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앞에 모여 삼 껍질 벗기던 날

70년대 삼 껍질 벗기고 말리는 시골 풍경

등록 2003.06.27 06:45수정 2003.06.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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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70년대는  아이들이 동네마다 더 많았다. 꼬마녀석들은 온데 간데 없고 어른들만 남아 있는 80년대 사진. 화순군과 인접한 보성군 사진.

70년대는 아이들이 동네마다 더 많았다. 꼬마녀석들은 온데 간데 없고 어른들만 남아 있는 80년대 사진. 화순군과 인접한 보성군 사진. ⓒ 허호행

인삼, 수삼, 산삼, 홍삼, 장뇌삼, 느삼과 삼베 짜는 대마 삼


‘삼’이라 부르는 식물이 여럿 있다. 인삼(人蔘)과 한 갈래인 수삼(水蔘), 한 뿌리에 수억 원 쳐주는 산삼(山蔘), 산삼 씨를 뿌려 사람 손으로 기른 장뇌삼(長腦蔘), 쪄서 말린 홍삼(紅蔘)이 매한가지다. 씁쓸하기가 한량없어 노란 뿌리를 푹푹 찧어 즙을 내서 소에게 먹이면 입맛이 확 돌아 쇠죽 잘 먹게 하는 '느삼' 또는 '개느삼'이 있다. 밭이고 담장이고 제멋대로 기어올라가 귀찮게 하는 가시 덕지덕지 붙어 살결을 괴롭히는 '환삼덩굴'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흔히 대마(大麻)라 부르는 삼이 있다.

경북 상주와 안동 등 중산간 지역에서 많이 나던 특산물 대마 대마초(大麻草)는 삼베를 짜는 데 쓰인다. 삼베는 ‘안동포’가 최고로 알려져 있지만 내 고향 화순군 백아산 너머 곡성군 석곡면의 ‘돌실나이’도 그에 못지 않다.

뽕나무 과(科)의 일년초로 중앙아시아 원산이며 줄기는 1~2.5m이며 곧게 자란다.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는 겹잎이며, 여름에 연녹색 꽃이 피어 초가을 들깨보다 조금 큰 열매를 맺는데 민간에서는 ‘이 씨를 넣어 오리에 소주를 부어 삶아 먹으면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애용해 왔다. 줄기 껍질은 삼베옷의 원료가 되며 씨로는 기름을 짜기도 한다.

‘마리화나’라고도 하는 대마는 환각작용이 강하다. 애호가들은 1960년대 미군으로부터 배워 한 때 양귀비와 함께 골칫덩어리였던 적이 있다. 요즘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마약류와 함께 재배와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나 간혹 강원도 산골짜기 밭가에 하나둘 나 있거나 냇가에 나무처럼 가지를 쭉쭉 뻗어 자라고 있으니 잎을 따러 다니는 사람도 더러 있다.

a 환삼덩굴 잎이 대마 삼 잎과 비슷하여 대신 싣는다

환삼덩굴 잎이 대마 삼 잎과 비슷하여 대신 싣는다 ⓒ 김규환

3m 가까이 훤칠하게 빼곡이 자라는 삼 대마


이런 위험한 작물을 70년 대 중반 우리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재배했다. 우리 집은 최소 서너 마지기에서 닷 마지기를 심었으니 그 또한 짐이 되는 일이었다.

한해살이 풀이므로 봄보리 갈 적에 콩나물처럼 빼곡이 들어서게 배게 심는다. 고랑을 칠 필요 없이 갈아놓은 논을 흙덩이만 잘 깨서 고루 퍼지게 심는데 초창기에는 느릿느릿 자라다가 아래로 햇볕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자랄 즈음 사나흘 내린 고사리 싹 날 때 이슬비를 흠뻑 맞고 나면 그 키가 3m나 된다.


어찌나 빼곡이 들어서던지 삼밭 안에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10cm 마다 한 그루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어디 그 뿐인가. 쉴 겸 잠시 들어가 보면 푸르스름한 ‘꿩알’이 놓여 있으니 횡재가 따로 없다.

그리 길게 가지 하나 뻗지 않고 자기네들 몸에 기대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주는 까닭은 줄기가 딱딱하지만 속이 비어서 웬만한 비바람은 이겨내는 ‘겨릅대’ 때문이다.

삼을 벗겨보면 단단한 흰 목질부(木質部)인 ‘겨릅대’와 겉껍질로 분리되는데 이 껍질 중 겉껍질은 제거하고 삼 껍질의 안쪽에 있는 인피섬유(靭皮纖維)를 이용하여 삼베를 짜는데 쓴다.

다 자라면 겉껍질과 이파리는 날이 갈수록 누런 빛을 띠어 베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여름 농사는 1모작 모내기로 시작해 보리 베기가 다음이며 베어낸 논에 2모작 모내기를 한다.

