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벌에 쏘였던 그 친구가 그립다

벌 한 통 주으려다 벌에 쏘이고 감나무서 떨어졌던 승호

등록 2003.06.08 01:00수정 2003.06.0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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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인 것을 따끔하다고 표현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맙시다. 남양주 월문리에서0607 ⓒ 김규환


벌에 쏘여 죽을 뻔한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내가 한 번은 친구가 당한 일이다. 친구가 쏘였을 때 40여 방 쏘였지만 그 때는 말짱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 때 120방 넘게 쏘여 일주일 간 바깥출입을 못했다. 내가 당한 일은 버찌가 한창 익던 철이니 아직 이르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 직장 생활하다 내려온 친구와 학교 다니던 나는 군대 가려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릴 적 이름이 성호였던 승호는 그 때도 여전히 집에서 성호라 불렸다. 집안 일을 중심으로 일을 거들던 친구와는 달리 나는 근 20여 일을 이 집 저 집 다니며 모를 지게로 져 날라 논에 고루 던져주는 모쟁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나라도 품앗이를 해야 우리 집 모내기를 할 수 있었기에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모쟁이가 얼마나 힘들면 어른들이 우스개 소리로 ‘장가가기 글렀다’고 놀리던 고된 일이다.

이래저래 친구와 나는 바빠서 막걸리 한 잔 나눈 기억이 없다. 그래서 ‘술이나 한 잔 마시자’며 꼬드긴 것도 나였다. 모내기가 끝나갈 무렵 대낮이었다. 일을 나가지 않아도 될 즈음 친구를 불러내 담배와 술 파는 옆 동네 학교마을 점방을 향해 걸어갔다. 저 멀리 아직 모내기가 끝나지 않은 논에서 어머니들 열댓 명 모여 일을 하고 있다.

학교가 있던 곳도 같은 마을이지만 나름대로 널찍한 논들이 펼쳐 있고 직선거리로는 800여 미터가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구불구불하기가 양장굴곡(羊腸屈曲)에 버금 갈 정도로 심하여 경운기도 굽은 길 두어 군데서는 몇 차례 씨름을 하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던 신작로가 이 길이다.

이렇게 까지 된 데는 옛 길을 따라 양쪽을 조금 씩 떼 내서 넓혔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2km나 되는 먼 길로 둔갑하여 예전보다 외려 더 먼길을 만들었으므로 여름 한 철 빼고는 가로질러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길이었다.


그래도 대체로 그 길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지형은 평지에 가깝기는 하지만 오히려 돌부리에 체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갈 수도 없는 험한 길이다. 논과 길의 구분이 거의 없으니 고무신 신고 가지 않으면 물에 첨벙첨벙 빠져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화를 매일 적시다 시피 한 곳이다.

a 감꽃을 감똘개라 했던 것 같습니다. 감나무는 성한 가지도 잘 부러지니 조심하세요.

감꽃을 감똘개라 했던 것 같습니다. 감나무는 성한 가지도 잘 부러지니 조심하세요. ⓒ 김규환


우린 그런 길을 까만 고무신이 아닌 아버지의 흰 고무신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오후 3시쯤 발을 질질 끌고 학교 쪽으로 갔다. 마을 입구 80여 미터 근방에 다다랐을 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똑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응? 정국이 수상하더니 혹 전쟁 일어난 것 아닌가?’

늘상 백아산 (*)‘몰랭이’에 낙하산이 뜨고 내리는 걸 보아왔던 우리는 분명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야, 뭔소리냐?”
“가만 있어 봐봐”
“...”
“...”
“들리냐?”
“응~”
“분명히 뭔가 ‘웅~웅~” 하는데?”
“글게 말이다. 멀리서 비행기 가는 소리 같기도 한데.”
“백아산 상봉인가?” “
“(*)‘감낭구’ 쪽에서 나는 소리 같다.”
“그래! 맞다. 감나무에서 난다!”

a 12미터는 족히 되었으니 얼마나 높았겠습니까? 이 정도는 되는 큰 나무였습니다. 밤꽃 피면 벌이 참 좋아합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12미터는 족히 되었으니 얼마나 높았겠습니까? 이 정도는 되는 큰 나무였습니다. 밤꽃 피면 벌이 참 좋아합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 김규환


차츰 다가가 보니 학교 뒤쪽 담벼락에 심어져 12m 쯤 되는 거목(巨木)이 된 해섭이네 감나무에 벌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벌떼가 나무 꼭대기에 붙어 나풀거리고 있었다.

