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교의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

법정의 <인도 기행>과 톨스토이의 <톨스토이 단편선>

등록 2003.04.03 15:39수정 2003.04.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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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과 톨스토이의 <톨스토이 단편선>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하나는 확실하게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철저히 기독교에 근거한 책이니 말이다.

한 권의 책만 집중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는 습관 덕분에, 나는 우연하게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 책이 담고 있는 기본적인 메시지들이 너무나 다르면서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교 철학을 담고 있는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은 원래 1991년에 출간한 책인데 2002년에 재판되어 나온 덕에, 그 전에 읽지 못한 후회를 만회하며 읽기 시작했다. 법정의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의 에세이집이 그의 산사 생활을 통해 얻어진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은 인도 기행을 통해 얻어진 생각과 느낌들을 솔직하게 쓴 것이다.

싯다르타가 수행한 장소, 간디의 고향 등 인도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법정 스님은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더 값있는 삶인가?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철학적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찾아간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법정이 찾은 해답은 아마도 싯다르타가 수행한 곳에서 느끼게 되는 그의 이타심(利他心)일 것이고, 인도의 걸인들을 통해 느끼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일 것이며, 달라이 라마의 설교를 통해 느끼는 부처님의 자비일 것이다.

비록 가난하고 거지처럼 살아도, 인도의 모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을 보며 법정은 남을 위해 선행과 자비를 베푸는 게 바로 인간이 가야할 도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도의 싯다르타와 간디와 테레사 수녀가 이 메시지를 몸소 실천하고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법정 스님의 생각은 톨스토이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비록 <톨스토이 단편집>이 그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다고 할 지라도 그 근본적인 생각은 법정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한다는 점과 그것의 토대가 되는 종교관만이 다를 뿐이다.


톨스토이의 책에서 유명한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법정 스님이 생각했던 철학적 명제와 같은 제목의 소설이다. 그리고 담고 있는 내용도 법정과 비슷한 가치관을 보여 준다.

어느 날 한 착한 구두장이가 발가벗겨 버려져 있는 거지를 집으로 데려 오게 된다.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 거지는 점점 밝은 모습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자신이 하늘에서 온 천사이며 하느님이 주신 숙제를 풀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 숙제는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 구두장이와의 생활을 통해 그 내쫓긴 천사는 사람이 바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답을 얻게 되고, 결국 다시 천사의 삶을 얻어 하늘로 가게 된다.

사람은 사랑(혹은 자비)을 베풀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랑을 인류 전체와 나누기 위해서 산다. 너무나도 단순한 명제이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종교의 가르침에서 이를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두 종류의 너무나도 다르면서도 같은 내용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해답은 모두들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인도기행 - 삶과 죽음의 언저리

법정(法頂) 지음,
샘터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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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도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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