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경찰은 거짓진술을 하고
최우수 검사는 불법수사를 했다

[유죄와 무죄 사이 2] 한 경찰서장이 당한 인권유린

등록 2003.06.16 11:59수정 2003.06.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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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사건에 대한 심층취재 <유죄와 무죄 사이>를 연재중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이와같은 인권유린 사건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입니다. - 편집자 주


지난 13일 2년여의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받는 전 옥천경찰서장이었던 박용운씨.
지난 13일 2년여의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선고받는 전 옥천경찰서장이었던 박용운씨.오마이뉴스 심규상
두 '전국 최우수' 수사경찰과 수사검사에 의해 한 사람의 인권이 무자비하게 유린됐다.

오락실 단속실적에서 '전국 최우수' 상을 받았던 구 모 경장은 검찰수사에서 거짓진술을 해 무고한 사람을 옥살이 시켰다.

오락실 관련 뇌물사건을 수사해 '전국 최우수 검사' 상을 받았던 한 모 검사는 대법원으로부터 "피의자 신문조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법정 피의자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협박"했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불법수사를 해 한 사람을 구속시켰다.

그 두 '전국 최우수'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직 경찰서장'이었다.

"대법원의 원심파기 이후 오랜 기간 심리를 벌였지만 박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원심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지난 6월12일 오후 2시 대전고법 316호실.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자가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의 굳은 얼굴에 순간 환한 웃음이 깃들었다. 따지고 보면 연행된 이후 2년 만에 되찾은 표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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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같은 시간 박 전 서장의 옆에 서서 선고를 기다리던, 한때의 '최우수 경찰'이었던 구 모씨(박씨의 부하직원)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재판부는 박 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한 반면 그의 부하였던 구씨에게는 원심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을 깨고 275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법정 구속했다.

법정을 빠져 나온 직후 박 씨는 몰려든 취재기자들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또박또박 힘주어 답했다.


"(무죄판결은)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 이 사건은 고의적으로 (검찰이) 생사람을 때려 잡은 희대의 범죄행위다. … 구○○과 검사 등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모든 법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

악몽 같았던 지난 2년여 동안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 때문이었을까.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말하는 박 씨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한 경찰과 한 검사의 첫 만남

박씨는 가해자들 중 핵심 당사자는 이날 구속된 전 부하 구 씨와 사건 담당 검사인 한 모 검사라고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전국 최우수'라는 명예를 한때 간직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오락실 관련 '전국 최우수 단속실적'(1999년 3/4분기)으로 특진한 경찰이고, 또 한 사람은 박 씨 등 총경급 2명을 구속시킨 공로로 '전국 최우수상'(2001년)을 받은 검사다.

그렇다면 박씨가 두 사람을 '희대의 범죄자'로 지목하고 있는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국 최우수 경찰'은 법정에서 거짓증언을 하고, '전국 최우수 검찰'은 불법수사를 해서 박씨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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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경찰' 검찰의 협박에 거짓진술

공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구 경장과 한 검사의 첫 만남은 200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전3청사 청사경비대에 근무 중이던 구씨는 대전검찰청 한 검사에 의해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강제 연행된다.

구씨의 법정 진술에 따르면 한 검사는 구씨가 평소 말하고 다니던 오락실 관련 검찰 유착설에 대해 검찰관 비리자 명단을 추궁, 불러주자 "경찰간부도 대라"고 집중 추궁했다. 구씨는 협박에 못 이겨 아는 경찰 간부 이름(10-15명)을 허위로 적어 주었다.

박씨의 이름이 거론된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구씨는 불거진 2000만원과 관련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씨의 처로부터 주식투자를 위해 빌린 후 갚은 돈이라고 진술했다.

한 검사는 구 씨를 이틀만에 무혐의로 풀어주면서 "대한민국 검사의 명예를 걸고 사건화 하지 않는다"며 "일체 (조사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검사는 그로부터 4개월 뒤인 2001년 3월 구 씨를 또다시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연행, 3일간의 밤샘 조사 끝에 총 815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시켰다.

두 사람과 박 씨와의 악연은 여기서 시작된다. 앞서 연행당시 구씨 스스로 빌린 후 갚은 돈이라고 진술했던 2000만원이 다시 박 전 서장에게 전달된 '뇌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구씨는 후일 공판과정(1심 2회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전면 부인하며 "박용운에게 뇌물을 준 적이 없고 이는 빌린 돈을 갚은 것이 전부이며 모든 조서는 검찰이 (회유 협박에 의해) 임의로 꾸며 만든 것"이라고 부인했다.

