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올해도 주적은 '북한'

'주적'개념... 아직도 필요할까?

등록 2003.07.05 15:20수정 2003.07.0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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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지난 4일, 새로운 '국군정신교육 기본교재'를 발간하며, 다시 한번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국방부는 이 교재를 통해 '주적'은 '대한민국을 전복 파괴하고 적화하려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 국내에서 이에 동조하는 좌경용공세력, 그리고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북한을 지원하는 모든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는 또,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주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인도적으로 혹은 미래지향적으로 볼때, 포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발간돼 왔던, '국군정신교육 기본교재'의 내용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발간된, '보충교재'나 2001년 새롭게 발간된 교재들이 '북한 주민은 주적으로 볼 수 없다'거나 '북한은 주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통일을 열어야 할 파트너'라는 기술을 추가하면서 진일보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국방부의 경직된 행태는, 군 정훈공보 라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현지 야전 부대에서는 '국군정신 교육 기본 교재 (이하 정훈교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후진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줘, 결국 군 구성원의 정신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아무도 알수 없다. 따라서, 겉으로 아무리 정훈교재를 달달 외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내심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달달 외우는 내용이 절대 정신전력을 강화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진 이미지가 강한' 정훈교재로는 전혀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겉다르고 속다른 군 구성원을 대거 양산시켜, 군의 정신전력의 근본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정신전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군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적극적인 변신이 필요한 것이다.


군에서는 최근 각종 교재들을 좀더 '비쥬얼'하게 만들고, 영상교재도 '소프트'하면서 감성적인 호소를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군이 나름대로 변신을 꾀하는 측면이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형식적인 변화 말고도, 내용에 있어서도,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주적'개념이다. 주적, 말 그대로 주된 적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적 가운데서도 가장 위협적이며 현실적인 대상이 바로 주적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영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 바로 주적인데, 이쯤 되면, 아무리 '햇볕정책'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일단 북한을 주적으로 꼽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그럴 경우 국방부가 고수하고 있는 '북한 주적론'도 타당한 결론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방백서나 공식자료, 혹은 공식교재에 그런 내용을 기재할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국제사회라는 것이 변화무쌍하고 남북관계는 더욱 더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서화되고, 또 대량으로 배포된 자료로 주적 개념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능동적인 대처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전력의 약화로 직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례를 들어보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실현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국방부도 당연히 북한을 주적으로 올려 놓았다(그때는 '북한'이 아니라 '북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남북정상회담이 열리자, 군에서는 혼란이 일었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암기를 시켰는데, 군 통수권자가 주적의 '수괴'를 만나 포옹하고 악수하고, 건배까지 해버렸으니, 당장 다음 날부터 정훈교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연히 당시, 군 정훈공보 라인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느냐'는 일선 지휘관(자)의 질문에, 각 부대 정훈참모라인은 쩔쩔매야 했다.

겨우 말한다는 것이, '남북 화해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수준이었고, '북한은 믿을 수 없으니 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혹은 '군은 0.1%의 가능성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라는 수준이었다.

주적 개념에 대한 논란이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바로 이 이후, 주적 개념의 존재가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줄도 모르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어쩜 지금까지의 혼란과 논란은 가벼운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최근 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 해상 자위대와 한국 해군이 독도영유권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다, 마침내 무력 충돌을 했다고 치자.

8천톤급 이지스 함으로 무장한 일본 해상 자위대에 비하자면, '하룻강아지' 수준인 3천톤급 광개토함은 분전 끝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물러섰다. 한국군은 회심의 반격을 계획하면서 북한군의 지원을 받는다.

그럴 경우, 한국군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 주적인 북한의 지원을 받아 우방국을 공격한다는 말인가?

물론, 앞서 예를 든 사례는, 그야말로 가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속에서는 이런 류의 변화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군은 1%의 가능성, 아니 0.1%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가능성은 낮지만, 이런 상황에도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유용하지 않은, 아니 작전장애요인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주적은 북한'이라는 등식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국군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존재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은 우리의 적이며, 그럴 가능성이 있는 집단은 가상적이다'로 규정하는 것이 훨씬 유연하면서도 명쾌하고, 또한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주적이란 개념은 다분히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적과 아가 분명한 상황에서, 변화의 가능성도 적었다.

그럴 때 적을 분명히 하고 대책을 철저히 세우는 데는 그것보다 좋은 개념이 없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세와 같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상황이라면, 주적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국익에 손상을 주는 개념이 아닐까?

주적 개념이라는 것을 없애면, 마치 우리의 안보태세가 허물어질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 보수 논객들이 많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주적 개념을 없애는 대신, '그 구체적인 대상이 누가 되든, 군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킨다'라는 식으로 바꾼다면, 오히려 안보태세가 강화되는 건 아닐지 싶다.

우리 군이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낡은 깃발을 들고, 북한에만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자위대와 중국군에 비해 우리 군은 수적으로 양적으로 열세에 빠져 버렸으며, 북한 군이 낙후되는 만큼 한국군의 무장 수준도 낙후돼 갔다.

지금 같은 수준이라면, 북한을 제외한 어떤 외국의 침략에도 한국군은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주적 개념을 고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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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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