2모작까지 마치면 쉴 참이 있을 법하지만 연이어 보리타작이나 삼을 수확하는 철이니 일이 줄어들 줄 모른다. 절기로 보면 하지 무렵부터 소서(小暑)까지 진행한다.

장마와 겹치는 철이지만 삼을 베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다. 자칫 더 늦어졌다가는 스스로 무게를 버티지 못하여 쓰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섬유질이 나빠지니 때를 맞춰 일을 끝마쳐야 한다. 또한 이곳에도 모내기를 해야 부족한 식량을 채울 수 있었다.

a 집채만한 삼굽터가 이렇게 바뀌었나 보다. 제법 튼튼하고 야무지게 만들었는데... 공동으로 쓰던 그 자리는 없어지고 비닐로 꽁꽁 밀봉하는 방식은 이 사진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다. 보성지역 사진

집채만한 삼굽터가 이렇게 바뀌었나 보다. 제법 튼튼하고 야무지게 만들었는데... 공동으로 쓰던 그 자리는 없어지고 비닐로 꽁꽁 밀봉하는 방식은 이 사진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다. 보성지역 사진 ⓒ 허호행

삼 벨 때 장엄한 풍경과 내 코를 자극했던 잊을 수 없는 진한 내음

삼을 베는 1차 작업은 들일 중 으뜸 풍경이다. 장엄하다. 잘든 낫으로 먼저 베어 가지런히 놓으면 죽도(竹刀, 대를 쪼개 이파리와 쓸모 없는 가지를 쳐내는데 쓸 목적으로 날렵하게 만든 칼)로 아래 둥지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꽁지를 향해 잎을 “촥촥” 쳐나간다.

그 향이 얼마나 내 코를 징그럽게 건드렸던지 들깨 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향긋함 자체였다. 그 내음을 맡으며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한 묶음씩 묶어 나란하고 가지런히 군데군데 쌓아 둔다.

집집마다 순서를 기다려 삼을 찌는 ‘삼굽터’ ‘삼굽자리’ 까지 가져 나르는 것은 장정들의 몫이었다. 3m 가량 되는 긴 다발을 혼자서 지고 가기도 힘겨울 뿐만 아니라 그 무게가 상상 이상이다. 마을 도랑 건너편에 있던 삼 굽는 가마터는 열 평(32.4 평방미터) 남짓으로 지어놓았는데 한쪽이 3m 이상으로 길고 다른 쪽은 다소 짧다.

거름을 많이 해 잘 자란 삼은 그 길이가 10자 3미터 이상이란 점을 감안한 것이다. 단단하고 열과 습기에 휨이 거의 없는 나무 집을 4각으로 지어 3~4m 높이로 하여 한 쪽만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가마터에 삼을 찌던 70년대 중반이 길쌈의 중흥기

가마에 도착한 삼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다발 수만 해도 200단이 넘는다. 이런 일이 보름간 지속되니 70년대 중반은 삼과 길쌈의 중흥기였다.

‘돌실나이’의 주산지가 섬진강가 석곡장(곡성군 석곡면에 있는 재래시장)이었다. 그러니 어른들은 삼을 말려서 비포장 육로가 있는 30리 이내에 있는 방석굴장(화순군 이서면 소재의 재래시장으로 현재는 동복댐에 수몰되어 사라진 곳)과 옥과장(곡성군 옥과면 소재 재래시장)을 마다하고 산 길을 넘어 굳이 석곡장에 다녀오시곤 했다.

첫 번째 앉히는 방법은 내부를 물로 깔끔하게 씻고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옮겨주면 안에 두 명이 받아서 차곡차곡 쌓는데 따로 두 사람이 논가 수로로 흘러가는 물을 수십 양동이 길러서 올려주면 물을 흠뻑 뿌려준다. 통상 50단 정도가 채워지면 밀봉을 하고 불을 때기 시작하여 12시간 가량을 수증기로 찌게 된다.

저녁 7시에 시작된 군불 때기는 밤새 멈추질 않는다. 직경 20~30cm 생나무 열댓 개를 가득 메워 두면 겉껍질 먼저 타고 마르면서 김을 풀풀 내고 물을 질질 흘리며 송진을 게워 내면서 통나무가 시나브로 타 들어가야 고루 쪄진다. 마른 통나무를 땠다가는 나무 값이 만만찮고 들어가는 양을 감당해내기도 힘들다.

무섭게 활활 타는 물거리 나무는 때로 “타닥 탁탁” 소리내며 탄다. 불구덩이에서 연해 마르면서 나무 줄기가 분리되며 타므로 ‘불잉그락’(불잉걸)이 10여 미터를 날아와 아이들 머리카락과 옷, 살을 언제 태울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이니 아궁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a 저 하얀 줄기가 겨릅대고 까무잡잡한 껍질이 삼베를 만드는 삼피이다. 할머니들만 있는 모습이 쓸쓸하기까지 하다. 이 마저도 이젠 볼 수 없는 먼 옛날 이야기로만 보인다.