“야, 규환아! 벌인갑다.”
“뭐야 벌이라구? 벌 한 통이 얼만디...”
“집 나온 벌인께 주워 가는 사람이 임자 아니냐?”
“그니까 어쩌자고야?”
“양지 우리 마을까지 가믄 (*)‘폴새’ 도망가불 것인께 새터마을 성모씨 댁에 가서 ‘멍덕’을 갖고오자.”
“알았어. 그렇게 하자.”

둘다 나무 타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인지라 벌을 쓸어 담을 도구만 마련되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집에 가보니 마침 아무도 없었다. 어른들이 하던 대로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이다. 둘은 서둘러 마성모 씨 댁으로 갔다. 뒤뜰까지 뒤져도 (*)‘멍덕’은 보이지 않고 확독 근처 기둥에 여자들이 멋 부리고 살갗 타는 걸 막기 위해 쓰고 다니는 둥그렇고 챙이 넓은 붉은 모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야, 안되겄다야~. 이거라도 갖고 가자.”
“글자.”

집 나온 벌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언제고 다시 자리를 옮겨 지네들 둥지 틀기 적당한 곳으로 이동할지 모르니 한시도 늦출 수 없어 급히 가서 달래 주어야 한다.

턱 끈이 있는 모자를 챙기고 뛰어 가면서 쑥쑥 자란 쑥을 두어 줌 길게 꺾다시피 뜯어서 도착해보니 아직 그곳에 있었다.

a 개망초에도 벌이 꿀을 따러 나왔습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개망초에도 벌이 꿀을 따러 나왔습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 김규환


급한 가운데 차근차근 준비했다. 담배에 멍덕으로 쓸 모자 그리고 쑥. 먼저 내가 올라가기로 했다. 10미터 이상 꼭대기에 한 바가지 이상이나 되는 벌이 덩캐덩캐 몰려 있었다. ‘그래 요것만 쓸어 담으면 몇 년 간 로얄제리 부터 꿀은 내 것이란 말야~’ 즐거운 상상을 하며 당시 한 갑에 100원 하던 ‘환희’(영만이라는 친구와 서울서 한 갑을 저녁 내 같이 나눠 피고 그 다음날 목이 막혀 어쩔 줄 몰라했던 대단한 담배) 한 까치를 입에 물고 뻐끔뻐끔 연기를 내가며 어른들이 하던 대로 “음음음음~” “음음음음~” 굵고 낮은 소리를 내가며 쑥으로 살살 쓸어 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띠얏!”
“왜?”
“벌이 쏴부렀어야~”
“몇 마리나?”
“서너 마리 되는 것 같애. 후~후~ 벌써 얼럴하다.”
“글면 내롸라 내가 올라 갈랑게.”
“잠깐 만 잘 걸쳐놓고 내려갈게~”

벌 한 통 옆에서 나눈 나직하고 조용했다. 내가 내려오고 그 친구가 올라갔다. 벌에 쏘이자 다시 친구가 내려왔다. 감나무를 오르락내리락 번갈아 가며 쏘이기를 반복했다.

a 이 꽃은 꿀풀인데 벌보다도 시골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꽃을 쏘옥 빼서 쪽 빨아 먹으면 달큼 합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이 꽃은 꿀풀인데 벌보다도 시골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꽃을 쏘옥 빼서 쪽 빨아 먹으면 달큼 합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 ⓒ 김규환


담배를 물고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씁쓸한 ‘환희’도 떨어지자 덩어리에 끼지 못한 벌이 몸 주위를 더 자주 그것도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뱅뱅 돌았다.

