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특별공급, "특별한 게 없다"

대전 용두동 철거민들,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다"

등록 2003.05.20 15:28수정 2003.05.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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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5월 15일 특별공급을 거부하는 기자회견

지난 5월 15일 특별공급을 거부하는 기자회견 ⓒ 박현주

용두동 철거민들의 노숙이 300일을 넘어섰다. 지난 2002년 7월 18일 행정대집행(일명 강제철거) 이후 집과 세간을 몽땅 잃은 철거민들이 주택공사와 중구청 앞에서 항의를 하며 노숙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현재 시청과 주택공사, 심지어 청와대까지 오가며 시위를 하는 등, 고된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나 사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주민비상대책위원회가 처음 활동하기 시작한 2001년 3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용두동 싸움은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든 셈이다. 이 사태는 도대체 해결이 불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어떠한 난맥상이 있기에 싸움이 끝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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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평 쪽방 주민들 거리로 내쫓으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 주거환경개선 ' 인가"

모든 병에는 약이 있고 모든 독에는 해독제가 있는 법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반드시 있으니, 결과를 부른 원인을 찾아내어 풀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

사태해결이 난마에 빠진 와중에도 용두동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더구나 대한주택공사 대전충남지사는 아파트 분양을 서두르며 대전시의 인가를 받아내 급기야는 지난 5월 13일 원주민을 위한 '특별공급' 공고를 하였다.

특별공급이란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에서 원주민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주민들에게는 처음부터 건설원가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선전을 했다.

a 선언문을 읽어내려가는 조야연 주민대표

선언문을 읽어내려가는 조야연 주민대표 ⓒ 박현주

대한주택공사 대전충남지사는 용두동에 살던 토지, 가옥주 300세대를 대상으로 평당 363만원의 가격으로 특별공급을 한다고 밝혔다. 이는 평당 414만원인 일반분양가보다 50만원 정도 낮은 가격이다.

주택공사는 시위를 풀지 않고 있는 30세대의 철거민들이 이번 특별공급을 받지 않을 경우 제도적으로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며 주민들의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5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용두동 철거민 전원이 특별공급신청을 거부했다.


대전 용두동 철거민공대위 김규복 상임대표 인터뷰

대전지역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철거민 공대위) 김규복 상임대표(빈들교회 목사. 52)를 만나 특별공급 거부의 배경과 이후 사태해결의 방안을 들어보았다.


- 원주민을 위한 특별분양을 주민들이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가? 기자회견에서 '기만적'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반대로 주택공사가 오히려 특별한 신경을 써준 것 아닌가?
"이번 특별공급이 주민에게 특혜를 준 것처럼 보도되었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건설원가 특별분양은 정주권 보장보다는 주민들의 동의를 획득하기 위하여 제도적으로 이미 제시된 제도인데, 마치 용두동 철거민에게만 특별히 주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주택공사가 수차례 밝히라고 요구했던 건설원가를 밝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특별공급가를 공고하고, 이것이 마치 건설원가인 양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a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한 김규복 철거민공대위 공동대표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한 김규복 철거민공대위 공동대표 ⓒ 박현주

- 주택공사가 발표한 363만원이 건설원가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363만원이 건설원가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첫째, 주택공사는 명확히 건설원가의 내역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애매한 답변만 계속한다.

둘째,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이렇게 많은 액수는 나오지 않는다. 서민아파트에 해당하는 25.7평 이하의 경우, 정부가 정한 표준 건축비는 평당 200만원선이다. 게다가 주택공사가 밝힌 용두1지구 평균 토지 보상비가 112만원이므로 용적율 220%로 나누면 평당 50만원 정도가 되고, 부대비용 10%를 포함한다 해도 도합 270만 원 정도이다.

그런데 그들은 100만원이나 많은 363만원을 제시해놓고 싼 가격이라고 우기고 있다. 만약 우리의 계산이 잘못된 것이라면, 주택공사는 투명하게 건설원가 내역을 밝히고 자신들이 책정한 363만원이 합당함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 현실적으로 주민들에게 평당 363만원 책정은 부담스러운 액수인가?
"물론이다. 분양가는 주민의 토지와 지장물 보상가의 3배에 달한다. 게다가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주민의 대부분인 7-8평의 작은 평수에 살던 사람은 보상액이 2천만원 내외인데, 이 돈으로는 임대아파트도 부담스러울 지경이고, 설령 들어간다 해도 월 15-25만원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기도 벅차다.

