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헬렌 켈러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

등록 2003.04.23 00:58수정 2003.04.2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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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시대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렸다. 예수가 활동하던 때 장애인들은 죄악을 저지른 특수한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서구 중세시대 장애인은 천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자선의 대상일 뿐이었다. 2차 대전 당시 나찌는 장애인들은 전쟁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독가스실로 보냈다. 1950년대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자로서 탄압을 받았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002년 3월 한국 뇌성마미 장애인운동가 최옥란씨는 26만원의 최저생계비로는 살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지난 18일 정부는 '장애인의 날' 기념 행사를 열었다. 20일로 정한 장애인의 날은 1981년 유엔이 정한 장애인의 해를 맞아 전두환 정권 때 장애인 위안행사를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장애인 가족이지만, 장애인의 날이 하루행사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 관심도 없다. 올해 정부의 장애인의 날은 무리한 야외행사 강행으로 참여한 장애인들이 우천 속에서 비를 피하느라 허둥대야만 했다.

반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장애인들은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기획단'을 구성하여 한 달 동안 10개 차별철폐 요구사항을 내걸고 다양한 대중행사들을 개최하였다.

a 20일 대학로 방송통신대학 앞 차도에서 열린 장애차별철폐결의대회에서 '차별철폐' 피켓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선 장애인들.

20일 대학로 방송통신대학 앞 차도에서 열린 장애차별철폐결의대회에서 '차별철폐' 피켓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선 장애인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20일 대학로에서 열렸던 '장애인 차별철폐 결의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 있을 뿐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대회는 거리행진까지 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하였고, 비를 맞으면서도 흩어짐 없이 진행되었다.

정부가 생각하는 장애인의 날은 1년 내내, 수십 년 동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 차별과 복지 부재에 대한 책임을 1회의 행사로 감추는 날인지도 모른다.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 차별철폐의 당위성이 인식되는 날이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래야만 장애인을 향한 한 걸음의 진보라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진보적 장애인운동 진영은 지난해부터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라고 선언하는 새로운 장애인 운동 흐름을 만들어왔는데, 이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라는 진정한 '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살아나면서부터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가 장애인 복지에 대해 '차별철폐와 사회적 연대'라는 관점과 실천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 부모단체(장애인참교육 서울부모회)도 장애인 차별철폐투쟁 공동기획단에 참가하여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부모운동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앞으로 많은 장애인 가족들도 더 이상 정부 행사의 들러리가 아닌 스스로 시민사회운동의 주체가 되어 장애인 차별철폐 운동에 동참하게 되길 기대한다.

지난 세기 헬렌 켈러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

눈을 돌려 장애인의 사회사, 장애인 운동의 역사에 대해 좀 거창한 얘기를 꺼내 본다. 장애인이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일 것이다. 지난 19세기 동안, 아니 인류사에 계급이 출현한 순간부터 지난 세기 전까지 장애인은 아무런 역할이 없는 '제 4의 계급'일 뿐이었다.


지난 세기에도 장애인들이 안고 살아온 차별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 지식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미국의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가 되었던 이유를 가늠케 해준다.

헬렌은 1909년 매사추세츠에서 사회주의당원이 된 이후 장애인 복지운동뿐만 아니라, 초기 미국 산업자본주의 시기에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연대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로서 전투적 참정권 운동, 반전운동 등에 매진했다. 50년대 매카시즘에 의한 탄압 시기에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목숨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헬렌은 잔학한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이겨내려는 자신의 투쟁과 비슷하다고 여겼다(도로시 허먼)"

"나는 전투적 참정권론자입니다. 나는 참정권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내게는 사회주의가 이상을 실현하는 운동입니다(1913 뉴욕타임즈 인터뷰)"

"동쪽에서 새별이 떠올랐다. 고통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낡은 질서 속에서 새 질서가... 전진하라! 동지들이여. 단결하라! 러시아혁명의 현장으로 전진하라. 동트는 새벽을 향해 전진하라(1920 메디스 스퀘어가든 연설)"


21세기에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도 장애인은 여전히 하나의 계급이다. 특히 금세기 신자유주의 자본 논리가 지배하면서 구미사회에서도 장애인들의 삶의 조건은 다시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장애인 사회를 둘러보고 온 장애인 이동권 연대 박경석씨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1960년대부터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하여 현재 전국에 수많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존재하고, 1990년에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미국장애인의 자존심의 상징처럼 '미국장애인법'을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장애인들은 70% 이상이 실업자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수당으로 간신히 생존하면서 미국 내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었다(2003.2.4 에이블뉴스)"

21세기에도 장애인들은 여전한 차별 속에 머물게 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차별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장애인 차별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진보란 어떤 것인가. 모르긴 해도 금세기에도 '장애인의 평등'은 사회 진보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장애인 차별 철폐'라는 화두는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가 고민하던 문제에서 결코 멀지 않다고 본다.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 확고하고 원초적인 장애와 차별에 도전하기 위해서 진보적인 장애인운동은 '사회이념적 전망'에 대해 문제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운동은 바로 비장애인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잃을 것이라고는 '차별과 고립'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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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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