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꼼꼼하게 준비하면 별 탈 없이 잘 해낼 수 있다. 이런 일이 닥치면 특히 힘의 작용점과 그 방향을 이미 지어진 건조물을 잘 살펴보면서 연구하게 된다.전희식
나는 시골에 온 후 웬만한 것은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직접 해결한다. 일이 좀 늦어진다고 뭐 어디 탈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늦어서 탈 날 일이라는 게 어디 있으랴 싶기도 하다. 빨리 하려는 데서 탈이 났으면 났지.
며칠 전에 완성한 지붕 처마 공사도 이렇게 한 것이다. 치수를 정확히 재서 스레트를 사서 재단을 하고 꼼꼼히 안팎으로 페인트칠을 해 말려 두었었다. 받침대 목재도 잘 다듬어 두었었고 특히 굴뚝 옮기는 작업을 먼저 해 놓았다.
처음에는 아크릴 판으로 덮개를 하는 조건으로 공사를 업체에 맡기려고 했더니 168만원 견적이 나왔다. 기겁을 하고는 내가 직접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재작년 집 짓고 남은 각재들 속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내고 스레트는 읍내 철물점에 가서 샀다. 치수를 정확히 재고 이음새나 자투리까지 감안하여 자재를 샀는데 스레트에 칠 할 페인트까지 하여 20만원이 채 안 들었다. 철공소 일꾼을 불러 용접기랑 끌고 오게 해서는 모두 합해서 30만원 이내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무를 골라서 대패질하고 그라인드로 사포질하여 번호를 매겨 놓고 또 틈이 나면 여덟 자짜리 스레트를 반으로 자르고 페인트를 안쪽에는 흰색을 바깥쪽에는 짙은 풀색을 두 번씩 칠해서 말려 두었었다. 준비가 빠짐없이 다 된 날에 철공소 직원 불러서 같이 용접하고 스레트 이고하여 한나절만에 깔끔하게 일을 끝냈다.
지난 주 산속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집 마당으로 끌어내는 일은 더 재미있었다. 이 작업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했다. 시골 살림이라는 게 알뜰히 재활용하자면 천지가 다 자원이고 자재다. 아래 위 이웃집에 가서 빌리면 없는 이장이 없다.
역시 집 지을 때 상수도 배관공사 하고 남은 액셀 파이프에, 전기배관공사 하고 남은 튜브, 그리고 아래 옆집 오가며 물 호스를 모아다가 이으니 백 수십여 미터나 되었다. 아들 새들이에게 장기 통을 들고 따라 다니는 이른바 ‘시다바리’ 노릇을 맡겼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니 점점 재미를 붙이기에 쉬운 구간 작업을 맡기기도 했다. 그래봐야 시멘트못질이거나 철사 줄 매는 일 정도다.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와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내가 은근히 우리의 물 끌어대는 작업이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지를 부각시켰더니 새들이는 언제는 식량이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물이라고 둘러 붙이냐고 했다. 이놈아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물 없어봐라 창고에 곡식이 쌓여 있어도 다 죽는다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새들이랑 일을 같이 하면서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유에서 시작하여 파스칼의 원리까지 주고받았다.
물 이야기에는 구름과 비, 강과 바다이야기도 당연히 등장하면서 온 세상을 몇 바퀴 돌았다. 늘 그렇지만 일 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정말 싱싱한 물고기와 같다. 일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에는 관념적인 얘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호미잡고 일 하다가 정치가 어쩌네 경제가 어쩌네 하면서 말다툼했다는 소리 들어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