현재 투쟁중인 용두동 주민들은 60대 이상의 고령이 대부분으로 생계능력이 없다. 게다가 내 집에서 부담 없이 살다가 임대료를 꼬박꼬박 물면서 남의 집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서민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며 큰 상처다. 결국 특별공급조차 포기하거나 전매하고 나가라는 의미 이상이 아니다."

- 주택공사측에서는 이번에 특별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제 법적으로 주민에게 돌아갈 아파트나 혜택은 없다고 한다. 주민들 내부에서 갈등은 없었는가?
"특별분양을 받고 싶어하는 주민도 물론 있었다. 주택공사는 끊임없이 주민과 주민의 가족에게 전화를 하여 위기의식을 느끼도록 해왔다. 그러나 주공의 말대로 특별공급 신청을 하면 정주권보장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을 개혁하기 위하여 2년여 동안 싸운 명분이나 보람을 찾기 힘든 결정이라는 것이 주민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난 주민수련회 때 모두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는 자신의 모든 이익과 권리를 포기하고 자존심과 원칙을 위해 싸울 각오를 한 셈이다. 주민들의 결의가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남은 생애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 "
<용두동 철거민인터뷰 1> 김화순(여,65세)씨


-특별공급이 발표되었을 때 고민되지 않았나?
"조금 고민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2년동안 싸우면서 강제철거 때 맞고, 시위 때마다 맞은 것이 너무 억울하다. 구둣발로 채인 자국이 1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 특별분양이고 뭐고 이겼다는 말만 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나?
"물론이다. 온 몸이 안아픈 곳이 없다. 계속 병원을 다녔었는데, 지난 2월 노숙현장 철거때 많이 다쳐서 병원에 한 20일간 입원해있었다. 신발도 신을 겨를도 없이 중구청 직원들이 팔다리를 들어서 던지기까지 했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너무 서러워서 약도 안먹고 울기만 했다."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나?
"일찍 남편을 여의고 5남매를 용두동에서 혼자 키웠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오늘도 전화해서 시위 그만하라고 하더라.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은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살다가 가고 싶다."
- 그래도 불이익을 받으면 어떡하나?
"주민들과 대화를 해보면 알겠지만,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돈 몇 푼 더 받는 것이나 부동산 투기가 아니다. 그들은 용두동에서 지난 3년간 벌어졌던 사태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다. 중구청장과 대전시장이 모른 척하고, 주공과 경찰로부터 무자비하게 인권을 짓밟힌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악선전에 시달렸던 것을 기억하고 분노한다.

자신들이 당한 억울한 일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주거환경개선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질 소위 특혜를 포기하고 더 이상 힘없는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로운 투쟁임을 보여준다."

-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첫째, 현 제도로는 주민의 정주권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도시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개선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공영개발방식, 즉 토지와 건물의 전면매수와 공영개발 후 분양방식은 사업권을 독점적으로 갖는 주택공사가 개발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토지와 건축물의 보상을 최소화하고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기 때문에 작은 토지 위에 살던 가난한 주민들을 재정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인지역에서는 세입자들의 문제가 심각하여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임대아파트를 늘리고 평형을 줄이는 식으로 개선하였으나, 지방의 경우 세입자보다는 작은 토지소유자나 국공유지 위에서 살던 사람들의 문제가 심각하고, 그래서 특별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둘째, 시행과정 자체가 주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지자체는 주민의 입장보다는 지역개발에서 오는 부수적인 이익에 집착하여 주민에게 이 사업에 의하여 나타날 결과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잘 살게 해준다는 뜬소문만으로 동의를 유인하여 지구지정을 하게 된다.