저 하얀 줄기가 겨릅대고 까무잡잡한 껍질이 삼베를 만드는 삼피이다. 할머니들만 있는 모습이 쓸쓸하기까지 하다. 이 마저도 이젠 볼 수 없는 먼 옛날 이야기로만 보인다. ⓒ 허호행

밥 먹고 마을 회관 앞으로 몰려나오는 동네 사람들

삼 굽는 사람은 중간에 김이 새 나오는 곳을 찾아 진흙으로 발라주는 수고도 해야 한다. 삼이 다 삶아질 때가 되면 비 오는 날과 상관없이 아침나절이나 저녁을 가리지 않고 일찌감치 밥을 먹고 애어른 할 것 없이 동네 회관 앞으로 몰려든다.

한 집에 다섯씩만 쳐도 어림잡아 80여호였으니 400명이 바쁜 걸음으로 나오니 멀리서 보면 동네에 무슨 일 일어난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서두르는데는 한 다발 삼 껍질을 벗기면 다발마다 셈을 하여 그걸 돈으로 돌려주니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었겠는가. 일단 가족이 함께 삼 굽는 자리에 가서 순서를 기다려 한 다발을 맞추면 인부들이 꺼내주는 걸 장갑을 끼고 줄을 잡아 질질 흐르는 뜨거운 물에 데지 않게 조심조심 물을 건너 회관 앞쪽으로 갖고 와야 한다.

어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줄이 150m쯤 되는 마을 초입부터 끝 큰 길 두 줄로 길게 이어졌으니 그 날 이후로 난 고향마을에서 한꺼번에 그 많은 인원을 본 적이 없다.

큰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아 늦은 밤까지 삼 껍질을 벗기던 시절

첫 번째 삼단을 가져와 밑 둥을 잡고 겨릅대를 밀어 젖히며 껍질을 쑥쑥 벗겨서 겨릅대 따로 벗겨놓으면 손바닥 넓이나 되는 널찍한 껍질 따로 가지런히 놓고 나서 다시 삼 굽는 자리에 가보면 한 다발을 더 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혹간 부지런하고 장정이 많은 집안은 세 단까지 해낼 수 있었다.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마을 길거리. 하얀 겨릅대가 알몸으로 희미한 달빛을 받아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는 밤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몇 다발째 했는지는 그 다음날 집에서 확인하면 된다. 한 다발씩을 마치면 곧바로 묶어 각자 집으로 가져가 겨릅대 단 수만 세어보면 되었다.

새벽녘에 시작된 이 작업은 동네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진행되었다. 밤 11시는 늦은 시각도 아니었다. 옆에서 졸립다고 집에 가자는 네 살배기 여동생이 보채는 통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재우는 일은 막내아들 내가 했다.

벗겨 놓은 삼 껍질을 동네 빈 땅 어디고 두꺼운 철사 줄로 긴 빨래 줄을 곳곳에 설치하여 미역가닥처럼 널어놓은 장사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집 마당에도 저 집 마당에도 걸려 있었고 동네 안쪽 길가에는 어김없이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삼 껍질 못지 않게 겨릅대도 소중한 쓰임새가 있었다

삼의 겉껍질이 삼베 만드는데 쓰이므로 목질부은 ‘절읍대’(겨릅대의 사투리. 절읍대와 겨릅대는 배게 심어야 옆가지가 나오지 않아 좋은 섬유를 얻을 수 있으므로 결이나 마디가 없이 길고 잘록하게 자란다. 마디와 결이 없으므로 ‘결 없는 대’, ‘마디 없는 대’라고 해서 생긴 말일 게다)는 별 소용이 없어 보이지만 이 또한 쓰임새가 있었다.

헛간에 방치하듯 뒀다가 초가집 서까래 바로 위 흙과 맞닿는 부분에 넣어 보온단열재 대신으로 썼으니 지붕 이엉이 중북부지방처럼 두껍지 않아도 된다. 그걸 쓰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여 보온재로 좋다. 한옥에 이보다 나은 마감재가 있었을까 싶다. 습기를 제거하는데도 탁월한 재료였다.

밤마다 추억을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나간 삼 껍질 벗기기는 중학교 가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그 껍질을 잘 말려서 광에 뒀다가 겨우내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물레를 돌리셨다. 베틀이 덜컹덜컹 하는 소리를 들으며 꿈 많은 나는 새록새록 잠을 잘도 잤다.

a 미역귀 붙은 미역줄기 말리는 모습과 흡사하지만 대마 말리는 광경이다. 전봇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쯤으로 보면 무난하다.  보성지역 80년대.

미역귀 붙은 미역줄기 말리는 모습과 흡사하지만 대마 말리는 광경이다. 전봇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쯤으로 보면 무난하다. 보성지역 80년대. ⓒ 허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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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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