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준치, 기계식 카메라 M3 제값 받기

<사주 여행. 20> 단순 평범한 오래된 것이 대접 받는다

등록 2003.04.26 00:14수정 2003.04.26 15:2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사랑은 이룰 수 없기에 아름답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기에 더 갖고 싶다.


첫사랑 같고 가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 품에 있던 라이카. 철 나서 카메라가 무엇하는 물건인 줄 안 뒤로 별러 라이카 M3를 갖게 되니 50의 나이가 지나서였다. 기계식 라이카 카메라는 제 몸 속에 또 다른 몸이 들어있는 듯 한 중량감이 있다. 자동 카메라를 누구나 맵시있게 글을 꾸밀 수 있는 워드프로세라 한다면 라이카는 육필로 글을 써야하는 몽블랑 같은 만년필이다. 라이카는 찍는데로 멋진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a 제조 50년이 지나도 제 값하는 라이카만큼 우리 인생 몇 이나 제 값할까.

제조 50년이 지나도 제 값하는 라이카만큼 우리 인생 몇 이나 제 값할까. ⓒ 황종원


라이카에게는 가장 싼 다른 자동 카메라에게 있는 복잡한 기능이 없다. 기능은 기계식 카메라에게 있는 타임과 조리개에다가 셀프타이머 기능만이 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산골 소녀같은 카메라이다. 피사체를 보고 샤타를 눌렀다고 만만하게 사진이 찍히는 카메라가 결코 아니다.

찍으면서 생각하며 찍은 다음에도 어떤 사진이 나올까 맘조리게한다. 물론 기계식 카메라들은 대개 그런 고민을 주게 마련이지만 그런 카메라의 획을 그어준 카메라이며 라이카 M3는 카메라 역사에 한 시대를 열었던 카메라였다.

1954년에 선을 보인 M3는 그때까지의 라이카와는 내부 구조와 외형이 뛰어나게 달라져 세계 각국의 메이커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카메라였다. 라이카 매니아라면 한 대 가지려는 욕심이 생기는 카메라이다.
품에 안고 있을 카메라가 아니니 아직도 야전에서 뛰는 노장 허재 선수같은 현역이다.

필름을 넣고 찍은 지 한참이 되었다. 이제는 이따금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아보듯 라이카를 잡고 필름 레바를 돌리고 니콘 F4S보다도 넓은 화각의 화인다를 통하여 방구석만을 찍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진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역전노장 라이카의 신세가 처량하다.


필름 값에서 자유로운 디지털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물론 내게는 7년 전에 샀던 20만 화소급 소니 디지털 카메라가 있으나 배터리의 수명은 다 되고 카메라에 맞는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폐품이 되어버렸다. 기계식 카메라와 달리 전자식 제품의 한계가 그런 점에서 뚜렷하다. 기계식은 없는 부품을 만들어서 쓸 수 있지만 전자식은 부품이 고장 나면 못쓰고 버릴 수 밖에 없다.

필름 사고 인화할 여유와 사진을 찍어 모울 흥미도 잃어갔다.
모셔만 두는 라이카를 정리를 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살 궁리를 했다. 인터넷에 라이카 사이트에 올리자 바로 연락이 왔다. 밤 9시 반에 사자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고 나서는데 아내가 길을 막는다.


품 안의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라이카를 왜 파느냐 하는 것이 첫째 이유요, 한 밤중에 누구인 지 모르는 사람을 만나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내가 디지털 카메라를 사줄 테니 나가지 말아요.”

남편 걱정하는 아내의 임기응변이고 그 말이 진실이라 할지 라도 내 취미생활을 위하여 아내에게 부담시킬 생각은 없다. 아내를 밀다시피 하고 집을 나서서 광화문 지하철역 승강대에 내 라이카를 살 사람이 시간 맞춰 와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끼리라도 묘한 일은 서로 상대방을 느낌으로 금새 알아 볼 수 있다. 통성명을 하기 바쁘게 물건을 꺼냈다. 라이카 M4를 가지고 있다는 그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말과는 다르게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내 자신이 마치 알몸이 된 듯 부끄럽다.

샤타를 눌러보고 타임이 끊기는 소리를 들어본다. 카메라의 바닥 뚜껑을 열더니 카메라의 필름 차단 막을 확인한다. 렌즈를 전등에 비춰본다.