구씨는 또 자신의 '녹취록'에서 허위 진술 배경과 관련 "당시 검찰이 휴대폰에 의한 여자관계 추궁과 3개월 내 집행유예로 내보내 준다는 것, 사회 나가면 검사가 취직시켜 준다는 것 등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 또한 파기환송한 판결문을 통해 '검찰은 처음에는 구○○으로 하여금 2000만원을 빌린 후 갚은 것이라고 진술하게 하였다가 갚은 것에 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차용금이 아닌 뇌물로 주었던 것을 반환 받은 것이라고 진술하게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판시 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법정 최후진술문을 통해 "구씨가 검찰의 회유, 협박, 강압을 받아 자포자기 상태에서 허위진술조서에 무인,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명백한 '차용금에 대한 변제금을 뇌물'이라고 꾸민 조서에 협조하고 1심 제1회 법정에서까지 짐짓 시인한데 대해서는 인면수심의 행태이자 스스로 도덕과 양심을 가진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라고 비난했다.

대법원 "주임검사가 피의자 신문조서 허위로 작성"

구씨에 의해 '뇌물'이라는 진술을 얻어낸 한 검사는 즉각 박씨의 연행에 나선다.

구씨가 연행된 후 10여일 후인 2001년 4월 7일 당시 옥천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박씨는 '토요 참모회의'를 주재하다 집무실로 난입한 검찰 직원에 의해 강제연행 당한다.

박씨는 최후진술문을 통해 '한 검사 등 세 검사가 번갈아 드나들며 "죽고 싶으냐?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특수부다"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갖은 협박과 모욕적 언행을 한시간 이상 계속했고 특히 한 검사는 박씨가 "억울하다"고 항변하자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기관통보하겠다, 다른 직원들을 위해 혼자 덮어써라"는 등 회유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후 구씨 건과 관련 2000만원에 대한 차용증(대차관계의 증거)이 드러나 무죄가 될 것이 염려되자 뒤늦게 또 다른 사건을 만든다. 집행유예 중이던 이모씨(박씨의 부하직원)를 끌어 들여 박씨가 "오락실을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씨로 부터 16회에 걸쳐 1150만원을 받았다고 꾸민 것.

박씨는 이와 관련 최후진술문을 통해 "한 검사에게 이씨와 대질신문을 요구하자 검사실로 이씨를 불러 '모두 사실이지요'라고 묻고 '예'라고 답변하자 불과 몇 초만에 내보냈다"며 "이는 재판부를 속이기 위한 형식적, 허구적 대질조사"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또한 판결문을 통해 "적어도 이 부분 대질 조사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검사 작성의 허위문서로 보인다"고 판시 했다. 대법원은 또 이씨의 진술이 "원하지 않는 부서로 사무분장한 일로 박용운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허위진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등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검사의 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검사는 1심 제2차 공판기일 하루 전인 2001년 5월, 구씨와 구씨의 동생을 검사실로 불러 합석시킨 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협박, 회유한다.

잠시 당시 대화내용을 담은 녹취록 중 한 대목을 들여다 보자.

한 검사 "…(중략)… (2000만원은 빌린 돈 갚은 게) 맞다. 변제해 걸로 빌린 거 갚은 것 맞는데, (그렇게) 진술하면 죽일 놈 된다. 진짜…."

"…(중략)… 채권채무관계가 맞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참 훌륭하다고 (할 것 같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박용운 씨 (죄)가 빠지고 바꿔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진술하면 정말 구○○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돼. 진짜 나는 감당 못해. 그러면 (그렇게 진술을 뒤집으면) ○○○(판사)이라는 사람이 진짜 양형이 센 사람이야. (중형을 선고 할 것이라는 의미)"


즉 논란이 된 2000만원과 관련 담당 검사 스스로 '뇌물'이 아닌 '빌린 후 갚은 돈'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정에서 진술을 바꾸지 못하도록 회유, 협박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녹취록은 수사검사가 구○○으로 하여금 법정에서 자백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회유 내지 협박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이는 수사검사가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하도록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는 구○○의 주장이 진실한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고 판시 했다.

박씨는 한 검사와 관련 "무고한 생사람을 범법자로 만들어 참혹한 옥고를 치르게 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시킨 살인적 범죄자"라고 맹비난 했다.

거짓 진술을 한 전국최우수 경찰과 사건 조작을 한 전국 최우수 검사. 두 '전국 최우수'에 의해 한 경찰서장의 인권은 무참히 유린되었다.

그리고 이 인권유린 사건을 지휘했던 간부검사들도 여전히 현직에 있다. 그러나 검찰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인권유린이 다시는 있어서도 안된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음에 '유죄와 무죄사이' 세 번째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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