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서장이 이렇게 당하다니
"권력에 도취한 검찰이 부른 참화"

[심층취재-유죄와 무죄 사이] 뇌물혐의 옥살이한 서장 "무죄"

등록 2003.06.13 13:02수정 2003.06.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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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범죄자가 됐다" 사건 당시 옥천경찰서장이었던 박용운씨.
"나는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범죄자가 됐다" 사건 당시 옥천경찰서장이었던 박용운씨.오마이뉴스 심규상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뇌물수수자가 되어 옥살이를 했던 한 경찰서장이 2년여의 법쟁투쟁 끝에 오늘(6월 13일) 오후 2시 대전고법에서 사실상의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조병현 부장판사)는 316호 법정에서 약 2백여명의 시민과 30여명의 언론인이 지켜본 가운데 "원심(1,2심 유죄)을 파기한 대법원의 무죄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서 "박용운 전 서장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원심파기 이후 오랜 기간 조사를 심리를 벌였지만 박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원심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순간 법정에서는 옥천에서 온 박 서장 지인 등 50여명이 일제히 큰 박수를 터트렸다.

관련 검찰은 이번 고법의 판결에 불복, 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한번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고법에 돌려보냈던 만큼 이날 판결이 사실상의 최종판결인 셈이다.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은 지난 4월 23일 대전 고등법원에서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로 검찰을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이 나라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이 고의적으로 사실을 조작하여 한 무고한 국민에게 죄를 덮어씌워 인권을 유린하고 형사처벌을 가한 희대의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행위입니다. 권력에 도취한 일부 검사들이 부른 필연적인 참화입니다."


박용운씨(51세)의 최후진술 서두는 현직 경찰서장이 검찰의 힘 앞에 어떻게 당했는지가 절절히 나타나있었다.

"저는 충북 옥천 지방에 경찰서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2001년 4월 7일 갑자기 집무실로 들이닥친 대전 검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가서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며 진실확인과 증거조사를 줄기차게 호소하였으나, 결정적 대질조사마저 거부당한 채 구속 기소되어 8개월 동안 참혹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형사소송법 상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연행 당하고 검찰에 감금당했습니다.

검찰은 구속되기 전 3일 동안 변호사의 접견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이는 엄연한 헌법위반이고 형사소송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불법 수사였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도 검찰의 입맛에 맞게 허위로 작성되었습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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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이 검찰로부터 이러한 강압-불법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선뜻 믿기지 않은 일이다. 일반인도 아닌 현직 경찰서장이 어떻게 그런 인권유린을 검찰로부터 당할 수 있었을까?

박용운 전 서장은 최후진술 마지막을 "이 사건의 진실과 정의가 신성한 재판부에 의해 파헤쳐져 더 이상 본 피고인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양산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맺었다.

그로부터 50여일 후인 오늘(6월13일) 오후 2시 대전고법 316호에서 박용운 전 경찰서장은 '사실상의 최종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 판결은 곧 현직 경찰서장을 체포해 그에게 형사처벌을 가했던 검사들에게 "당신들의 수사는 불법이었다"는 선언을 재판부가 한 것이다. 검찰은 왜 이 21세기 대명천지에 현직 경찰서장을 상대로 그런 무리한 수사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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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법정투쟁 끝에 최종무죄

박 전 서장의 혐의는 충남지방경찰청 방법과장 재직시 전 부하직원이었던 구 아무개씨, 이 아무개씨로부터 '오락실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받고 35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에서는 검찰이 제기한 박씨의 모든 혐의가 그대로 인정돼, 박 전 서장은 1심에서 징역 5년과 추징금 3,450만원, 2심에서 징역2년 6월(집행유예 4년)과 추징금 3,4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하지만 박 전 서장은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고의적으로 범죄행위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즉시 상고해 2002년 5월 10일 대법원으로부터 원심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냈고, 1년 1개월여만에 열린 이번 결심 공판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 것이다.

이번 무죄 판결은 작년 5월 대법원이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박 전 서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관 전원일치로 무죄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고법에 사건을 돌려보내면서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뇌물수수'에서 무죄선고 받기까지
박용운 조작사건 사건일지

2001년
4월 7일 대전검찰청, 옥천경찰서장 집무실에서 불법 강제연행
4월 9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죄'로 구속 (충남지방경찰청 방범과장 재직시 전 부하직원으로부터 '오락실 잘 봐 달라'청탁 받고 3450만원 뇌물수수혐의)
8월 1일 대전지법 징역 5년 및 추징금 3450만원 선고
11월 30일 대전고법 징역 2년 6월, 징행유예 4년 및 추징금 3450만원 선고, 석방

2002년
5월 10일 대법원 3부 전부무죄 취지로 원심 파기환송 판결

2003년
6월 13일 대전고법 형사1부 무죄확정판결선고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심파기결정의 이유로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폭언과 회유, 협박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러한 피고인의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대법원은 "(일부) 피의자신문조서가 실제로 대질 신문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대질신문이 이루어 진 것처럼 허위작성 되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당시 박 전 서장은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를 통해 '검찰이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짜맞추기식 수사로 범죄사실을 조작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대법원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대법원 재판부는 "제출된 녹취록에는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지 못하도록 회유 협박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는 검찰의 강압수사 사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녹취록에는 검찰에서 박 전 서장에게 뇌물을 상납했다고 자백한 부하직원 구씨에게 검찰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지 않도록 가족을 동원해 회유, 협박한 내용 등이 담겨있다.

