전한 5.1사운드로 감상하게 되는 기회가 생길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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