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께

아이들의 희망을 위해 참된 '당사자'로 바로서기

등록 2003.04.01 22:34수정 2003.04.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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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발달장애 어린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진 모든 부모님들과 장애인 가족들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가족 없는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글을 드립니다.

요즘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고 교육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하물며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힘겨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동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와 가족들은 자녀의 장애와 함께 사회적 차별의 이중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교육모순과 '장애인 차별구조' 때문이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취학기 장애아동(특수교육이 요구되는 아동)이 22만명이라고 합니다. 6~17세까지의 학령기 아동 800만명 중에서 2.7%(특수교육 요구아동 출현율)가 됩니다.

6세 아래의 장애유아를 포함한다면 우리사회에서는 30만명이 넘는 장애아동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있는 학령기 장애인은 6만명에 미치지 못하여 장애인 4명 중 3명은 여전히 교육기회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기초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 장애인으로 성장하였고 여전한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이 이야기되고, 장애아동의 교육권이 본격적으로 요구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년전의 일입니다. 그만큼 일천한 역사를 가진 장애인의 권리를 제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장애아 부모들과 가족들이 장애인 운동의 '참된 당사자'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들 장애인 가족들은 어떻게 진정한 당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지역에서 여러 부모들과 가칭 '장애인참교육 부모회' 건설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왜곡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올바른 장애인 당사자주의와 그리고 부모를 비롯한 '장애인 가족운동'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합니다.


장애인 문제의 '당사자주의'

장애인 운동에서 당사자주의는 '자기결정권'을 갖는 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장애인 차별구조와 모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장애인 스스로의 의지와 힘에 의해 차별구조를 철폐함으로써 당연한 권리를 획득하고 지켜나갈 수 있다는 지극히 자연스런 이치를 말합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권리는 동정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사회 인식과 시혜적 관점에 갇혀버린 정부 당국자들의 그릇된 정책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되어 왔습니다. 거기에는 장애인을 이용한 장삿속에 열을 올려온 사이비 복지교육가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마저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의 권리로 주장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최근 장애인 사회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 예를 들면 꽃동네, 에바다농아원, 한빛맹학교, 시각장애인단체의 노조 탄압, 특수교육 가산점폐지 논쟁 등등이 이를 말해줍니다. 심지어 장애인단체 중에 왜곡된 장애인 정책에 편승해 조직된 소수 장애인들의 이익에 따라 잇권단체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 장애인운동은 잘못된 당사자주의에 빠져왔고 장애인 사회 안에서 '또다른 장애인 차별'을 낳았습니다. 이는 중증 장애인, 정신지체 장애인, 여성장애인에 대한 이중차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그릇된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450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인권운동의 폭을 좁혀 보편적인 사회진보 운동에서 멀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의 서글픈 현실이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에서 보았듯이 장애인들에게 쏟아졌던 '마녀사냥 여론'은 우리사회의 일상화된 장애인 분리차별주의와 함께 장애인 운동의 협소한 입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장애인 운동이 보편적이고 하나된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당사자주의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년전 부터 제기되어온 '장애인이동권 투쟁'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운동의 진정한 당사자주의를 드러냄으로써 미약하나마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이동 차별의 제약 속에서 멈추지 않은 장애인들간의 소통과 연대의 힘이었습니다.

장애인운동과 장애인 부모운동

그러나 정작 장애인 당사자임에도 자기결정권을 인식하거나 주장하기 어려운 장애인들도 많습니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중증의 장애인들, 특히 어린 장애아동들에게 진정한 당사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부모들을 포함하여 장애인 가족이야말로 장애인 본인을 대신하는 당사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혈연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장애인 문제의 당사자로 되는 날은 그만큼 한걸음 진보한 먼 훗날의 이야기이겠지요.

부모님, 지금까지 장애아동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애써온 많은 선배 부모님들이 계셨지만, 그간 장애인 부모운동도 당사자주의에 바로 서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들 장애인 가족들은 과연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눈으로 사회를 인식하고 차별구조를 바꿔내려고 싸운 적이 있었습니까? 장애인의 부모들이 함께 힘을 모아 장애인 인권에 대해 한 목소리로 주장한 적이 과연 있었는지요.

