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직원들이 나타나야 비로소 노숙자들은 일어납니다.오마이뉴스 김영균
"경찰요? 경찰은 이 사람들을 어쩌지 못하죠. 이 사람들은 그냥 '노숙자'일 뿐이지 '범법자'는 아니거든요."
서울역 영업과에서 근무하는 장현문(46)씨는 3년째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노숙자들은 단지 '노숙'만 할 뿐 범법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었죠. 일단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따금씩 구청에서 봉고차를 타고 와서 노숙자들을 깨우죠. 만약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노숙자 관련 시설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대부분 거부하는 경우가 많죠. 이 때문에 구청직원들도 이발비나 목욕값만 조금 주고는 돌아갈 뿐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강제로 노숙자들을 통제해 보세요. 그러면 인권단체들이 몰려와서 항의합니다."
말하자면, 노숙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국가기관조차 어쩔 수 없다는 얘기죠. 당연한 얘깁니다. 노숙자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돼야 합니다. 국가가 이를 침해할 때, 인권단체들이 나서는 것도 당연한 이치지요.
그러나 저는 노숙자들을 만난 그날 내내 정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비록 노숙자라 할지라도 인권을 보장한다'는, 무슨 거창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듯하면서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무원인 경찰은 '인권 보장' 차원에서 이들을 못 본 체 지나치고, 또 다른 공무원인 구청직원들도 '인권 보장'을 명목으로 기껏 이발비, 목욕비를 던져 주고 갈 뿐입니다.
2003년 3월, 서울시가 발표한 노숙자 숫자는 모두 3062명이랍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표 주영수)가 지난 5월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01년 한 해 동안 서울지역에서 사망한 노숙자의 사망 당시 평균 연령은 48.3세였습니다. 국민 전체 평균인 66.3세보다 18세나 낮은 수치입니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지금 '나랏님'이 다스리는 왕조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구성원 서로에 대한 책임이 갈수록 커지는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죠. 노숙자 문제의 절반은 사회와 정부에 책임이 있습니다. 인권도 지키고 사회적 구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부는 과연 볼 수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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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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