내가 세 번 째 올라갔을 때 친구에게 다짐을 했다.

“승호야! 이번엔 반드시 여왕벌을 그 곳에 쓸어 담아올게. 알았냐? 이 성아가 하는 걸 잘 봐라 알았지?”
“알았어야. 조심히 올라갔다와~.”

그 전까지는 한 무더기였던 벌이 모자에 쓸어 담느라 쑥으로 몇 번을 건드려서 그런지 주먹만한 분량의 무리가 따로 떨어져서 길게 대롱대롱 매달려 언제고 떨어져 일을 칠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때였다. 서른 마리는 족히 되는 벌이 툭 떨어져 내 온 몸을 파고들었다. 다시 모자를 걸쳐놓고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야아~ 승호야! 도저히 안되겠다. 포기하고 그냥 가자. 이러다가 큰 일 나겠다. 어쩔래?”
“가만 있어봐야.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갔다 올게.”
“적당히 하고 가자. 도저히 못 참겠다니까...”
“알았어. 딱 한 번 만이다. 알았지?”

a 벌이 한 덩어리가 떨어졌으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벌에 쏘이면 일단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기는 하지만 그게 말 같이 되어야 말이죠. 일벌은 쏘고나면 침과 똥구녁을 내주고 죽습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에서

벌이 한 덩어리가 떨어졌으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벌에 쏘이면 일단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기는 하지만 그게 말 같이 되어야 말이죠. 일벌은 쏘고나면 침과 똥구녁을 내주고 죽습니다. 0607 남양주 월문리에서 ⓒ 김규환


친구도 세 번 째 올라갔다. 내 머리와 얼굴에 있는 침을 빼느라 1분 여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 때였다.

“엄마아~”

갑자기 엄마 하면서 친구가 감나무에서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위를 쳐다보니 친구는 감나무 위에 없었다. 거의 바닥 가까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어도 몸은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덜 다친 것은 감나무 줄기와 가지에 몸이 몇 번이고 부딪히면서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연거푸 엄마를 불러가며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벌에 쏘인 병아리 마냥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사태가 사태인지라 얼른 달려가 몸을 끌어 가 논물 대는 (*)‘깨골창’에 머리를 쳐 박았다. 주위에 있는 작은 냇가에 있는 나뭇가지며 뿌리 채 뽑힌 온갖 풀과 잡것을 친구 머리와 얼굴 목덜미에 대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후려 갈겨대고 물을 퍼부었다.

“푸~푸!” 하는 친구의 지친 소리에 잠시 멈춰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서 “엄마아~” 하는 소리에 놀란 승호 어머니가 모내기 품앗이 갔다가 신발도 신지 않고 논두렁길로 뛰어 오고 있었다.

대롱대롱 여왕벌 근처에 매달려 있던 두 그릇 분량의 벌 덩어리가 한꺼번에 툭 소리도 없이 친구 몸으로 떨어져 옷 속이고 머리통이고 간에 다니면서 쏘아대므로 엄마 소리를 지르고 밑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빼 준 벌침만 해도 100개나 되었다. 이렇게 벌에 쏘인 기억은 엄청나다. 그날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지 못했다. 우리가 돌아간 후 승호 아버지께서 오셔서 벌을 쓸어 담아가 친구 집에서 키웠으나 그 지역이 ‘한봉(韓蜂)보호지구’라 2달도 안되어 동네 사람의 손에 무참히 죽었다. 그 호된 경험을 한 우린 둘에게 연말에 꿀 두 되 씩 돌리는 걸로 끝났다.

a 아직도 이렇게 한봉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양봉업자님들은 아무 데나 마구 이동을 하셔서는 안되니 주의 하십시오. 남양주 월문리는 덕소 근처에 있습니다. 0607

아직도 이렇게 한봉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양봉업자님들은 아무 데나 마구 이동을 하셔서는 안되니 주의 하십시오. 남양주 월문리는 덕소 근처에 있습니다. 0607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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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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