쟁점이 되는 요구가 있기 전에는 움직이길 싫어하는 정부관료들은 아직도 장애인 인권에 대해 낡은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특히 교육복지 관련 관료들은 장애인의 권리를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시혜적 관점, 그릇된 가족주의 입장에서 장애인 가족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의 부모들도 당국의 시혜적 정책에 맞춰 '내 자식 떡하나 더 챙기기' 에 매달리는 오랜 관성에 젖어 있지 않았었는지요.

오랜 경험을 통해 알듯이 관련 당국자들이 먼저 낡은 사고를 버리고 관점 바꾸기를 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장애인 부모 진영은 시혜와 차별에 익숙한 그간의 낡은 사고와 결별하고, 자녀들을 대신하는 '투쟁의 당사자'로 나설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변함없는 당사자주의의 원리이며, 여러나라 장애인운동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진실입니다. 특히 장애인 교육운동은 부모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모든 장애인 문제는 하나이며, 장애인 운동도 하나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장애의 양태와 경중은 서로 달라도 '장애인 차별'이라는 똑같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중증장애인 먼저, 어린이 장애인 먼저, 여성 장애인 먼저, 정신지체장애인의 권리가 먼저 확보되어야 올곧은 평등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목소리가 큰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만, 차별을 거부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럴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전체 장애인 운동이 올바른 당사자주의에 굳게 서고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으로 거듭나기를 장애인 부모로서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장애인 단체들은 반성해야할 부분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장애인 부모운동도 증증장애와 경증장애,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통합교육과 개별화교육 이라는 자기 자녀만의 특수성에 갇혀서 대의를 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 목소리로 모든 장애아동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참된 장애인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또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대신하는 참된 당사자로 설 때 우리들 장애인 부모운동은 곧 '장애인 운동'이 될 것입니다.

장애인 자녀의 눈으로 세상보기

부모님, 우리들은 보호자 이전에 장애인으로서 고유한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장애인을 억압 차별하는 사회를 보고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감내하는 분노와 송두리채 바꿔내려는 열망으로 아우성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모든 장애인들은 이미 세계의 모순과 차별을 드러내는 등불이자, 참된 인간해방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아닐까요?

저는 작년 이맘때 '장애인 최저생계 보장'을 외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갑내기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씨의 장례를 지켜보면서, 그녀의 죽음 속에서 발달장애인인 일곱살 제 딸아이의 앞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바꿔내야만 하는 이 세상의 앞날도 함께 보았습니다. 또한 지난해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4.20 장애인 차별철폐 집회'에서 외치던 장애인 형제자매들의 격렬한 몸짓 속에서 제 딸의 분노와 열망을 보았습니다.

이제 부모님께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의 인권을 당당하게 되찾기 위해 장애인 부모로서 진정한 당사자로 나서자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먼저 기본 인권인 '장애인으로서 치료받고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함께 연대하자고 제안합니다. 전국적으로 '장애인 통합교육'을 바라는 여러 부모단체들이 연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지역에서도 각 지역 부모모임들이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대의를 가지고 가칭 '장애인참교육 서울부모회' 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부모회는 장애학생, 학부모, 교사 등 장애인교육 당사자 간에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급한 과제로서 '특수교육 예산 3% 즉시 확보'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관철하기 위한 싸움에 부모님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애 문제의 근본원인은 예산이 아니라 '차별'에 있습니다. 장애인 해방은 돈이 있어야 담보되는 복지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인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가진 인격과 당연한 기본인권을 옹호하는 흔들릴 수 없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부모인 우리들도 그 어떤 시혜나 동정의 관점을 거부하는데 익숙해질 때, 우리 아이들도 당당한 장애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 저는 장애인 딸아이가 비장애인 대열에 가까워지는 것보다는 '훌륭한 장애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키우고 있고, 공감하시겠지만 더 깊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녀리고 낮은 목소리, 누군가가 대변하지 않으면 안될 아이들, 바로 장애 어린이, 장애청소년을 둔 우리 부모들이 이제는 당사자로 바로 서서 행동해야할 때가 아닐까요? 아이들의 희망, 부모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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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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