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담아올 걸망 하나 만들다

카메라 하나 덜렁 둘러메고 뚜벅뚜벅 산사기행을 시작하며

등록 2003.06.05 21:11수정 2003.06.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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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참 많다. 신발과 복장은 물론 먹을 것과 비상약품 그리고 지도까지. <뚜벅뚜벅 산사기행>이란 타이틀로 일 년쯤 좋은 산 좋은 곳에 있는 산사를 기행하려 한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웬만한 절이면 차로 갈 수 있고 주변에 음식점도 있을 테니 산행처럼 복잡한 장비들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 하다.
그냥 카메라 하나 덜렁 둘러메고 메모지만 챙기면 될 듯 싶은데 막상 기행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분주해 진다. 더구나 기행하고자 하는 곳이 청정도량일 산사이기 때문에 더하다.


그래서 산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행에 앞서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르신인 석주스님을 찾아뵈었다. 딱히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거다"라는 식의 문답은 없었지만 그냥 뵙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기행에 앞선 마음다짐에 좋을듯 싶었기 때문이다.

a 세수 95세인 석주 큰스님이 방하착을 써 주셨다.

세수 95세인 석주 큰스님이 방하착을 써 주셨다. ⓒ 임윤수

기행에 앞선 마음가짐에서 석주 큰스님께 "放下着(방하착)"이란 글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언젠가 불교관련 서적에서 방하착에 대한 내용이 가슴에 남아 있기에 정리해 본다.

처음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고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린 빈손으로 왔으며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을 한문으로는 '空手來空手去'라고 표현하고, 코쟁이들은'Naked we come into this world and naked we should go'라고 표현을 하지만 속뜻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a 연세에 비해 너무 힘있게 글을 쓰고 계신다. 放, 놓으라고 하신다

연세에 비해 너무 힘있게 글을 쓰고 계신다. 放, 놓으라고 하신다 ⓒ 임윤수

그러나 우린 대부분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본래는 비었던 손을 가득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네 인생 본연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없이 내 것을 늘려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닥치는 대로 붙잡는 일인 것이다.

돈을 붙잡으려 발버둥치고 명예와 지위 그리고 권력과 지식을 탐욕하고 이성과 학력은 물론 배경을 붙잡으려 애쓴다. 그렇듯 유형무형의 모든 것들을 무한히 붙잡으며 이 한 세상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 듯 하다.


a 아래로, 저 아래로 버리라고 하신다.

아래로, 저 아래로 버리라고 하신다. ⓒ 임윤수

그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무한히 붙잡는 삶!
붙잡음으로 인해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삶!!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고 갈구하려고 하는 '잡음' 그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버리고자 갈망하는 괴로움(苦)이 시작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붙잡고자 하지만 잡히지 않을 때 그 괴로움이란 큰 힘으로 우리의 앞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이미 잡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때 우린 괴로움과 한바탕 전쟁이라도 벌여야 한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그 무엇이든.


a 집착을 버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집착을 버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 임윤수

우리의 욕망을 가득 채워 줄만큼 무한히 잡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우린 너무도 모르고 있다. '잡음'으로 인해 행복하고자 한다면 그 행복은 절대 이룰 수 없음이 진리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유하게 되는 많은 것들은 인연 따라 잠시 나에게 온 것뿐이지 그 어디에도 내 것이란 것은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연 따라 잠시 온 것을 '내 것'이라 하여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바로 '내 것'이라고 꽉 붙잡으려는 그 속에서, 그 我相속에서 괴로움은 시작된다.

'잡음'을 통하여 내 것을 늘림으로 해서는 결코 행복은 물론 참 자유와 진리도 구할 수는 없다. 도리어 그동안 내가 얻고자 했던, 붙잡고자 했던 그것을 놓음(放下着)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a 글을 쓴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글을 쓴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 임윤수

무소유가 전체를 소유하는 것이라 했다.
놓음이 전체를 붙잡는 것이라 했다.
크게 놓아야 크게 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나','내 것'이라는 울타리를 놓아버려야 진정 내면의 밝은 '참 나'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놓음!
방하착(放下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삶과 어쩌면 정면으로 배치되는 삶이기에 힘들고 어려운 듯 느껴진다. 그렇기에 선입견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放下着'그 속에 행복의 모든 체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a 큰스님은 금정산인 이라고 기록하였다. 금정산은 범어사가 있는 부산의 산 이름이다.