우선 주민동의를 만들어내는 데 급급하여 설문지 방식의 동의서 작성이나 일간지에 조그맣게 공고를 내고, 1%도 안 되는 이의신청률로 증명되는, 일제시대부터 사용되던 아주 형식적인 공람제도를 통해 주민의 알권리를 오히려 박탈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주민들이 생계에 바쁘고 연로하거나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주민의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참여과정이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 없이 추진위원을 일방적으로 구청장이 선임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보상가 산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결국 공익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

셋째, 낮은 보상가에 대하여 저항하는 주민들에 대한 강제철거과정에서 주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강제철거에 적용되는 행정대집행법이라는 것은 이승만 정권 때 제정된 것으로 개발이나 건설관련 민원을 해결하면서 조직깡패들에게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주는 수단이 되어왔고, 그래서 계약과정에 불법도 많고, 철거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용인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용두동 떠나는 것 너무 슬퍼.."
<용두동 철거민인터뷰 2> 인명선(남,77세)씨


-말씨가 낯설다. 북한이 고향인가?
"황해도가 고향이고 나는 6.25피난민이다. 군제대후 용두동에 정착해서 철거전까지 살았다."

-특별분양을 왜 거부했나?
"처음부터 받을 생각도 없었다. 돈도 필요없고, 내가 살던 땅만큼만 원한다."

-용두동에서 살고 싶은가?
"용두동에서 5남매를 키워서 결혼시켰다. 용두동은 정든 땅이다. 이웃들과 오순도순 40여년을 살았다. 이곳에서 생을 평화롭게 마감할 줄 알았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웃들과 재미나게 살던 곳이다. 용두동을 떠나는 것이 너무 슬프다. "
-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원주민의 정주권을 보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주권이란 주민들이 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의해 지역에서 살아왔던 삶의 양식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하고, 지역을 강제로 떠날 경우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크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 보상 대신 살고 있던 면적만큼 아파트로 제공하는 '현물보상원칙'이나 순환개발을 통해 지구내 가수용단지 제공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용두동 주민들은 싸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있어서 독점적 사업권을 가진 주택공사의 개입을 막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사업을 추진하는 주택조합 형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는 주택공사가 사업권을 갖더라도 건축공사 자체는 민간기업에게 하청을 주는 형식이므로 결국 경비가 이중으로 들어가고,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투명성도 오히려 떨어지고 주민의 참여와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그리고 시행기관인 지자체가 아무런 권한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은 민주주의 방식이나 지방분권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용두동 문제의 경우, 우선적으로 주택공사는 건설원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주민들이 살고 있던 평수만큼은 공탁된 보상금 대신 현물로 제공하고, 추가된 평수에 대하여 건설원가로 분양해야 한다. 그리고 불법적인 강제철거로 인한 가구훼손금과 생업손실을 배상해야 하고, 정주권의 중요한 요소로서 지구내에 가수용단지를 제공해야 한다."

- 대전시와 중구청, 주택공사 등의 당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 동안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던 주민들을 이기주의자로 몰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사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대전시와 중구청은 주택공사에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원천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인식을 하여야 한다.

아무리 제도와 관행상 잘못이 없더라도 주민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편법을 사용함으로써 나타난 기만과 사기성에 대해 사죄해야 하고 이 모든 피해를 배상할 책임도 있다. 그리고 불합리한 토지보상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주택공사에 건설원가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건설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시장은 주택공사의 특별공급 시행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주택공사에게 끌려다니거나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주민보호에 나서야 할 대전시장이 주택공사의 사기극에 공범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a 5월 15일로 노숙 303일을 맞았다.

5월 15일로 노숙 303일을 맞았다. ⓒ 박현주

대한주택공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나 지자체의 개발 내지 재개발사업을 독점해왔고, 공권력을 통하여 국민들을 괴롭혀왔다. 특히 주거환경개선 사업은 결코 개발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개발이익을 위해 주민들을 변두리로 내쫓는 방식을 관철시켜왔다. 군사독재시대에 형성된 주택공사의 경영마인드를 바꾸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해체해야 한다."

- 참여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여와 개혁을 내세우는 현정부는 현행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모순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그 동안 언론에서 많은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공사의 전방위 로비에 의하여 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없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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