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먼저 떠난 제주 협재해수욕장

발을 담가 그 알싸함을 맛보고

등록 2003.06.09 14:54수정 2003.06.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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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는, 코발트색 여름 바다가 6월을 부른다. 아직 해수욕장을 찾기엔 이른 계절이지만, 30도를 웃도는 한낮의 더위는 많은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만든다. 이럴 때 힘든 일상을 탈피하여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떠나보자.

a 양말을 벗고 백사장을 걸어볼까?

양말을 벗고 백사장을 걸어볼까? ⓒ 김강임

조개껍질이 많이 섞여 유난히 흰 하얀 모래, 얕은 수심, 금방 손에 잡힐 듯 들여다 보이는 섬 속의 섬 '비양도'가 한 눈에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이 바다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지평선과 맞닿아 사방이 모두 바다처럼 보인다.


물이 빠져 나가면서 협재해수욕장의 백사장에는 남들보다 빨리 여름 사냥에 나선 성질 급한 사람들이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금방이라도 물 속에서 노니는 코생이와 어랭이를 손에 잡아 올릴 것 같은, 협재해수욕장은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이 떠나온 휴식처였다. 한낮의 더위와 아스팔트의 열기.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심의 생활. 생각만 해도 지겨운 일상들.

그래서 6월의 해수욕장은 알맞은 태양열과 여유로운 바다. 진한 추억을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백사장 한가운데 서서 두 팔을 벌리면 금방이라도 하늘과 맞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 미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못한 조개껍데기를 주워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바닷가의 낭만을 얘기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지난 여름의 아름다운 추억까지도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는 6월의 바다는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다.

8월의 바다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북적대는 인파로 연상한다면, 6월의 바다는 얼마나 평화롭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협재해수욕장에서 정면으로 달려가면 2.5km의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바다 위에 떠 있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바다를 가로질러 첨벙거리며 달려가면 금방 달려갈 것 같은 비양도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그 경치가 뛰어나다.

a 우렁이와 백마

우렁이와 백마 ⓒ 김강임

터줏대감처럼 하얀 모래를 지키고 서 있는 누렁이와 백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하얀 모래 위에 서 있는 백마를 보니, 옛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바다 저 건너에서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만 같았던 백마 탄 왕자님은 내 마음속에 간직한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누렁이와 백마의 편안한(?) 등을 바라보니 어린시절 퇴근을 해서 어깨 위에 무등을 태워주시던 아버지의 생각에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 무등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퇴근무렵 날마다 골목길 모퉁에서서 막무가내 기다렸던 아버지의 모습도 6월의 바다에서 느낄 수 있었다.

a 신혼부부의 추억담기

신혼부부의 추억담기 ⓒ 김강임

이 말을 타고 협재해수욕장을 한바퀴 돌아보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욕망의 바다를 돌아보는 순간은 아닐는지?
4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보채기 시작한다. 아마 말을 태워달라고 때를 부리나 보다. 무슨 일인지 아빠는 계속 거절을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다.


또 한 켠에는 벌써 말의 등위에 올라선 신혼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만한 추억담기가 또 어디 있으랴마는 이들이 오늘만큼만 영원히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 백사장에 펼쳐진 텐트와 파라솔

백사장에 펼쳐진 텐트와 파라솔 ⓒ 김강임

넓은 백사장에 지어진 텐트 속에는 벌써 누군가가 보금자리를 차렸다. 아직 이른 계절 탓인지, 왠지 어색해 보이지만 그 텐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모든 것을 가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고, 한 가족이라면 그 기쁨은 배가되겠거늘.

주인 없는 비치 파라솔도 백사장의 단골 손님이다. 그 주인은 벌써 바다 한가운데서 뛰어들어 바다를 부르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도 없는 비치 파라솔의 모습을 보니 언뜻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벌써 어린아이는 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바다 한가운데로 달려가느라 바쁘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교정에서의 경쟁, 줄서기,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얼마나 기분좋은 날인가? 어른들 역시 바닷가에서면 모두가 순진해진다. 세상 걱정 한시름 다 풀어놓고 잠시라도 느껴보는 이 알싸함의 기억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a 발을 담가  그 알싸함을 맛보고

발을 담가 그 알싸함을 맛보고 ⓒ 김강임

협재해수욕장은 물이 맑기로 소문이 나 있으며, 소나무 숲과 파란 잔디가 잘 어우러져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야영장소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또한 수심이 얕고 비양도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해 질 무렵 협재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에 서 있으면 자연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협재해수욕장은 제주공항- 서쪽 12번 국도(일주도로)- 애월- 한림- 한림공원 앞이며, 공항에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또 해수욕장 주변에는 곽지.금릉해수욕장이 있으며, 한림공원과 금릉 식물원 등의 주변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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