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 하고 싶었다"

[인터뷰] <날 보러와요> 극작가 김광림

등록 2003.04.16 15:36수정 2003.04.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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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날 보러와요> 출연진

<날 보러와요> 출연진 ⓒ 악어 기획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원작인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살인의 추억>의 개봉에 맞추어 영화의 원작인 김광림 작, 연출의 <날 보러와요>가 동숭아트센터에서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영화를 제작한 사이더스에서 원작이 되는 연극이 공연될 수 있게 제작비를 지원해 이루어졌다.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는 90년대 대표 희곡으로 96년 이후 300여 회가 넘는 공연 횟수를 가지고 있는 검증된 작품으로 초연부터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영화로 만들기 위해 탐내던 희곡이다. 이 작품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과연 진실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을 쓴 김광림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으로 재직중이며 <홍동지는 살아있다>(1994, 이윤택 연출) <저 별이 위험하다>(1994, 박광정 연출) <날 보러와요>(1996, 김광림 연출) <나비의 꿈>(200, 이항 연출)등의 작품을 쓰고 <북어대가리>(1994, 이강백 작) <5월의 신부>(2000,황지우 작) 등을 연출했다.

4월 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김광림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날 보러와요>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90년대 대표 희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처음 하고자 했던 얘기는 '진실은 없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작업을 하다보니까 '진실은 없다'는 명제가 가지는 논리적 허점이 발견됐다. 그래서 바꿨다. 어느 희랍 철학자의 이야기인데 '진실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알기 어렵다. 설령 알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그 얘기를 작품의 주제로 대입을 했다. 그래서 진실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 발상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을 한번 연극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구성하는 과정 중에 그런 결론을 얻게 됐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틀림없이 범인은 있다. 사건 발생이 2~3년 어느 경우는 거의 매달 일어났다. 엄청난 수사력이 동원됐다. 전경까지 하면 몇 천명이 동원되어 수사를 했는데도 전혀 단서를 못 잡았다. 이 사실이 그런 비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a 김광림

김광림 ⓒ 한상언

- 어떤 계기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 만들게 됐는가?
"어느 배우와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화성사건 일어나서 용의자를 수십 명 데려다 수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범인임을 밝혀내지 못했으니 전부다 죄가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사람들이 죄도 없이 고생을 했으니까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같이 먹은 그 배우의 얼굴이 억울하게 생겼다. 누구라고 하면 다 아는 유명한 배우다. 연극에서 형사들이 용의자를 잡아오는데 계속 그 사람만 잡아온다. 물론 다른 사람인데. 그렇게 연극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실제 용의자 세 사람을 한사람이 연기를 했다. 발상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날 보러와요>에서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형사의 절규로 끝난다. 절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형사가 틀림없이 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형사가 미쳤던 것이다. 미쳐서 자기 환각 속에서 범인을 본 것이다.

실제 형사들도 개인적인 피해들을 많이 봤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도 있다. 실제 그 사람을 봤다. 더 이상 형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화성 경찰서 앞에서 지팡이 짚고 왔다 갔다 하더라.

미친 사람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모른다. 처음 공연했을 때 범인이 공연을 보러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왔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다."

a <살인의 추억> 포스터

<살인의 추억> 포스터 ⓒ 한상언

- 희곡을 보면 형사도 범인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제가 <날 보러와요>를 쓰면서 글을 쓰는 나도 범죄적 심리 상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정신상태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태. 인간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아마 형사가 범인일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 <날 보러와요>가 <살인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96년, 공연 첫날 누가 찾아왔다. 예전에 오리콤이라는 광고회사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인데 자기가 판권을 사겠으니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첫날 그러고 갔는데 다음날 누가 와서 판권을 사겠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선약을 했으니까 결과를 좀 봐야된다고 했다. 실제로 일주일 후에 계약을 했다.

판권을 산 분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가 못 만들고 IMF가 와서 회사의 문을 닫았다. 그 사이에 젊은 감독이 두 명인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그 쪽이랑 연결시켜줬는데 성사가 잘 안됐다.

이번에 영화를 만드는 사이더스에서 판권을 사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봉 감독은 공연을 여러 번 봤다고 하더라. 초연 때도 보고 그 이후에도 보고.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 <살인의 추억>과 <날 보러와요>가 같은 시기에 영화로, 연극으로 관객에게 찾아간다. <날 보러와요>의 연출을 직접 하시게 됐는데.
"내가 하고자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더스에서 제작비를 반을 자기들이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계약 조건에 연출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하게 됐다."

a 김광림

김광림 ⓒ 한상언

- 전에 같이 공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뭉쳤나?
"반 정도는 그 동안 했던 배우들이다. 그 중에서 용의자 한 분하고 형사 한 분은 모든 공연에 출연했다. 전에 세어 보니까 내가 연출한 게 250회 된다. 쉬었다 또 하고 또 하고 해서 여러 극장에서 2년 걸쳐 했다. 그리고 박광정씨가 연출한 한 게 한 4-50회 될 것이다. 그 모든 공연에 한번도 안 빠지고 출연한 배우가 두 명 있다. 용의자 역에 류태호씨와 박형사 역의 유연수씨 두 사람은 300여회 모두 출연했다. 권해효씨도 몇 번 빼놓고 거의 다 출연을 했다. 그리고 최용민씨도 했었다. 그렇게 네 명은 많이 했던 배우들이고 나머지는 처음하는 배우들이다."

- 이전 공연과 비교해 크게 바뀌는 부분이 있는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는데 조금 바뀌는 부분은 있다. 용의자 중에 한 명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사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관음증 환자로. 그게 극에서는 중요하다. 그것하고 약간의 손질을 했다."

- 작년 말에 상영한 'H'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가 <날 보러와요>와 비슷하다. 이처럼 TV나 영화에서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많은데?
"그 영화를 보지 못해 뭐라 말 할 수 없다. 양심의 문제다. 판정한다고 했을 때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저작권에 관한 것은 미국이 잘되어있는데도 연출이나 무대미술에 대해서는 미국도 어렵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는 것이다. 극작이나 시나리오는 판가름하면 판가름이 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작가를 살게 해주는 측면에서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TV에서도 <날 보러와요>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한 장면들이 몇 번 나왔다. 다방 아가씨가 시 읽는 장면이 있다.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두어번 봤다. 희곡을 베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방아가씨가 누구 앞에서 시 읽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방송국이 연극이나 작가 개인에 비해서 막강한 조직인데 저작권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 <날 보러와요>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연우무대에서 만드셨는데.
"지금은 크게 관여 안 하고 있다. 저하고 몇 사람이 연우무대를 만들었다. <날 보러와요> 할 때만해도 적극적으로 관여를 했었는데 지금은 학교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연우무대는 78년 창립할 때 대표였던 정한룡 대표가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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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언

- <날 보러와요> 이후의 계획을 듣고 싶다.
"소위 서양 연극형식, <날 보러와요>도 그런 거지만 그런 연극은 당분간 안 하려고 한다. 작년에 <우투리>라는 한국 연극 틀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실험하는 연극을 했었다. 그것을 금년에 손질해서 다시 하려 한다. 10월에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큰 페스티벌이 있는데 거기에 초청을 받았다. <날 보러와요> 공연 올리면 바로 그 작업 들어가려고 한다."

- 우투리 말고 구상하는 작품이 있나?
"김동환이 쓴 <국경의 밤>이라는 장편 서사시가 있다. 그것을 내가 생각하는 형식, 우리가 지금 그냥 연극이라고 부르는 서양연극하고는 다른 그런 형식으로 공연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내년쯤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보러와요>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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