그는 밤중에 라이카를 사러 나선 만큼 반드시 사려고 나왔으나 내 물건에 이유를 달면서 내가 인터넷에 올렸던 130만원에서 15만원을 깎자고 한다. 나는 라이카에 대하여 상당한 전문 지식을 가진 그의 태도에 주눅이 들었다. 내가 샀던 것은 7년 전 130만원 나는 라이카를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함께 하였다. 상대방의 가격에 내가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말한 돈을 받고 물건을 넘겨 주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했다. 다시는 라이카를 살 수 없을 것 같은 허전한 마음과 함께 과연 제 값을 받았는가 하는 계산적인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 광화문에서 고덕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방금 내게 라이카를 사간 사람이었다.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반환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황하였으나 성질이 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내게 라이카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지금 못 팔았다고 못 팔 물건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틀 뒤 우리는 다시 광화문에서 만나서 물건과 돈을 서로 바꾸었다. 내게서 라이카를 사간 사람은 이런 이유를 달았다.

" 카메라를 수리 했었더군요. 라이카는 일자 나사인데 한 번이라도 드라이브를 대면 자국이 납니다. 그런 자국이 있구요. 정식 기술자가 손을 대고 깨끗하게 손을 본 것이 아니라 서툰 사람이 손을 댔더군요. 화인다 안을 보면 30-50-100미리 화각이 보이게 되어 있는데 안보여요. 수리를 잘못한 것이지요. "

나는 카메라의 이런 결함을 모르고 라이카라는 존재만이 좋아서 샀던 것이었고, 라이카를 살 당시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자세한 상식이 없었다. 아니 정확한 상식이 있었다면 완벽한 제품을 돈을 더 주고 샀어야 할 것이다. 그 사람과는 헤어졌다.

집에 와서 메일을 열어보니 라이카를 사겠다는 메일이 계속 들어와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이름만으로도 라이카 매니어들은 탐을 내는가 보다.

다음날 바로 만나자 하는 사람을 만나러 과천 지하철 역으로 갔다. 먼저 사람은 나와 동년배였는데 이번 사람은 마흔이 안된 사람이었다. 라이카 매니어 치고는 젊은 나이였다.

내 카메라를 이리 저리 만져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먼저 사람이 지적한 사항을 이 사람도 지적을 한다. 화인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거래는 판이 깨졌다. 나는 갑자기 불완전한 물건 취급을 받는 이 라이카를 팔 자신이 없어졌다. 130만 원은커녕 7~80만원을 받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이메일이 또 들어와 있었다. 전화를 거니 송탄에 있다며 기차를 타고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울역에 오랜만에 갔다. 상대방은 예상보다 늦게 왔다. 기차 시간을 못 맞춘 탓이었다. 나는 상대방을 만나면서 당황 하였다. 역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숙자 차림의 60대였다.

이럴 수가. 나는 세번째 거래도 끝이 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라이카라면 기차를 타고 오는 매니아와 만난 혼란 속에 당황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집중으로 점검을 하였다.

카메라의 아래 덮개를 열고 사탸막이 보이게 한 뒤 각 타임마다 조절하고는 샤타를 끊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며칠 동안 아 카메라를 다루던 사람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엄격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것은 카메라를 새로 사기 위한 점검이기도 하지만 새 식구를 맞이하는 의례절차인 듯 엄숙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카메라의 까진 뚜껑이니 일자 나사에 상처를 입은 부분에 대하여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실없이 물었다.

" 이 밤에 카메라를 사겠다고 나설 때 부인께서는 가만히 계시던가요?"
" 말 하고 나옵니까? "

그는 120만원에 하자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돈을 받자 그에게는 단 돈 천 원만 남았다. 나는 그에게서 받은 돈 중에서 3만 원을 되돌려 주었다.

단 돈 천원을 남기고 들고 온 돈을 다 털고 살 만큼 내 라이카는 그에게는 아직은 쓸만한 카메라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고쳐서 써야 해요. 한 번 손 볼 때 돈 10만 원은 기본이지요. "
이래서 7~80만 원을 받으면 잘 받을 줄 알았던 나는 내가 원했던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요즘 첨단 디자인과 놀라운 성능의 디지털 카메라는 시장에 나온 지 1년 만 되면 중고 값이 30%는 사라진다. 10년이 되면 돈 주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아는 사람에게 주어도 구형 물건을 쓸 사람이 없다.

요즘 같이 디지털 시대에 사람이나 기계나 평가되는 기준이 무엇이 다를까. 첨단 기능을 가진 다기능 사람의 지식이라는 것이 1년마다 바뀌는 새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밀려간다.

그러나 단순 기능한 인간, 평범한 인간이 대접 받는 분야가 어디인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나 기계나 타고난 팔자가 있기 마련,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만이 제 대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중고 카메라 하나 팔면서 나는 인생이나 기계나 제 팔자가 제 값 하는 실상을 이렇게 겪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