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주민, 지하철 묘역 반대 논란

"추모란 말도 인정 못하겠다"..."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

등록 2003.06.05 17:43수정 2003.06.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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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추모공원 부지에 대한 추모사업추진위의 결정을 대구시와 희생자대책위가 받아들였으나, 인근 주민들이 반대 여론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고산지역 일부 주민들은 오는 7일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반대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주최측 관계자는 800명에서 1000명 정도 참가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a 원드컵 경기장 부근에 걸린 현수막

원드컵 경기장 부근에 걸린 현수막 ⓒ 김광재

공동묘지저지대책위원회 전원식(52) 위원장은 추모공원 반대 이유에 대해 ▲희생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아니므로 ‘추모’란 말을 써서는 안되고 ▲사고는 중구에서 났는데 묘지를 수성구에 조성하는 것은 수성구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며(수성구에는 안되니 다른 구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안한대로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시립공원묘지로 가라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 ▲대구시가 힘에서 밀려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꼴을 보는 것도 불쾌하며 ▲주민들은 그린벨트로 묶여 30여년 경제적 정신적 압박을 받아왔는데 일부 세력이 공동묘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편법을 동원해 조성한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a 빨간점으로 표시된 부분이 묘역 예정지다. 삼덕동 마을은 당초 후보지(파란점)부근이다.

빨간점으로 표시된 부분이 묘역 예정지다. 삼덕동 마을은 당초 후보지(파란점)부근이다. ⓒ 김광재

현장을 답사해 본 결과 묘역이 들어설 자리는 바로 옆에 이미 천주교공동묘지가 대규모로 조성돼 있고, 삼덕동 마을에서는 산이 가려 보이지 않을뿐더러 직선거리로도 1km이상 떨어져 있다. 예정지 아래에는 2가구가 살고 있을 뿐이다.

예정지 아래에 살고 있는 신동준(58)씨는 “직할시에 편입되고 세금만 많이 냈지 시에서 상수도조차 넣어주지 않고 있는데, 난데없이 집 위에 묘지라니 있을 수 없다”며 “이곳에 묘지를 조성하려면 내 땅으로 길을 낼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것이라면 내 땅을 모두 매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들은 예정지가 천주교묘지에 붙어 있는데다가 마을에서 멀어 주민들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a 범안로 톨게이트 600m 후방의 묘역 예정지. 잣나무 조림지 오른쪽부분으로 도로에서 일부만 보인다.

범안로 톨게이트 600m 후방의 묘역 예정지. 잣나무 조림지 오른쪽부분으로 도로에서 일부만 보인다. ⓒ 김광재

추모사업추진위원장 김준곤(48) 변호사는 “우리가 운이 좋아 화를 당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며 “안전이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상인동에서처럼 이번에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자신이나 자식들이 또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며 이런 뜻에서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자는 것이 추모의 의미라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대책위 윤종화(36)씨는 “이번 참사가 없었다면 아직도 시민들은 아무 위험도 못 느낀 채 ‘불쏘시개 전동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고, 앞으로 고산지역을 운행할 2호선에도 ‘불쏘시개 전동차’가 운행됐을 것이란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아무런 잘못없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입장에서 좀더 마음을 열고 추모공원 문제를 보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일이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대구시가 지금까지 추모공원을 조성할 의지가 없었다는 데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손병윤 대구시의원은 “대구 부시장이 수성구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주민들이 강경하게 대응해 주어야 묘지를 조성하지 못할 것이란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조기현 대구부시장과 수성구청장은 그 말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규택 수성구청장은 "조 부시장이 관제데모를 부추긴 것은 아니지만 수성구에는 안된다고만 하면 지역이기주의로 보일 수 있으니 대구시 안에는 안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결국, 대구시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해서 더욱 어려워졌고, 처음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이 삼덕동 마을에 인접한 곳이어서 주민 여론이 악화된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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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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