대전지검은 왜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나

결국 이 사건은 검찰이 박 전 서장과 부하직원 구씨와의 채무관계를 뇌물수수로 둔갑시키고, 집행유예 중이던 부하직원 이씨를 회유하여 뇌물공여사실을 조작해 무고한 현직 경찰서장을 형사 처벌한 사건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그렇게 무리한 수사를 했을까? 박용운 전 서장은 자신이 당시 나돌았던 검찰비리설을 덮기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박 전 서장은 "당시 지역 언론들에는 검·경 간부들의 오락실과의 비리 유착설이 보도되고 있었고, 2001년 3월 27일에는 일선 검사들의 비리 내용이 담긴 인터넷 투고문이 뿌려졌다"면서 "이에 여러 언론 매체가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자 자신들의 비리만 밝혀질 경우에 부담을 느낀 검찰이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자 경찰 고위직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무차별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해왔다.

오마이뉴스 심규상

검찰 관련자 문책 등 논란 일듯

박용운 전 서장은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1)강제연행 및 불법체포와 감금 2)수사과정에서의 강압수사와 허위문서 작성 3)피의자 신문조서 위조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으며 특히 4)변호인 접견 교통권마저 차단 당했다고 최후진술 등을 통해 주장해왔다.

박 전 서장은 "현직 경찰 서장의 경우가 이 정도인데 힘없는 일반 시민들은 과연 검찰로부터 피의자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번의 최종무죄 판결은 이러한 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관련 책임자 문책 논란과 함께 검찰개혁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조 4항에는 "누구든지 체포,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있지만, 박씨의 주장대로 검찰이 변호인 접견까지 차단했다면 일부 검찰의 수사관행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는 '2001년도 최우수 검사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주임검사뿐 아니라 사건을 지휘한 대전지검 간부 검사들도 모두 검찰 현직에 있어 책임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 대전지검 차장으로 이 사건을 총지휘했던 이 아무개 검사가 현재 법무부에서 검찰개혁을 총지휘하는 자리에 있다. 검찰개혁 필요성의 표본이 되어버린 이 사건을 그가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위기의 검찰, 다시 대법원으로?---황방열 기자

한편 검찰은 이번 대전고법의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한아무개 검사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금 전에 고법판결을 들었으나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검사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 6명 포함해 22명이 구속됐고 박용운 총경과 김 아무개 총경, 최 아무개 총경 등 3명에 대해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해 김 총경은 자백을 통해 유죄가 확정, 박 총경도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2심에서는 자백, 최 총경은 액수가 적어 경찰통보후 파면조치 됐다"며 "법원은 돈을 준 구 아무개씨가 수사과정에서는 자백했다가 재판에서 번복하고, 그 과정에서 잠을 안 재우고 수사했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진술의 신뢰성을 의심한 것 같은데 야간수사는 있었지만 잠을 안 재우고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주임검사 "박 총경 2심에서는 자백했었다"

한 검사는 또 "당시 조사상황을 녹화한 테이프 4개 등 추가자료를 대전고법에 제출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비리가 폭로될 것을 우려해 경찰에게 시선을 돌리기 위한 수사였다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당시에도 그런 음해가 있었으나 검찰 수석계장도 구속했었다"고 일축했다.

또 당시 대전지검 차장으로 이 사건을 총지휘했으며 현재 법무부에서 검찰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이 아무개 간부검사는 "특수부에서 상당히 사명감을 갖고 했고 잘된 사건으로 기억한다"면서 "왜 무죄판결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은 A가 B와 C에게 돈을 준 것인데 B는 유죄가 되고 C는 파기 환송된 것이기 때문에 무죄가 될 사건이 아니다"라며 "박 총경이 부인한다고 해 부인하는 내용 그대로 조서를 작성해 보냈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조사한 부분도 없다"고 말했다.


대전지검 송찬엽 특수부장은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인 만큼 아직 재판이 확정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송 부장은 "피고의 주장과 검찰의 주장과는 다를 수 있고 법원과 견해가 다른 만큼 대법원 판결을 받아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보고 있다.

유관석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돼 고법에서 무죄난 건이 다시 대법원으로 와도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재천 변호사도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무죄의 취지대로 고등법원이 증거판단과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무죄를 선고했다면 이 사건은 법률적으로 볼때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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