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국정원장은 3일 국회 정보위에서 "경 박사의 망명사실이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인사청문회장에 나온 고영구 원장.오마이뉴스 이종호
경 박사의 망명설은 지난 4월 19일 호주의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언>이 최초 보도하면서 국내외에 알려졌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언>의 주말판 신문 <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언>지는 “북한 핵과학자인 경원하 박사와 고위 장성 등 20여명이 지난해 10월부터 치밀한 준비 하에 서방으로 망명했다”며 “경 박사 일행은 현재 서방 국가의 안가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오스트레일리언>지는 또 일명 ‘족제비 작전’으로 불린 경 박사의 망명 작전이 미국의 주도하에 치밀하게 준비됐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나우루 등 11개국의 도움을 얻어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경 박사의 가족들을 지난해 말 나우루 대사관을 이용해 망명시켰다”고 보도했다.
경 박사의 망명설이 다시 국내에 알려진 것은 이틀 후인 4월 21일 <경향신문>이 1면 머릿기사로 호주 일간지 기사를 인용하는 등 국내 주요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부터다. 그 뒤 국내 일간지들은 연일 경 박사의 망명설과 관계된 기사를 내보냈고, 이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경 박사의 망명설과 관련 4월 23일 베이징회담을 앞둔 미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입장을 취했다.
| | | “이래가지고 앞으로 국회에 정보 주겠나?” | | | [뒷얘기]‘망명설 보도’에 정보위원 ‘분통’ | | | | “이런식으로 하면 앞으로 국정원이 어떻게 국회의원들을 믿고 정보를 주겠나. 그렇지 않아도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는 받기 힘든데,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번 건은 좀 심하다.”
3일 오전 국회 정보위 조찬간담회서 나온 ‘경원하 박사 망명설’ 관련 얘기가 곧바로 몇몇 언론에 실리자 정보위 소속 A의원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조찬 모임은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기로 한 자리. A의원은 “기밀 유지를 이유로 기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밀 유지 약속은 조찬 모임이 끝나자마자 깨졌다. 오전 8시 모임에서 보고된 내용은 11시가 채 되기도 전에 <연합뉴스> 속보로 각 언론사에 공개됐다. 이 기사에는 경원하 박사의 망명설 관련 보고 외에도 황장엽씨의 방미 문제도 포함됐다.
A의원이 이번 사건에 분통을 터뜨린 이유는 “국회의원들에게만 가면 정보가 샌다”는 국정원쪽의 반응을 의식해서다. 이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정부 부처들이 ‘고급 정보’를 국회에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깨고 정보를 흘린 의원은 찾아내 정보위에서 쫓아내야 한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관련 발언을 확인해 준 A의원의 주장이다. / 김영균 기자 | | | | |
토마스 허버드 주한미대사는 2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경 박사 망명설에 대한 “호주 언론의 보도가 명확한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언>의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망명설의 진위 여부는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이 허버드 대사의 입장이었다.
리처드 바우만 미 국무부 대변인도 21일(현지시간) 기자들을 만나 “(경 박사의 망명은)언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다”는 모호한 대답만을 남겼다. 망명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현재 확인중”이라는 것뿐이었다. 이처럼 미국 정부의 입장이 모호해지자 망명설의 진위는 더욱 판단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 정부 역시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승주 주미대사는 22일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확인해서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 정부는 “호주 일간지의 보도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밝혀 <오스트레일리언>이 오보를 했을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5월 6일에는 오랫동안 탈북자들을 도와온 독일 출신의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45)씨는 “경원하 박사의 망명설은 사실”이라고 주장해 한 동안 파문이 일기도 했다.
따라서 3일 알려진 국정원장의 보고 내용은 ‘경원하 박사 망명설’을 둘러싼 그 동안의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장, “경 박사, 핵폭탄 제조에 결정적 역할하는 과학자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