큰스님은 금정산인 이라고 기록하였다. 금정산은 범어사가 있는 부산의 산 이름이다. ⓒ 임윤수

放은 '놓는다'는 뜻이며 着은 '집착','걸림'을 의미한다. 즉 본래 空(비어있음)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집착하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특히 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나','내 것'에만 끄달려 이를 붙잡으려하는 어리석은 我執을 놓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下라는 것은 '아래'라는 의미이지만 그 아래는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그 아래에 있는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참 마음, 한마음, 본래면목, 참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끄달림, 걸림, 집착을 용광로와 같은 한마음 내 안 참 나의 자리에 놓으라는 것이다.

a 방하착을 다 쓰신 스님이 글씨를 바라보고 계신다.

방하착을 다 쓰신 스님이 글씨를 바라보고 계신다. ⓒ 임윤수

방하착, 방하착 하니 많은 의심을 가질 지도 모른다.
"다 놓고 나면 어떻게 하지? "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저 돌처럼 바위처럼 가만히 있어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방하착'이란 着心을 놓으라는 것이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저 멍 하니 바보처럼 세상을 소극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놓으라는 것이다.

세상은 마땅히 적극적으로 살아갈 일이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살아갈 일이다. 다만 마음이 한 쪽에 머물러 착(着)을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게으르게 사는 것은 복을 까먹는 일 일 뿐 일거다. 적극적으로 복을 짓고 순간 순간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밝은 깨침의 마음으로 늘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a "방하착" 산사기행을 시작하는 마음 가짐으로 간작히려 한다. 스님이 시대의 모든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법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방하착" 산사기행을 시작하는 마음 가짐으로 간작히려 한다. 스님이 시대의 모든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법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임윤수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돈은 벌되 돈에 대한 '집착'으로 벌지는 말라는 것일 게다. 돈 그 자체에 마음이 머물면 많이 벌게 될 땐 즐겁겠지만, 돈을 벌지 못하면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많이 벌어야 한다는 집착을 놓았기에 적게 벌어도 여여(如如)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많은 돈을 벌었어도 다른 이를 위해 베풀 때 아깝다는 마음없이 베풀 수 있게 될 것이다. 돈에 대해 집착이 없으니 돈에 머물지 않는 참 마음의 베품이 되는 것이다.

방하착은 사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사람을 위해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그 사람이 잘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랑이 아닌 '집착'이라면, 나와 함께 해서 괴롭더라도 붙잡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는 이유로 그를 증오하고 괴롭히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바로 방하착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이다.

'내 여자','내 남자'라고 하는 것도 다른 '아상'일 뿐이다. 상대방이 '내 것'이라는 생각, 나 좋은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아집'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맑고 순수하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렇듯 집착을 놓아버리는 일이야말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욕망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다.

방하착…
놓고 가는 이는 아름답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며,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如如하다. 일을 하며 '내가 한다'는 생각이 끼어 들면 위험하다. 그렇기에 그 마음 '내가 한다'고 하는 그 아상, 아집을 놓고 하라는 것이다.

'방하착'엔 내가 한다는 마음이 없기에 설령 괴로운 경계가 닥치더라도 괴로움의 주체가 없기에 하나도 괴로울 게 없다. 내가 괴로워야 하는데 아상을 놓았으니 괴롭지 않은 것이다. 아니 괴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다만 '괴로움'이란 현상만 있을 뿐 내가 괴롭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나를 놓고 나면 이렇게 자유롭다.

방하착!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석주 큰스님의 법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 방하착 마음으로 산사기행을 시작한다. 둘러멘 걸망에 탁발을 하듯 모아온 산사 이야기를 하나 하나 풀어놓을 때 '방하착' 의 마음으로 보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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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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