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식 관점 바꾸기

등록 2003.05.20 23:54수정 2003.05.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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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울시내 전철역에서 고교생 정도의 나이에 다소 행동이 어눌해 보이는 청소년을 보게 되었다. 장애 어린이를 키우다 보니 얼른 눈에 띄었다. 학생은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것으로 보였는데, 가지고 있는 돈을 챙겨 보면서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혹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순간 학생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 학생 아녜요.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스무 살 넘었고요. 도움은 필요 없어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 청년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청년에게 쑥스러운 표정으로 인사하고 돌아서면서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내심 다행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청년에게도 그랬듯이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발견한다. 장애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이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지체 장애인과의 교류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도 많다.

그러니 평범한 비장애인들이 정신지체나 언어감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의사소통하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은 장애인도 함께 이동하고 교육받고 생활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서의 평등과 기본인권이 달린 문제이다. 그런데도 장애인은 함께 생활하거나 교육받지 못하고 분리된 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대중은 450만 명으로 한 집안에 한 명꼴이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장애인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또한 자라나는 장애아동들이 30만 명에 이르지만 취학한 장애아동들은 많지 않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딸만 해도 장애유아로서 초등학교에 취학하기 전까지 어린이집 세 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장애아 전담어린이집에 가야만 했다. 유치원도 세 번씩이나 문을 두드려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유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 환경에 놓이게 되고 희생자가 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장애유아 차별구조는 비인간적인 사회의 얼굴을 드러내준다. 장애아동들은 이런 사회적 차별에 대항해 싸울 줄을 모를 뿐이다.


물론 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 제도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요구는 장애인이 그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을 때, 자립생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애 극복과 인간적 가치를 함께 느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 원하듯이 장애인들도 그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히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의 도움만 받으며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만 장애 때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한계에 따라 '사회적 연대' 정신에 따라 '장애인 먼저'라는 일정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두 해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발달장애 딸아이와 친구가 되어 잘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아이들은 내 딸과 같은 장애어린이와 함께 생활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피하던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조금씩 알게 되고 친해지더니 이제는 잘 챙겨주고 도와주는 똑똑한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또래들을 매우 좋아하는 딸아이는 친구들 이름만 들어도 웃음꽃이 활짝이다.


딸 아이와 유별나게 잘 지내는 몇몇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내 딸의 장애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장애인 친구를 배려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또한 유치원에서부터 함께 지냈던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장애인 친구와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곱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같은 반에도 발달장애 자폐아동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 아이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본다. 아이는 똑똑하게 대답한다. "그 애는 우리 누나처럼 장애인이에요. 생각주머니가 작아서 말을 잘 못하고요, 도와줘야 해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비장애인 사회에서,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왔던 어른들에게 달라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을 떼어놓았던 낡고 못된 관성 만큼은 버려야 한다.'장애인식 개선'이라는 프로그램 이전에 학부모들과 교육 관계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비장애 아동에게 장애아동과 함께 생활하며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도 소중하다. '내 아이만' 이라는 이기심으로는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장애아동과 함께 하는 생활이 아이들을 행복하고 올바르게 해줄 것이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가 좀더 행복하고 한걸음 진보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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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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